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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3.07 차투르부즈 만디르
- 2016.01.27 인도로 가는 길 10/ 오르차
오르차
[ Orchha ]
-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에 있는 옛 라지푸트왕조의 수도.
위치 |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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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1년에 라지푸트왕조의 수도로 건설되었다.
17세기 초에는 분델라의 족장인 주자르 싱이 반란을 일으켰고, 곧 무굴제국의 왕 샤자한의 침략을 받았다.
그 뒤 타지마할을 세운 샤자한과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 등의 왕이 살았다.
영국이 통치하던 때는 인도 중부청에서 관할하였으며 1948년에 인도가 독립하면서 빈디아프라데시주(州)에 포함되었다.
제한기르마할·라지마할·라지프라빈마할 등의 유적을 비롯하여 인도신화의 신(神) 비슈누의 일곱 번째 화신 라마를 신으로 모시는 람라자사원·락시미나라얀사원 등의 사원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르차 [Orchha] (두산백과)
자항기르 궁전
[ Jahangir's Palace ]
분류 | 해외여행 > 관광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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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아시아 > 인도 > 아그라 |
유형 | 궁전·성 |
주소 | Rakabganj, Agra |
가는방법 | 아그라 요새 내에 위치 |
1605년 무굴제국의 악바르 대제가 아들 자항기르(Jahangir)의 거처로 마련한 곳으로 추정된다. 힌두 양식과 아프가니스탄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외관을 지녔으며, 궁전 내부 또한 규모와 구조에 가히 놀랄 만하다. 회랑 사이마다 작은 문이 많이 있는데, 아름답고 섬세한 격자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궁전 안에 비밀통로가 많이 있다는 것. 마치 미로같이 통로가 짜여 있어 자칫 길을 잃기 쉽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항기르 궁전 [Jahangir's Palace]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시공사)
자항기르
- 인도 무굴제국의 제4대 황제. 비(非)이슬람교도에 대한 인두세를 폐지했고, 많은 종교에 대하여 관대했으며, 문학·미술 등을 보호해 문화의 꽃을 피웠다. 자신의 전기《투즈케 자항기르》를 남겼다.
원어명 | Jahāngī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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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사망 | 1569.8.31 ~ 1627.10.28 |
국적 | 인도 무굴제국 |
활동분야 | 정치 |
주요저서 | 《투즈케 자항기르》 |
악바르대제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그러나 즉위 때 장자(長子) 호스로와 다투었고,
즉위 후에도 왕비 누르 자한과 그녀의 오빠 아사프 칸 및 대귀족 마하바트 칸 등 궁정을 둘러싼 음모가 치세 중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비(非)이슬람교도에 대한 인두세(人頭稅)를 폐지하였고,
메와르 라지푸트를 복속시켰으나 만년에는 아편을 애음하고 왕비의 전횡을 허용하는 등 무굴황실의 부패를 초래하였다.
부왕 악바르처럼 많은 종교에 대하여 관대하였으며, 또 문학·미술 등을 보호하여 문화의 꽃을 피웠다.
자신의 전기 《투즈케 자항기르》를 남겼다.
무굴제국
[ Mughul , ─帝國 ]
- 16세기 전반에서 19세기 중엽까지 인도 지역을 통치한 이슬람 왕조(1526∼1857).
시조 바부르는 중앙아시아를 전전한 후 카불을 점령하고,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1526년 인도에 침입, 델리 왕조인 로디조(1451~1526)의 이브라힘왕을 델리 북방의 파니파트전투에서 격파하고, 델리를 탈취하여 여기에 무굴제국을 창시하였다.
바부르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인 제2대 후마윤은 벵골·비하르 지방에서 일어난 아프간계(系) 수르 왕조의 셰르 샤에게 패하여, 1540년 페르시아로 도망하였다가 1555년 재차 델리를 점령하고 일시 중단되었던 무굴왕조를 부활시켰다.
그 뒤를 이은 왕이 13세에 즉위한 M.악바르 황제이다. 그는 북인도에 지배력을 확보하게 되자 그 세력을 인도의 다른 지방까지 확대하여, 라자스탄 지방에 독립국으로 있던 라지푸트족의 왕(라자)들을 동맹세력으로 끌어들였다. 또한 1573년 서방의 구자라트 지방에 진격하여 그곳을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 왕조를 타도하였다. 동방으로는 1576년 벵골 지방까지 그의 지배하에 넣었다.
1580년대에는 인도 북서부지방의 펀자브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까지도 군대를 파견하여 인더스강 하류 신드 지방까지 정복하였다. 1590년대에는 남하정책으로 데칸 지방의 이슬람 여러 왕조에도 세력을 뻗어나갔다. 행정면에서도 악바르 황제는, 이슬람교도나 힌두교도 등 종파를 가리지 않고 능력에 따라 중용하여 각 지방의 토지측량이나 지세(地稅) 결정 등의 실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따라서 무굴제국의 행정 ·사법 ·지방행정 등의 지배체제는 악바르 황제 시대에 거의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악바르 황제의 사후 자항기르, 샤 자한, 아우랑제브로 이어져 이 시기는 무굴제국의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특히 제6대 아우랑제브는 데칸의 이슬람 여러 왕조를 정복하여 최대의 판도를 실현하였다. 그러나 그의 만년인 1674년 힌두교도들이 데칸지방에 마라타왕국을 세워, 무굴제국의 강력한 적대세력으로 등장하였다. 1707년 아우랑제브가 데칸고원의 원정 도중 죽자 제위(帝位) 계승을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나 무굴의 중앙 권력은 급속히 쇠퇴해졌다. 18세기 말에 이르자, 약화된 무굴의 중앙권력은 데칸지방에서 델리 주변까지 세력을 확장한 마라타동맹에 의하여 좌우되어, 무굴 황제의 지배력은 약화되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 걸쳐 영국의 식민지 지배세력은 마라타 ·마이소르 등 강력한 봉건세력을 멸망시키고, 인도에서의 식민지 지배영역을 확대하여 갔으나, 명목상으로만 존속한 무굴 황제의 지위는 그대로 남겨 두고 식민지 지배의 도구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1857년, 북인도를 중심으로 ‘세포이의 반란’이 일어나자, 각 주둔지에서 반란을 일으킨 인도의 병사들이 델리에 집결하여, 무굴 황제 바하두르 샤 2세를 추대하여 새로 정권을 수립하였다. 2년에 걸친 이 반란이 영국군의 무력으로 진압되자, 그들은 탄압정책을 한층 강화하여, 그때까지 명목상으로만 남겨 두었던 무굴 황제의 지위를 폐함으로써 무굴제국은 멸망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굴제국 [Mughul, ─帝國] (두산백과)
쉬시마할(오른쪽 하얀집)
람 라자 만디르(Ram Raja Mandir)
차투르부즈 만디르(Chaturbhuj Mandir)
잔시역
잔시
[ Jhansi ]
-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州)의 주도(州都).
원어명 | Jhāns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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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
인구(명) | 420,259(2006년) |
칸푸르 남서쪽 200km에 있으며, 철도망이 집중되어 있다.
도시는 1613년에 창설되었고, 주요 부분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1742년 마라타족(族)이 점령하였고, 1886년 영국령이 되었다.
주(州) 남부의 정치적 중심지인 동시에, 마디아프라데시주 북부에 걸쳐 넓은 상업권(商業圈)을 지니며, 제분·면공업·식품공업도 성하다.
1857년 세포이 항쟁 때에는 마라타계의 왕비를 내세운 반란군이 이곳에 있던 영국인을 대량 학살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29km 남쪽인 더콴에는 수력발전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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