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돈(Sidon)은 BC 3000년경 형성된 도시로, 티레(Tyre)와 함께 동 지중해 연안에서 제일 큰 항구이며, 현재는 그곳을 ‘사이다(Saida)’라고 부른다. 시돈은 베이루트(Beirut)에서 남쪽으로 41km에 있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다. 고대 베니게(페니키아)의 옛 도시로 상업이 번창했다. 티레(Tyre)와 함께 구약에 자주 언급되는 곳으로, 예수가 방문했던 도시이다.

시돈 일대에는 오렌지, 바나나 농원들이 있다. 시돈은 ‘낚시’란 의미로 페니키아 시대의 비블로스(Byblos), 티레(Tyre)와 함께 3대 도시의 하나로 해상 진출의 요충지였다.

시돈은 47일 전쟁으로 십자군에 의해 점령당하기도 하였으나 70년 후 살라딘(Salāh ad-Dīn Yūsuf ibn Ayyūb) 장군이 회복한 곳이다. 아직도 1228년 십자군이 건설한 바다의 요새(Sea Castle), 막두쉬 동굴교회, 에쉬문 신전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이 중 막두쉬 동굴교회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다녀간 지점을 기념하여 세운 교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돈 [Sidon] (레바논 개황, 2009.4, 외교부)

 

 

 

 

 

 

 

 

 

 

 

 

 

 

 

 

 

 

 

 

 

 

 

 

 

 

 

 

 

 

바오로 성당

 

구시가지에 있는 사도 바오로이 로마로 압송되기 전 하루를 머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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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Bible)의 어원이 된 도시

지중해에 면한 고대 항구도시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 된 도시 중에 하나다. 레바논 베이루트 북쪽으로 약 40km 지점에 위치한다. 알파벳 등 인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으나, 이렇다 할 유적이 없었던 고대 해양 왕국 페니키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어서 더욱 흥미로운 곳이다.

이곳에 도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BC 4500년경이며, BC 1200년 이후에는 페니키아의 3대 항구도시 중에 하나로 성장했다. 교역에 능했던 페니키아인들은 레바논에서 나는 백향목을 수출하고, 이집트 산 파피루스를 사들여 그리스 등지에 파는 중계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특히 이곳은 이집트산 파피루스 집산지로 유명했다. 비블로스라는 도시 이름 자체가 파피루스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것이다. 바로 이 비블로스가 오늘날 성경 즉 바이블(Bible)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거듭된 침략으로 폐허가 된 유적

이후 이 지역은 아시리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이슬람 등의 반복된 침략과 지배를 받았으며, 1104년 십자군에게 점령되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세력의 침략과 지배를 받는 동안 고대 유적들은 파괴되었고, 그 존재조차 잊혀졌다. 20세기 초의 발굴로 페니키아 시대 및 로마 유적지를 중심으로 여러 시대의 유적들이 남아 있음이 밝혀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유적지 입구에는 십자군 점령기에 축조된 거대한 성채가 버티고 있다. 성채 위로 올라서면 유적지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고, 더 멀리 시선을 돌리면 푸른 지중해가 보인다. 비블로스에서는 도시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 주거지와 오벨리스크 신전 터, 로마 시대의 열주도로와 원형 극장, 십자군 시대 성벽까지 다양한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었다.

알파벳의 기원이 된 페니키아 문자

가장 관심을 끌었던 유물은 지하묘에서 출토된 아히람 왕(기원전 11세기경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의 석관이다. 알파벳의 기원이 되는 페니키아 문자 22개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것으로는 가장 오래 전의 것이다. 비블로스는 지금까지도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페니키아 문화의 근거지지만, 얼핏 보기에는 폐허에 가까운 모습이다. 십자군의 성채를 빼고는 전문가가 아니고는 그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흔적들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흔적이 희미하다고 해서 그들의 존재감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알파벳은 물론 유럽 여러 나라 자모의 기초가 되었던 문자를 만든 그들이 아닌가? 또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다는 성경, 즉 바이블의 어원이 된 도시가 아닌가? 이 희미한 흔적들에서 애잔함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희미한 흔적에 비례하듯 진하게 우리 생활 속에 남아 있는 그들의 존재감 때문이 아닐까?

