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리 성지

 

 

 

 

신리성지는 조선천주교회의 요람이다.

충청도 내포지방의 중심부에 자리한 신리는 한국천주교회 초기부터 끊임없이 예비자, 신자, 순교자가 배출되었다.

성지 내 초가집은 손자선(손도마, 1866 공주 황새바위에서 순교) 성인의 생가이다. 동시에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안주교, 1866 오천 갈매못에서 순교)의 주교관이자 조선 교구청이었다.

안주교는 이곳에서 끊임없이 찾아드는 교우들에게 성사를 베풀고 신앙 진리를 가르치는 한편, 각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제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리나 초창기의 한글 교리서 저술과 간행, 조선교회의 상황과 순교사적들을 수집 정리하여 파리외방전교회로 보내는 일도 여기서 이루어졌다. 이 자료들이 훗날 한국천주교회사와 순교사의 토대가 된 이른바 <다블뤼 비망기>이다.

,본디 “천주강생 1815년”에 지어진 생가는 박해시대 이래로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뀌었고 그 구조 또한 개조를 더듭해 왔다.

1964년부터는 강당의 형태로 개축되어 공소로 사용되었으나 본당 중심의 사목이 강화되면서 방치되기에 이른다.

이후 성지개발이 본격화 되고 한국교회사연구소로부터 생가의 옛 사진이 발견됨에 따라 원형 복원을 위한 본격적인 조사가 전문가들에 의해 진행된다. 2004년 마침내 손 성인의 생가이자 안주교께서 사시던 주교관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복원된 생가(주교관)의 기둥과 뼈대는 옛날 그대로이다. 대들보, 서까래, 주춧돌, 문지방 디딤돌, 집 지은 연도를 적은 상량문 등 상당 부분의 실물들이 그대로 사용되어 성인들의 숨결과 손 때가 그대로 묻어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신리성지는 순교자들이 태어난 집과 마을, 거닐던 길 그리고 경작하던 농토도 그 지명들과 함께 그대로 유지되어 순교자들의 자취를 생생히 느끼게 한다. 특히 손자선 성인의 생가와 함께 안주교와 오신부, 민신부 그리고 황석두 루가 등 성인 네 분이 붙잡힌 ‘거더리’의 집(신리 99번지)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그 역사적 가치를 더해 준다.

,신리성지는 이처럼 순교자들의 고향인 동시에 순교자들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손자선 성인의 순교 이후 그 시신이 신리의 선산에 묻혔다. 그리고 이름이 알려져 있는 33분의 순교자 외에도 성지 인근에는 ‘32기의 목이 없는 무명 순교자 묘’와 ‘14기의 손씨 가족 무명 순교자묘’, 그리고 해미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해지는 묘 3기가 있다. 이 묘들은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연차적으로 발굴되어 대전리 공동묘지에 초라하게 보존되어 있다.

 

 

 

 

 

 

 

 

 

 

 

 

 

 

 

 

 

 

 

 

 

 

 

 

 

 

 

 

 

합덕 성당

 

 

정의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있는 천주교성당.

내용

전신은 1890년(고종 27)에 설립된 양촌성당(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인데, 초대본당주임 퀴를리에(Curlier, J. J. L.)신부가 1899년 현 위치에 120평의 대지를 매입, 한옥성당을 건축하고 이전하여 합덕성당으로 그 명칭을 바꾸었다.

그 뒤 7대주임 페랭(Perrin, P., )신부가 1929년 현재 건물인 벽돌조의 고딕성당을 신축하였는데, 1960년 신 합덕성당이 분할되어 독립함으로써 명칭이 합덕성당에서 구 합덕성당으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합덕지방은 일찍부터 천주교의 사적지로 알려졌으며,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Daveluy, M. A. N.)주교를 비롯한 여러 선교사들이 체포되기 전 피신하였던 곳이 현 구합덕성당의 신리공소()로, 당시의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합덕성당 [合德聖堂]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충남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 275 지도

1890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세워진 양촌성당으로 출발하여, 1899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명칭도 합덕성당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29년에 신축된 것인데,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건축양식으로서 벽돌과 목재를 사용한 연와조 구조로 지었으며, 종탑이 쌍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961년 합덕읍 운산리에 신합덕성당이 생김으로써 구합덕성당으로 불리다가, 1997년 다시 합덕성당의 명칭을 되찾았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29년에 준공된 것으로, 벽돌과 목재를 사용한 연와조 구조에 종탑이 쌍탑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당시 설계를 담당한 페랭(Perrin) 신부는 6·25전쟁 때 납치되고, 현재 성당 구내에 있는 그의 묘소에는 유해가 없이 유물만 묻혀 있다.

아산만 일대의 내포() 지방은 예로부터 충남지역 천주교의 중심지로, 내포 공동체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언제나 주목을 받는 곳이었다. 1791년 신해박해() 이후 1868년 무진박해() 때까지 이곳은 박해가 있을 때마다 수많은 순교자를 탄생시켰다. 김대건(), 최양업() 신부 집안도 이곳에서 천주교를 받아들였고, 박해시대 한국에서 활동한 성직자들은 거의 이곳을 거쳐갔다.

1890년 장 퀴를리에(Jean Curlier) 신부와 피에르 파스키에(Pierre Pasquier) 신부가 이곳에 파견되어 양촌과 간량골(현재 예산군 예산읍 간양리)에 2개의 본당을 설립하였다. 그후 퀴를리에 신부는 여러 차례의 교안()을 겪으면서 양촌이 본당의 중심지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장소를 물색한 끝에 1898년 합덕지() 이웃의 창말[]에 있는 언덕을 매입하여 성당을 건립하고 본당을 이전하여 합덕성당으로 개칭하였다.

이후 1907년 매괴학교를 설립하고, 1908년 결성()의 수곡성당(현재 서산성당 전신)을 분리하였으며, 1928년 예산성당을, 1939년 당진성당을 각각 분리하였다. 1960년 11월 합덕읍 운산리()에 여섯 번째 자본당인 신합덕성당을 신설·분리함으로써 본래의 성당을 구합덕성당으로 개칭하였으나, 1997년 다시 합덕성당으로 명명하였다. 1998년 7월 16일 충청남도기념물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 275번지에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당진 합덕성당 [唐津合德聖堂]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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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and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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