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 따라 대륙을 건너
[여행 일정]
- 2005년 8월 1일 : 인천공항 출발▷러시아 모스크바 도착
- 8월 2일 : 러시아 모스크바
크레물린 궁전▷아르바뜨 거리▷성바실리사원▷붉은 광장▷굼 백화점▷백조의 호수▷레닌 언덕과 모스크바 대학
- 8월 3일 : 러시아 모스크바▷성페테르부르그
베드로 바울 성당▷재래시장▷여름궁전▷넵스키 거리▷카잔 성당▷이삭 성당▷니콜라이 1세 동상▷네바강▷순양함 오로라호
- 8월 4일 :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바실리섬 로스트랄 등대▷피터앤폴 요새▷국립에르미따쥐박물관▷라핀란타로 이동
- 8월 5일 : 핀란드 라핀란타▷헬싱키
묘지공원▷마켓광장▷원로원 광장▷암석교회▷시벨리우스 공원▷실자라인 탑승(스웨덴으로 이동)
- 8월 6일 : 스웨덴 스톡홀름
바사 박물관▷시청▷한림원▷왕▷크리스탈 상점
- 8월 7일 : 노르웨이 오슬로▷릴레함메르
비겔란트 조각공원▷바이킹 박물관▷오슬로 시청▷오슬로 국립 미술관▷릴레함메르 스키장
- 8월 8일 : 노르웨이 게이랑에르▷브릭스달
롬 스타브 교회▷게이랑에르 피오르드 관광(유람선)▷푸른 빙하 관광(빙하 오픈카)▷페리호 탑승(송네 피오르드 관광)▷세계 최장 터널(24.5km)
- 8월 9일 : 노르웨이
로맨틱 열차 관광(플롬역->미르달역 구간 산악 열차)▷쵸스폭포▷떼제베 탑승
- 8월 10일 : 덴마크 코펜하겐▷독일 함부르크
인어공주섬▷게피온 분수대▷아멜리안보그성▷안데르센 거리▷함부르크 시청▷루터 동상▷성 미카엘 교회
- 8월 11일 : 독일 프랑크푸르트▷인천공항 도착
시내 관광▷프랑크푸르트 중앙역▷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인천행 비행기 탑승
프롤로그.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 것도 좋지만, 그냥 잠시 일상을 떠난다는 것 자체를 참 좋아한다. 익숙하던 길과 공기를 잠시 떠나 조금은 낯설고 생소한 곳에서의 하루는 나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정말 오랜만에 떠나는 해외여행이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꼬박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해외여행은커녕 가벼운 국내 여행조차 다녀오기 어려웠다. 방학이라고는 고작 1주일 정도에 불과했고, 그렇게 주어진 방학 때도 여유있게 즐길 수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인 만큼 더더욱 설레고 기대되었다. 이젠 동생이 고등학생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고 공부 때문에 함께 여행길에 오르지 못하는 동생에 대해 미안하다는 감정보다 당연하다는 감정이 먼저 들었던 것 같아서 이제야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데려갈지 여부를 두고 많이 고민했지만, 결국 고등학생인 동생은 한국에 남겨둔 채 부모님과 북유럽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와는 달리 어느 정도 성장한 만큼 조금 더 깊이 남는 여행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늘 아무런 준비도 없이 여행을 떠나던 버릇에서 벗어나 이제 좀 미리 여행지에 대해 이것저것 공부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녀오면 남는 것은 늘 사진뿐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져버리곤 했었다. 그것이 항상 못내 아쉬웠기에 이번에는 길이길이 남길 수 있도록 꼼꼼히 기록해두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노트북도 챙겨가서 나름대로 이것저것 기록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다녀와서는 귀찮다는 핑계로 그 기록들을 미처 정리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1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희미해진 그 기억들을 되새겨보고자 하고 있다. 조금은 조심스럽게 추억의 페이지를 한 장 넘겨본다.
우랄산맥을 넘어서. 러시아야, 반가워!
인천공항 집결.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될 사람들과의 첫 만남, 그리고 우리의 여행길을 함께 해줄 가이드와도 처음으로 만나는 시간이었다. 북유럽 여행의 특성 때문인지, 대다수가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셔서 우리 가족이 거의 막내 축에 속하였고, 더더군다나 내 또래의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행 자체에 대한 설렘으로 그런 감정은 금세 잊혀져 버렸다. 그리고 비행기 탑승, 운이 좋지 않았는지 창가에 앉지는 못했지만 스튜어디스석의 창을 통해 밖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조그마한 창을 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가로지어 달려가는 우랄산맥을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우랄산맥이라니, 괜한 감동이 밀려오기까지 했다.
