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뉴욕주(州)와 뉴저지주의 무역이 국제화되면서 사기업과 정부기관의 편리한 업무를 위해 1968년에 착공해 1973년 완공되었다. 미국 경제를 상징하는 뉴욕주 맨해튼에 세워진 쌍둥이 건물로, 두 건물 모두 110층이며, 높이는 하나가 417m, 다른 하나가 415m이다. 완공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건축주는 뉴욕 항만청이며, 일본의 건축가 미노루 야마사키가 미국의 건축회사 로스 에머리 앤 손즈(Roth Emory & Sons)와 협력해 시애틀에 있는 IBM 빌딩의 단순미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하였다. 주건축재료는 철골이며, 당시까지 고층 건축에 주로 쓰이던 강철 골조 대신 연직(鉛直) 방향과 수직 방향의 합성력을 받도록 하는 로드 베어링(load-bearing) 강철벽을 사용하였다.
즉 건물의 바깥기둥을 일체화해 지상에 솟은 빈 상자처럼 세움으로써 수평하중에 대한 건물 전체의 강성을 높이고, 내부 기둥은 수직하중만 받게 함으로써 공간의 자유성을 높였다. 또 바깥기둥은 스테인리스강으로 덮인 고장력(高張力) 기둥을 1m 정도의 간격으로 배열해 지상 24m 지점에서 3개가 1개로 통합되는 형태를 취하는 등 수직·수평하중에 가장 효율적으로 대응하도록 설계되었다.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외에 이 단지 안에는 5동의 건물이 포함되어 있는데, 총 공사비용은 약 10억 달러(한화 약 1조 2980억 원)가 들었다.
세계무역센터는 국제무역의 중추 역할을 하는 뉴욕의 중심부에 있으며, 동시에 미국 경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로서, 1990년대 이후 국제 테러단체들의 주요 공격 목표가 되어 왔다. 1993년 2월 23일 이슬람교 테러리스트들이 이 센터 지하 주차장에 폭탄을 던져 6명이 죽고 1,000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에 연루된 6명의 범인은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이 테러 사건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2001년 9월 11일 오전 7시 59분, 92명의 승객을 태우고 미국 보스턴에서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던 아메리칸항공 소속 AA11 항공기가 항로를 이탈해 8시 45분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과 충돌하였다. 이어 8시 14분, 65명의 승객을 태우고 역시 보스턴을 출발해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던 유나이티드항공 소속 UA175 항공기가 항로를 이탈해 9시 3분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과 충돌하였다. 9시 50분 남쪽 건물이 붕괴되고, 곧이어 10시 29분 북쪽 빌딩마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또 두 건물이 붕괴되면서 인근 건물에도 막대한 충격이 가해져 오후 5시 25분에는 무역센터의 제7호 건물마저 완전히 주저앉았다.
두 대의 항공기 납치범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부호이자 국제 테러리스트인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조직한 알 카에다의 조직원들이거나 빈 라덴과 연결된 다른 이슬람 테러 집단의 소행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2003년 현재까지도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이 사건으로 두 대의 항공기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고, 건물 안에 있던 2,500~3,50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는데, 실종된 사람들 모두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쌍둥이 빌딩에는 총 25만 2900평에 이르는 사무공간이 있는데, 상주인구 5만 명, 하루 평균 유동인구 13만∼15만 명이며, 사고 당시 모건스탠리·시티뱅크 등 세계적인 금융·투자기관과 유명 대기업을 비롯해 한국의 현대증권·동원증권·LG보험·LG증권 등 430여 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었다.
연수익은 임대료 등을 포함해 총 2억 달러 정도이며, 2000년 7월 부동산 업체 '실버슈타인 프로퍼니스'가 건축주인 뉴욕 항만청 등으로부터 이 건물을 99년간 장기 임차하면서 32억 달러를 지불했다. 2001년 11월 실버슈타인은 향후 5~7년 이내에 60층 미만의 건물을 다시 짓기로 결정하고,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추모관도 건립하기로 하였다. 다시 지을 경우 30억 달러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곳을 자주 찾아 예배를 보았던 조지 워싱턴의 자리도 남아 있다.
그라운드 제로 가까이 있어 관련 자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