[네이버 지식백과] 비블로스 [Byblos] (두산백과)

 

 

 

 

 

 

피에르 몽테 [ Pierre Montet ]

요약
프랑스의 이집트학자. 아부 로슈, 레바논 비블로스, 이집트 타니스 발굴을 지휘, 비블로스의 페니키아식 분묘와 최고(最古)의 알파벳 비문을 발굴했다. 스트라스부르대학,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를 지냈다.
  • 출생-사망

    1885.6.27 ~ 1966.6.19

  • 국적

    프랑스

  • 활동분야

    고고학

  • 주요저서

    《우아디 하마나트의 비문》(1913) 《피라미드 시대의 이집트》(1954) 《타니스의 왕묘군》(1947~1960)

1919~1948년 스트라스부르대학, 1948~1956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이집트학 교수를 지냈다. 1913∼1914년 아부 로슈(Abu Roāsh), 1921∼1924년 레바논의 비블로스(지금의 주바일), 1929~1951년 이집트의 타니스 발굴을 각각 지휘하여, 비블로스페니키아분묘와 최고(最古)의 알파벳 비문을 발굴하였다. 1953년에는 키레나이카의 아폴론신전을 조사하였다. 저서에는 《우아디 하마나트의 비문 Les inscriptions du Ouadi Hammanat》(1913) 《분묘에서 본 고대이집트의 일상생활 Scènes de la vie privée dans les tombeaux de l’Egypte ancienne》(1925) 《비블로스와 이집트 Byblos et l’Egypte》(1928) 《타니스의 왕묘군 La nécropole royale de Tanis》(1947~1960) 《피라미드 시대의 이집트 L’Egypte àl’époque des pyramides》(1954)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에르 몽테 [Pierre Montet] (두산백과)

 

 

 

 

페니키아 [ Phoenicia ]

요약
지중해 동안을 일컫는 고대 지명. 일반적으로 북쪽의 에리우세루스에서 남쪽의 카르멜산 까지를 가리키나 시대에 따라 그 범위는 달라진다. 베리토스(베이루트, Beirut), 시돈(Sidon), 티레(Tyre), 비블로스(Byblos) 등의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한 도시연맹의 형태를 취했으며, 거주민은 주로 해상무역에 종사했다.

페니키아는 오늘날의 시리아레바논 해안지대, 즉 지중해 동안을 일컫는 고대 지명이다. 일반적으로 북쪽으로는 오늘날 카비르(Kabīr) 강으로 불리는 엘레우세루스(Eleutherus)강에서 남쪽으로는 카르멜(Carmal) 산까지를 가리키나 시대에 따라 그 범위는 달라진다. 하나의 정치 단위로 통일된 적은 없으나 시기마다 세력이 강력한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한 도시연맹의 형태를 취했다. 주요 도시로는 베리투스(Berytus, 오늘날의 베이루트), 티레(Tyre), 트리폴리(Tripoli), 시돈(Sidon), 아크레(Acre, 아코: Akko), 비블로스(Byblos), 우가리트(Ugarit, 오늘날의 라스샴라: Ras Shamra) 등이 있다.
 
페니키아인들은 주로 지중해를 통한 해상 무역에 종사했으며, 발굴 자료에 따르면 이집트 제 4왕조(B.C. 2613 ~ B.C. 2494 추정) 때부터 이집트와 비블로스(Byblos) 간의 상업 교역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페니키아인의 기원은 셈어족(Semitics)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이 B.C. 3000년 경 서쪽으로 이주하여 동지중해안에 정착한 데서 주로 찾는데, 그들의 원래 고향이 어디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페르시아만 연안으로 추정되고 있다.
 
페니키아인은 초기에는 가나안(Canaanites)계(系)가 주를 이루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시간이 지나면서 아리아계, 후리르계와 혼혈을 이루어졌다. 그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불렀는가는 확실치 않으나, 페니키아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은 그리스인들에 의해서였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을 포이니키스, 즉 '자(紫)색의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페니키아인들이 값 비싼 보랏빛 염료를 만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름은 B.C. 1200년 경 페니키아가 해상 무역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된다.
 