거대한 도시에 가까운 인천 공항에서 출발한 우리에게 초라하기만 한 러시아 공항은 조금은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작고 지저분한데다가 거친 검색을 서슴지 않던 러시아 공항은 오랜 비행기 탑승으로 지친 우리의 얼굴을 더욱 찌푸리게 하였다. 함부로 사진을 찍어서도 안 된다고 하는 삼엄한 그곳에서 몰래 사진을 찍으며 여행의 출발을 장식했다. 어둡고 우울한 하늘이 왠지 쓸쓸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러시아 크레믈린 궁전
러시아에서 맞은 아침. 이국적인 풍취가 날 설레게 했지만, 그 무엇보다 나를 설레게 한건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었다. 서울 하늘에선 좀처럼 보기 힘들던 푸르고 눈부신 아름다운 하늘이 짙푸른 잔디밭과 어울려 아름다운 경광을 연출하였다. 처음 겪어보는 백야 현상도 새로웠다. 떠난 시기가 여름이었기에 한국도 꽤나 낮이 긴 때이긴 했지만 그래도 7시 무렵만 되도 어둑어둑해지곤 하게 마련이다. 그런 생활 패턴에 익숙하던 내게 밤 10시에야 해가 지고 새벽 3시쯤이면 다시 훤해지는 백야현상은 생소하기만 했다. 태양을 볼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은 만큼 러시아인들은 유난히 태양을 사랑한다고 한다. 겨울이 길어 여름만 되면 다들 휴가를 떠나 선탠을 즐긴다. 결국 여름철이면 러시아인들이 떠나버린 모스크바 거리를 관광객들이 가득 채우게 된다.
러시아에서도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LG다리의 존재였다. LG다리는 LG가 사들인 것으로 수리를 계속 해주는 대신 LG광고만 붙이기로 한 다리라고 한다. 건물 꼭대기를 멋들어지게 장식한 우리 회사 로고들도 자랑스럽기만 했다. 그 외로도 버스 외부나 건물 벽면에 큼지막하게 붙여진 갖가지 우리 광고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러시아 모스크바 백조의 호수
화장실 인심은 한국만한 곳이 없음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급한 마음에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동전들이 들어있는 작은 바구니를 들고 있는 아주머니들에 놀라고, 또 돈을 받는 것과 무관하게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화장실 풍경에 놀라게 된다. 결국 우리는 식당에 들르게 될 때마다 혹은 운 좋게 무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일부러 미리미리 화장실에 들러야만 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났으니 그 자체의 문화에 젖어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그 문화 그대로를 받아들여 보겠다는 마음으로 기분 좋게 모스크바에서의 첫날을 시작하였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건축물
모스크바 붉은 광장, 성바실리 성당
붉은 광장 진입로로 들어서는 곳에는 모든 관광객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 성바실리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성당이 이렇게 화려해도 되나 하는 생각마저 들 만큼 너무도 아름답다. 이반 대제는 바실리 성당이 완성된 후, 건축가의 두 눈을 뽑아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시는 이런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건축물 뒤에 숨겨진 사연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성당을 지나 붉은 광장 입구까지 갈 수 있었으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결국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수많은 군인들이 광장을 가로 막은 채로 자신들만의 축제를 즐기고 있었고, 그들에게 예우를 해주는 러시아 당국은 관광객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거리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거닐며 한가로이 술병을 들고 마셔대는 건장한 군인들만을 구경한 채 아쉬운 마음으로 붉은 광장을 나서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군인들에게 광장 전체를 빌려주며 예우를 해주는 러시아 당국에 회의가 들기도 했다.
핀란드 헬싱키 원로원 광장
붉은 광장 옆에는 거대한 규모의 굼백화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때마침 어떤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백화점 곳곳에 다양한 모양의 소 모형을 전시 중이었다. 알록달록한 소들을 구경하는 것도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건물 내부는 크게 둘로 나뉘어 있었고 그 사이를 크고 아름다운 다리들이 연결하고 있었다. 그 사이 공간은 하나의 대로라고 해도 될 만큼 널찍하였다. 층층이 다양한 상점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독특한 디자인의 옷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북유럽 여행 중엔 유독 교회나 성당 등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암석들로 이루어져 자연 그대로의 느낌이 묻어나는 암석교회가 있는가하면, 높이가 132미터나 되는 전망대가 있는 성 미카엘 교회 같은 곳도 있었고, 레고 블록 제작에 참고가 되었다는 독특한 이력이 있는 롬스타브 교회 등 다양한 특성을 지닌 곳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 중 유독 롬스타브 교회는 수많은 묘지들에 둘러싸여 있던 모습이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묘지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질서정연한 공동묘지들을 상상하면 오산이다. 지상으로 동그랗게 봉을 만들어 놓지도 않고 질서 있게 비석을 세우지도 않는다. 마치 아무 돌이나 대충 주워다 세워 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노르웨이 롬스타브 교회
때문에 모양도 재료도 가지각색일 뿐 아니라 놓인 위치까지 제멋대로다. 그런 무질서함이 공동묘지에 비해 오히려 음산한 느낌은 덜하긴 했지만, 그래도 묘지는 묘지 아닌가? 기념 촬영을 찍겠다고 교회 앞에 섰지만 왠지 묘지를 함께 찍으면 사진에 귀신이 찍힐 것 같다는 유치한 생각이 들었다. 결국 묘지들을 요리 조리 피해 교회만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겼다.
