1976년 11월 개설했으며, 설립자는 신부 오웅진(吳雄鎭:1944~)이다.
부지 2만 2500㎡(약 1만 평), 수용 인원은 3,000명이다.
부대시설로는 정신요양원·부랑인요양원(1983년 9월 준공)·애덕의 집(1986년 10월 준공)·환희의 집(1985년 10월 준공)·노인요양원(1987년 10월 준공)·알코올중독요양원·인곡자애병원(1988년 10월 준공)·결핵요양원·심신장애인요양원(1990년 5월 준공)·성빈첸시오 천사의 집(1994년 5월 준공), 부설로 꽃동네대학교(1999년 3월 개교), 사랑의 연수원(1997년 5월 개원) 및 가평 꽃동네(1989년 7월 설립) 등이 있다.
1976년 신부 오웅진이 걸인을 구제하기 위한 '사랑의 집'을 개설하면서 무의탁 심신장애자·걸인 등을 요양하기 위해 꽃동네 터를 잡았다.
1981년 전국적으로 후원회원을 모집, 1982년 꽃동네의 현부지 1만 평을 매입하였으며, 1984년 사회복지시설 인가를 받았다.
1986년 이후 시설물을 증설하여, 정신요양원·노인요양원·알코올중독자요양원·인곡자애병원·가평 꽃동네·음성 꽃동네 심신장애인요양원을 설립하였다.
또 1996년 한꺼번에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랑의 연수원을 개설하였고, 같은 해 11월에는 청원군 현도면에 복지정책연구와 복지시설에서 봉사할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꽃동네대학교를 설립하였다.
1999년 현 전국후원회원 약 80만 명이 꽃동네의 재정을 후원하고 있으며, 수도자 300명, 장기봉사자 200명, 1일 봉사자 1,000여 명이 음성과 가평 꽃동네에서 3,000여 명의 요양자들을 돌보고 있다.
특기할 사항으로는 꽃동네의 요양시설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시신과 안구를 기증하여 2,000여 명이 광명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오웅진은 1996년 막사이사이상(賞)을 수상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꽃동네 (두산백과)
최귀동(崔貴童. 1990년 71세로 사망)
"얻어먹을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 입니다."
충북 음성군 금왕읍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일제 징용에 끌려갔다 돌아 왔으나 몸은 병들어
무극천 다리 밑에 거적을 치고 사는 걸인이 되었다.
그후 40여 년 동안 밥을 얻어다가 어려운
걸인들을 보살피며 살았다,
1976년 9월 12일 오웅진 신부(당시 무극천주교 주임)는
우연한 만남을 통해 할아버지 삶을 보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 임을 깨달아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분들을 위한 꽃동네를 시작하였다
잉태 10주 태아의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