아르바뜨 거리와 러시아 인형.
기념품을 모으는 재미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한 개 한 개 인형을 빼서 진열하는 재미가 색다른 러시아 인형 역시 꼭 소장하고 싶은 기념품이었다. 인형의 개수에 따라 그리고 그 위에 그려진 그림이 얼마나 섬세한가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5쌍에 2EURO 정도하는 아주 싼 것들도 더러 있었는데, 보통 4-5개의 인형으로 이루어진 작은 것이었고, 그려진 그림 역시 흐릿하고 볼품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하면 가격대가 좀 비싼 10개 이상의 인형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러시아 인형들은, 가격만큼 예쁘고 섬세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가이드가 러시아 인형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상점을 알려주었다. 러시아인들은 물건을 사는 이들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분명 사는 쪽은 우리인데도 인상을 팍 쓰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고, 자칫하면 사기를 당할 수도 있단다. 그래서 큰 거리에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상점에서 구입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했고, 그렇게 우리가 안내받은 상점이 바로 아르바뜨 거리에 있는 것이었다.
러시아 아르바트 거리
아르바뜨 거리는 젊음과 문화의 상징이다. 보행자 전용도로이기에, 넓은 도로 폭을 가졌으면서도 이 길로는 차가 다니지 않는다. 거리 가득 다양한 볼거리들이 넘쳐났다. 길 양옆으론 고풍스런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데 고급 상점과 레스토랑으로 쓰인다. 거리 중간쯤에 있던 한 식당에서 현지식으로 식사를 했는데, 간을 제대로 맞추지 않은 부대찌개 맛이 나던 묘한 스프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길 한가운데에는 러시아 민속 공예품을 파는 노점들과 음료수나 간단한 스낵을 파는 노점들이 줄을 지어 서있고, 노점들 사이에는 거리의 악사들과 화가들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서 생음악을 들을 수 있고 화가들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이 거리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식사 후 가볍게 거리를 산책하다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한 상점에 들어갔다. 갖가지 러시아 인형들을 비롯하여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민속 공예품들이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친절한 점원이 인형을 하나하나 분리해 보여주면서, 그리고 특히 가장 안에 있는 조그만 인형이 얼마나 섬세하게 그려져 있는지를 자랑하면서, 우리의 구매 욕구를 더욱 자극했다. 고민 끝에 커다란 눈망울에 불그스름한 볼을 가진 귀여운 러시아인형을 선택 했다.
거리의 악사들을 만나다.
러시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을 꼽으라면 여름 궁전이 아닐까 싶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하늘이 웅장한 건물들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궁전 앞으로는 화려한 분수 계단과 중앙 분수가 있었고 그 분수를 따라서 길게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물길을 따라 곧장 앞으로 가면 발틱 해와 연결되었고 바다 바로 앞에는 예쁜 별궁도 세워져 있다. 분수공원이라 불릴 만큼 정원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다양한 모양의 분수들도 멋진 볼거리였다.
러시아 여름궁전
여름 궁전에 들어서는 길에서 우리는 멋지게 애국가를 연주해주던 악단을 만나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웅장한 리듬의 애국가 대신 흥겨운 리듬의 현란한 애국가를 들으니 또 색다른 느낌이었다. 악사들은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로 여분의 악기를 마련해 두었는데, 약간의 돈을 내면 그 악기를 들고 그들과 나란히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 연주하는 포즈를 취했으면 더 좋았으련만, 당황한 나머지 어색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야 말았다. 여행지에서는 아무도 보고 있지 않는 것처럼 마음껏 즐겨보는 것도 참 중요한 것 같다. 결국 남는 건 사진뿐이게 마련인데, 어색하게 찍은 사진은 아쉬움만 남긴다.
우리가 보기에도 같은 동양인들을 보고 누가 중국인이고 누가 일본인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런데 그들은 멀리서 걸어오는 관광객들을 보고도 어느 나라 사람인지 곧잘 알아맞힌다고 하는데, 가이드가 알려준 국적 감별법은 꽤나 흥미로웠다. 먼저 양복을 입고 머리를 잘 안 감고 다니면 중국인이라고 한다. 중국인들은 머리를 감으면 복이 나간다고 하여 머리를 잘 안 감는다고 하고, 또 떼를 지어 가는 모습이 굉장히 시끌벅적하단다. 일본인은 아장아장 줄을 맞춰서 걸어오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줄도 맞춰오고, 떠들지도 않으며, 의사소통도 무전을 이용해서 굉장히 조용조용 하다고 한다. 그리고 울 한국인의 특징은 양산을 쓰고 다니는 거란다. 대다수가 챙이 긴 모자를 쓰거나 양산을 쓰고 있으며, 색채가 다양한 화려한 옷을 많이 입는다고 한다.
러시아 여름궁전
가이드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 일행을 보니 과연 대다수가 양산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얼굴 반쯤엔 그늘이 지는 커다란 챙의 모자를 쓰고 있는 분들도 많았다. 해가 뜨는 기간이 길지 않아, 러시아인들은 해를 유난히도 사랑한다고 한다. 그늘만을 찾아다니려 하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해만 뜨면 선탠을 하기 위해 잔디밭에 드러누워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해를 사랑해서 양산이라는 개념이 없는 러시아인들에게 해만 뜨면 가리려고 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은 생소하고 이상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식도락 여행?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로 식사 시간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외국에 가면 한국 음식이 그리워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어디를 가나 한국에서보다도 오히려 신이 나서 뭐든지 잘만 먹곤 한다. 단 한 가지 어디서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물이다. 독특한 향 탓인지 상하지 않았나 싶은 의심이 들 만큼 묘한 맛이 나는 물은 도저히 먹기가 힘들었다.
여행 중에 꼭 해봐야 하는 것 중에 하나는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을 맛보는 것이 아닐까. 음식은 문화이니, 그 나라만의 음식을 접하는 것은 그곳의 문화를 입으로 느끼는 방법일 것이다. 이번 여행지 음식 중에선 노르웨이에서 먹은 연어회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회의 느낌을 좋아하지 않아서 회를 즐기지 않는 나인데, 그곳에서 먹은 연어회의 느낌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런가하면 거북스런 느낌으로 기억에 남는 염소 치즈도 있었다. 현지 가이드가 독특한 향과 맛이 일품이라 하기에 기대하는 마음으로 집어다 먹었다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게 되고야 말았다. 비린내 같기도 한 묘한 향이 너무도 자극적이었다.
실자라인 식당
몇 가지 식사 예절도 배울 수 있었는데, 달걀 먹는 법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처럼 바닥에 굴려 까먹으면 이상하다는 눈초리들을 받기 일쑤일 것이다. 달걀 옆에는 오목하게 파인 접시가 항상 함께 놓여 있는데, 그것이 달걀 접시란다. 그 위에 달걀을 놓고 나이프로 달걀 머리 부분만을 톡톡 두드려서 깬 후 작은 스푼으로 계란을 파서먹는 것이 그곳 식사 예절이다. 이왕 먹는 것 식사 예절도 지켜가며 우아하게 먹어보자는 심산으로 불편함과 어색함도 감수하며 지켜보았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 같다.
북유럽에서도 과일을 향한 욕구는 변함없었다. 그렇지만 아무 과일이나 사서 먹게 되면 입맛에 맞지 않을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에서 먹는 배를 생각하며 외국의 배를 샀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한국 배처럼 달고 물기 많은 배가 아닌, 밍밍한 맛에 텁텁한 질감이 느껴지는 배에 실망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빨간 빛이 나는 오렌지, 멜론같이 생겼는데 맛은 특이한 과일 등 여러 과일들을 먹어볼 수 있었지만 그중 우리의 입맛을 끈 과일은 체리였다. 한국에서는 통조림이나 케이크 위에 얹어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체리를 먹는 일은 드물다. 더구나 수차례 가공된 상태라 이런 저런 맛이 섞여 체리 본연의 맛을 느끼기 어렵다. 그런 체리를 신선한 과일 상태 그대로 실컷 맛볼 수 있어 참 좋았다.
러시아에도 물론 재래시장이 있다. 성당 옆에 위치한 과일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재래시장에 가볼 수 있었는데,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들부터 나이어린 소년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제각기 과일과 함께 약간의 물건들을 내어놓고 판매하고 있었다. 체리는 붉은 색과 보랏빛에 가까운 색의 두 종류가 있었는데, 맛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00루블이면 체리 1KG을 살 수 있는데, 우리 돈으로 대략 5000원 정도 하는 돈이라 다른 과일들에 비해서 비교적 저렴하기도 하고 맛있기도 해서 좋았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 시간이 길었던 만큼, 입이 심심할 때도 꽤나 많았다. 게다가 자주 들르게 되는 여러 상점들에서 보게 되는 형형색색의 과자들의 유혹도 뿌리치기 어려웠다. 과자는 역시 우리나라 것이 우리 입맛에도 맞고 맛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꼭 한번씩은 다 먹어보고 싶은 욕심이었다. 과자라고 해도 뭐 종류가 다양한 것은 아니었고, 대부분 젤리나 사탕, 또는 초콜릿 종류였다. 커다란 봉지에 개별 포장은 되지 않은 채 한꺼번에 들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초콜릿은 안전하다. 초콜릿 맛이 달라봐야 뭐 얼마나 다르겠는가. 조그맣게 포장된 초콜릿부터 거대한 삼각기둥 모양의 초콜릿까지 다양한 종류를 먹어보았는데, 모두 맛있었다. 문제는 젤리나 사탕이다. 색깔도 모양도 참 다양하고 예뻐서 언뜻 보기엔 맛있어 보이지만 막상 먹으면 도대체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미라 모양, 피라미드 모양 등의 흥미로운 모양을 가진 것도 많았고, 색깔 역시 다양하고 예뻐서 보기에는 참 맛있어 보였다. 하지만 막상 먹어보면 인삼과 한약을 섞어놓은 맛 같기도 하고, 치약 맛인 것 같기도 한 묘한 맛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과자 구입은 각국의 동전들이 조금씩 남았을 때, 잔돈을 처리하는 데도 용이하였다. 유로화가 많이 쓰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자국 돈을 사용하는 편이 유리한 곳이 많았다. 그러다 보면 나라 나라마다 쓸 만큼의 돈을 교환했다고 해도 조금씩은 남게 마련이었고, 그런 잔돈들은 기념으로 간직하지 않는 한 다시 교환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보기엔 작은 동전이지만 우리 돈으론 꽤나 큰돈인 경우가 많아 아깝기도 하다. 그런 잔돈들은 과자들을 사는데 쓰거나, 호텔 팁을 지불할 때 유로화 대신 쓰기도 했다.
실자라인 선내
거대한 호텔 하나가 바다에 떠다니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물론 타이타닉호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만한 규모와 화려함을 지닌 것은 아니었으나, 역시나 거대하고 갖출 것을 다 갖춘 엄청난 규모의 배 실자라인을 타게 되었다. 식당은 물론 각종 상점들, 숙소에 노래방, 나이트클럽 등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배 내부 통로에 서서 올려다보면 층층이 숙소들이 보이고 양옆으로 수많은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호텔 혹은 백화점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배안에서 잠도 자고 쇼핑도 하고 식사고 하는 것, 영화에서만 보던 일들을 실제로 할 수 있게 된 감격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유럽은 식도락을 즐기기에 만만한 곳은 아니다. 음식 값이 거의 재난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충 먹어도 10달러는 족히 나오고, 잘 나오려면 한정이 없다. 우리나라에선 당연히 공짜로 제공되는 물도 사먹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배에서 먹었던 뷔페식 아침식사의 값만 해도 우리 돈 10만원 가량이었다. 인원이 많기 때문에 아무 시간에나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두 파트로 나뉘어 식사 시간이 주어져 있었지만, 물론 식사를 하기에 부족한 시간은 아니었다. 한번씩 다 먹어보기도 힘들만큼 많은 종류의 음식들이 있었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디저트가 나왔는데 디저트 역시 셀 수없이 다양했다.
실자라인 발트해 선상에서
부모님과 함께 떠난 여행이었기에 대체로 2인실을 쓰는 여행에서 나는 따로 방을 써야 했다. 그렇다고 1인실이 주어지진 않기에 나는 가이드와 함께 2인실을 사용했다. 물론 배안에서도 2인실을 사용했기 때문에 가이드와 같은 방을 사용했다. 객실마다 사정은 조금씩 달랐는데, 2층 침대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침대는 대개 벽에 붙어 있고 내려서 사용하게끔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가이드가 나이도 많고 하니 아래층 침대는 가이드가 사용하고 나는 위층을 사용하게 되었다.
객실마다 창이 하나씩 나 있는데, 그 창이 바다를 향하고 있느냐 배 내부를 향하고 있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랐다. 당연히 바다를 향하고 있는 편이 비싸다. 우리는 한번은 바다 쪽, 한번은 배 내부 쪽을 향하는 객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객실에서는 끊임없이 아름다운 물결을 감상할 수 있어 황홀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배를 타는 즐거움은 역시 갑판에 올라 수평선을 가만히 바라보는 데 있을 것이다. 특히나 해가 지거나 뜰 무렵의 어스름한 하늘은 그지없이 아름답다. 도착할 무렵이 다가오면 멀리서부터 서서히 대륙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것도 참 멋졌다.
승선하는 모습을 찍어서 판매를 하기도 했다. 자연스런 모습을 담으려는 건지 전혀 예고는 해주지 않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잘나오지만 그렇지 않으면 묘한 표정이 나오게 될 수도 있다. 사진 인화하는 곳에 우리의 사진들이 버젓이 전시되어 있어 괜히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서비스 역시 참 좋은 아이디어였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뭐 굳이 따져보면 놀이공원에 있는 몇몇 놀이 기구들에서 짜릿한 순간을 사진에 담아 판매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지만 말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스웨덴.
스웨덴의 거리들은 참 아름답다. 돌길과 색색의 오래된 건물이 운치를 더하는 구시가지 감라스탄은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삐삐의 고향인 만큼 상점에서 정겨운 삐삐 인형들을 만날 수도 있고, 북유럽의 마스코트인 귀여운 트롤을 만나볼 수도 있다.
일정 요금을 내고 티켓으로 쓰이는 조그마한 스티커를 붙이면 스웨덴 시청사 관람을 할 수 있다. 노벨시상식이 열리는 스웨덴 시청사, 어마어마한 규모의 시상식장을 기대했건만 기대에 못 미치는 규모에 조금은 실망했다. 홀에 있는 계단 설계 과정도 인상적이었다. 직접 부인에게 힐을 신고 걸어보게 하면서 여러 차례 보수 과정을 거쳐 만든 가장 편한 계단이라고 한다. 시청사 내부엔 여러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스웨덴 복지를 상징하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상징하는 그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금빛 장식들이 눈부시도록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스웨덴 왕궁
웅장한 배가 전시된 바사박물관도 관람했다. 바사호는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전함이라고 한다. 당시 스웨덴은 북유럽 발트해 주변 제국 건설에 분주해서 막강한 해군력을 절실히 필요로 했기 때문에, 전함 건설에도 그만큼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배는 진수식을 하자마자 열린 포문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 수분 안에 침몰하고 말았다. 침수된 배는 그대로 발굴되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여러 층으로 건설된 박물관에서는 다양한 각도로 웅장하고 화려한 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실감나는 마네킹들이 인상적이었는데, 침몰하고 있는 배를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참 재미있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국경은 버스로 통과했다. 아무런 검사도 없이 무사통과할 수 있는 국경선을 바라보는 느낌은 참 묘했다. 국경 부근에서 버스를 세우고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는데 검사를 한다거나 제재를 가하는 것이 하나도 없이 버젓이 국경이라는 표시만 되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분명 같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북한 땅을 밟을 수 없는 분단국가의 현실에서, 엄연히 다른 나라인데도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다는 건 정말 부러운 일이었다.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
러시아 에르미타쥐 박물관
북유럽 여행의 꽃은 자연 관광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관광이 대부분은 서유럽 등지에 비해 북유럽에선 그런 기회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커다란 박물관 관광이라고는 러시아에서 간 에르미타쥐 박물관 정도가 전부였다. 세계 최고의 박물관으로 알려진 만큼, 전시된 작품들을 한 점당 1분씩만 본다고 해도 총 관람시간이 5년이나 된다고 한다. 그중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실은 서유럽 미술관인데, 이곳엔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 미켈란젤로 등 친숙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가장 인상에 깊이 남은 건, 관람 끝 무렵에 본 미라였다. tv에서 보던 것보다 오히려 끔찍하다는 느낌이 덜 들었고 처음 보는 만큼 강하게 인상에 남았다.
노르웨이에서는 오슬로 국립 미술관에 들렀다. 뭉크의 절규를 보게 될 것이라는 가이드의 말에 조금은 갸우뚱했다. 분명 절규가 도난당했다는 신문 기사를 접했던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보게 된다는 것인가 싶어서였다. 그 사이에 다시 찾게 된 걸까? 그렇다면 내가 그 기사를 왜 접하지 못했을까? 괜히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을까봐 소심하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보러갔다.
알고 보니 뭉크의 절규는 하나뿐인 작품이 아니었다. 조금씩 다른 색감을 가진 여러 개 작품들이 서로 다른 곳에 보관 중이었는데, 도난당한 뭉크는 그 중 하나로 뭉크 미술관에 보관 중이었던 작품이었다. 우리가 본 뭉크는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색채를 띠고 있었는데, 그것이 조금은 덜 인상적인 느낌이라 참 아쉬웠다. 그 외로도 사춘기 소녀 그림 등 유명 화가의 작품들을 두루 감상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
노르웨이 관광 이야기에서 터널을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터널 뚫는 기술도 세계 1위라는 노르웨이엔 참 터널이 많았다. 세계 최장 터널이라는 24.5km의 굴은 정말 대단하였다. 가도 가도 정말 끝이 없더라. 우리나라의 터널처럼 밝고 매끈한 벽을 가지고 있는 터널이 아니다. 공사가 미처 끝나지 않은 듯 한 울퉁불퉁한 벽에 흐릿한 색을 띠는 벽들이 군데군데 있을 뿐이다. 순차적으로 다이너마이트를 발사한 후 돌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을 시키고 시멘트 총으로 시멘트를 발사해 최종 고정을 시키는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한다고 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언뜻 보기엔 위험해 보이기도 한 내부 벽이었지만 한편으론 멋있고 훨씬 자연 그대로의 멋을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노르웨이 터널
터널이 긴만큼 물이 고이지 않도록 터널 안에 경사도 있고, 유턴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공간도 세 군데나 마련해 두었다. 유턴 공간에는 푸르스름한 조명이 켜져 있었는데, 꽤나 아름다웠다. 보통 노란색 불빛이 밝혀져 있는데, 터널 내부에서 사고가 났을 경우 그 불빛이 붉은 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화재가 발생될 경우엔 연기가 바깥 출구로 나가도록 설계되어 있어, 사람들이 그 연기 방향을 보고 가까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두었고, 소화기도 많이 준비되어 있다.
터널이 워낙 길어 사고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심리학자들이 동원되어 많은 연구를 했다고 하는데, 터널 내부가 어두운 것도 그 연구 결과의 하나라고 한다. 터널이 밝은 것보단 어두워야 운전자 입장에서 오히려 조심하게 되고, 사고 위험을 줄이게 된다. 또 정면의 불빛들이 약간 휘어져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실제로 굴이 휘어있는 건 아니고 정면으로 지나치게 길게 보이면 운전자의 눈이 피로해 지기 때문에 일부러 휘어져 보이도록 만든 것이라고 한다. 때문에 정면 시야는 2km가 넘지 않는다.
바이킹과 트롤을 만나다!
스웨덴 바이킹 박물관
바이킹은 8세기 말부터 11세기 초까지 배를 타고 유럽 여러 나라를 침략했던 노르만족을 부르는 이름이다. 뛰어난 항해술을 자랑하며 여러 나라들을 침략해 해적 민족으로서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바이킹의 풍부한 상상력, 끈질긴 인내심, 모험심 등은 유럽 역사에도 큰 영향을 끼치며 노르웨이인의 기질을 대표하고 있다.
바이킹선 3척이 전시되어 있던 바이킹 박물관! 그 중 한 척은 아쉽게도 부식의 정도가 심하여 밑바닥만이 겨우 남아있었다. 바이킹하면 키 크고 무시무시한 사람을 상상하게 되는데, 의외로 실제 바이킹은 현재 13~14세 정도되는 노르웨이인의 크기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아동화 정도의 크기밖에 안되는 조그마한 바이킹 신발을 통해 그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왠지 상상하던 것과 달라 어색하기만 했다. 오늘날의 뷔페식 식사도 바이킹들의 식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배에서 생활해야 했던 바이킹은 커다란 식량에 음식을 가득 넣어두었다가 조금씩 덜어서 먹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뷔페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바이킹 외에 노르웨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트롤이었다. 북유럽 전설 속에 나오는 트롤은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 있어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있는 국가, 특히 노르웨이에서는 이 트롤 인형과 조형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트롤은 대개 못생기고 어리석은 난쟁이나 거인으로 동굴이나 언덕에 살며, 삐죽삐죽하고 엉클어진 머리카락에 머리와 코에는 나무와 이끼 등이 자라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렇다고 징그럽다거나 무서운 모양의 인형을 상상하면 오산, 상점 진열대 가득히 놓여있는 트롤들은 너무도 귀엽기만 했다.
오슬로 시청사에서 만난 김대중 대통령!
오슬로 시청사에서는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린다. 다른 노벨상은 모두 스웨덴에서 시상되지만 노벨 평화상만은 이곳에서 시상되는데, 노벨이 유언하기를 평화상만은 평화로운 나라인 노르웨이에서 시상하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노르웨이 국회의 직속 기관인 노벨 평화상 위원회가 노벨 평화상의 수상자를 선정하고 상을 수여하는 일을 모두 담당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수상자들의 사진이 담긴 책자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수많은 수상자들 사이에서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괜히 뿌듯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스웨덴보다도 크고 멋진 시상식 홀의 모습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노르웨이 시청사 "벨 평화상 시상식장"
오슬로의 또다른 볼거리는 비겔란트 조각 공원이었다. 이곳은 구스타브 비겔란의 조각 212점이 전시되어 있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공원이다. 17m나 되는 기둥에 121명의 조각이 새겨진 웅장한 기둥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기둥을 따라 서서히 시선을 높여가보면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기둥 주위로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여러 과정을 조각한 작품이 있는데 굉장히 현실적이었다. 웅장한 조각 기둥으로 가는 길에도 끊임없이 많은 조각 작품들이 이어졌는데, 그동안 조그만 작품들만 몇 개 모아놓고 조각공원이라 부르던 것들이 참 초라하게 느껴졌다.
노르웨이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7자매 폭포
피오르드와 빙하 관광.
북유럽 여행의 꽃으로는 피오르드와 빙하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유람선을 타고 피오르드 관광을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웬만한 폭포를 보고는 가벼운 탄성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굉장한 폭포들을 잔뜩 볼 수 있었다. 물은 묘하게 초록빛을 띠고 있었는데, 석회석이 녹아있어서라고 했다. 뱃길 양옆으로 치솟은 산들은 그야말로 절경을 이루고 있었고, 예쁘게 날아다니는 갈매기들도 장관이었다. 강가 사이사이 보이는 조그마한 마을들은 너무도 평화로워보였고 한 폭의 그림같았다. 자연이 만들어놓은 저 웅장한 모습에 비하면 우리들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다시금 실감했다.
노르웨이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피오르드 관광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빙하 관광을 위해 출발했다. 빙하 오픈카를 15분 정도 타고 올라간 후 조금만 걸으면 빙하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빙하 오픈카는 이름 그대로 위가 훤히 뚫려 있었기 때문에
노르웨이 브릭스달 푸른빙하
폭포 곁을 가까이 지날 때면 시원한 물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멀리서부터 거대한 빙하를 어렴풋이 볼 수 있었는데 다가갈수록 그 웅장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럽에선 가장 크고 세계에서는 4번째로 큰 빙하, 유방을 닮은 모양이라 해서 멜케볼 빙하라고로 부르고, 푸른빛을 띠어 푸른 빙하라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일정 경계선 까지는 등반도 가능하다고 하는데, 갖가지 장비들로 무장하고 빙하를 오르는 관광객들도 더러 있었다. 장비 없이는 너무 미끄러워 한걸음도 떼기 어려웠으나 그래도 빙하 위에서 사진을 남겨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올라가 사진을 남기고야 말았다.
노르웨이 관광 전에 전 세계의 아름답다고 알려진 곳을 미리 다 돌아보고 오라는 말이 있었다. 노르웨이의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다른 나라의 여행은 시시하게 되기 때문이란다. 물과 공기가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하고 오염이 없는 나라,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아름다운 나라, 노르웨이는 그런 나라였다. 지구상에 천국이 존재한다면 바로 노르웨이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노르웨이 플롬 쵸스 폭포
이른 아침을 먹고 달려간 곳은 거대한 산악열차가 우리를 반기는 기차역이었다.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할 수 있어 로맨틱 열차로도 불린다고 한다. 목재로 장식된 열차 내부는 안락한 느낌을 더해주었고, 탁 트인 창문도 시원했다. 기차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고 했던가. 말도 통하지 않으면서 웃으며 유쾌하게 다가오던 스페인 아가씨들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기차를 타는 내내 창밖으로 가득히 아름다운 자연경광이 펼쳐졌다. 과연 로맨틱 열차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잠시 쵸스 폭포에서 정차했는데, 정말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엄청난 폭포였다. 낙차가 93미터나 된다고 하는 쵸스 폭포는 산꼭대기에서부터 힘차게 산자락을 치며 내려오면서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켰다. 열차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기념 촬영을 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북유럽 여행의 성수기인 6월이면 산에서 빨간 옷을 입고 요정 흉내를 내는 여인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시기가 아니어서 볼 수 없었음이 조금은 아쉬웠다.
에필로그
여행을 다녀온 지 어느덧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세세한 기억들은 희미해졌지만 순간순간 느낀 감정들은 내 가슴과 내 피부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여행은 그렇게 흔적을 남겼다.
늘 비슷비슷한 일상에 지칠 때면 문득 옛 추억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다 잊어버리고 떠나고픈 욕구에 휩싸이곤 한다. 짜릿한 일탈을 꿈꾸다가도 선뜻 떠나기엔 발목을 잡고 있는 일들이 너무 많음을 탓하면서, 그리고 그것들을 쉽사리 뿌리치지 못하는 소심함을 탓하면서 결국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적응하며 지내고 있다. 쉼 없는 일정의 연속이 나를 숨 막히게 하는 요즈음, 더더욱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간절해진다. 어느 날씨 좋은 휴일, 잠시나마 도시 밖으로 나가 싱그러운 가을을 맘껏 즐기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보며 추억의 페이지를 덮는다.
서울대 국어교육과 2학년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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