페니키아는 본래 이집트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며, B.C. 1500년 경까지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스 3세의 통치를 받았다. 그러나 B.C. 14세기에 들어 히타이트아모리인(Amorites)이 이집트를 공격하면서 페니키아는 정치적 혼란기를 거쳐 독자적인 해양 세력으로 성장했다. B.C. 1250년경에 이미 페니키아는 동지중해연안과 에게해 연안을 장악했으며, 티레, 시돈, 트리폴리, 아라두스, 비블로스 등의 도시 국가들이 크게 발전했다.
 
B.C. 12세기에 이르러 이집트의 영향력이 매우 약해지면서, 페니키아는 지중해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했으며, 스스로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지중해 연안의 사이프러스, 코카서스, 사르디니아, 이베리아 반도 등을 식민지화 한 것은 물론이며, 뛰어난 항해술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서안과 동인도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해상 교역과 문화 전파를 통한 페니키아의 전성기는 약 400년간 지속되었으며, 이 시기에 오늘날 알파벳의 모태가 되는 페니키아어 알파벳이 발명·보급 되었다.
 
그러나 B.C. 9세기에 이르러 아시리아 세력이 팽창하면서 페니키아의 독립성은 점차 축소되었으며, 기원전 538년에 이르러서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B.C. 4세기 무렵 그리스가 성장하자 페니키아는 B.C 350년에 시돈이 공격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그리스의 한 속주가 되었다. 특히 티레는 B.C. 333년 ~ 332년에 알렉산더 대왕의 직접 통치를 받았으며, B.C. 64년 페니키아 전역이 로마의 시리아 속주로 편집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그리스의 통치 하에 있었다.
  
페니키아의 항해술

페니키아는 중개무역을 중심으로 하는 해상 교역을 통해 지중해 전역을 장악했는데, 그 바탕에는 우수한 조선기술과 항해기술이 있었다. 특히 페니키아의 행해술은 연안항법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천문 관측과 조수간만의 차·조류의 흐름 등에 대한 전문 지식을 토대로 하였다. 또한 조선기술에 있어서도 전투를 목적으로 하는 길고 폭이 좁은 선박과 상선용의 라운드 선박으로 선박의 종류를 이원화 시켰으며, 상선의 경우에는 화물적재능력을 최대화 하기 위해 노(櫓)가 거의 필요 없는, 돛에 의존하는 범선을 주로 사용했다.
 
페니키아의 주요 생산품과 교역품

페니키아는 삼나무·소나무 등의 목재, 티레·비블로스·베리투스에서 생산되던 고운 아마포, 고둥의 분비액에서 추출하는 보랏빛 염료와 염색 옷감, 시돈에서 생산되던 자수제품, 포도주, 금속, 유리 공예품, 채색 유기, 소금, 건어물 등을 주로 수출했다. 또한 지중해연안, 아프리카, 아시아를 잇는 중개 무역을 통해 귀금속, 상아, 공예품 등을 사고 팔았으며, 식민지였던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은을, 사이프러스에서는 구리를 생산해 거래했다.
 
페니키아의 문화: 미술, 공예, 알파벳

페니키아 문화에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에게해, 시리아의 문명에서 온 소재와 관념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오늘날 남아있는 대부분의 페니키아 유적은 주로 평면 부조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비블로스에서 출토된 아히람(Ahiram, B.C. 11세기 말 비블로스의 왕)의 석회암 석관이다. 페니키아의 문화 유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페니키아 문자이다. 페니키아는 본래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를 사용했으나 B.C. 15세기 경에 22개의 자모로 이루어진 고유한 문자체계를 발명했으며, 비블로스를 중심으로 사용되었다. 후에 그리스인들이 이 표기법을 채택하여 오늘날 로마자 알파벳의 원형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페니키아 [Phoenicia] (두산백과)

 

 

 

 

 

 

페니키아문자[ Phoenician alphabet ]

요약
아람문자 ·헤브라이문자와 함께 북(北)셈문자에 속하는 고대문자.

아람문자·헤브라이문자와 함께 북셈문자에 속하는 고대문자이다. 그 기원은 시나이문자이며, 이 문자의 발달 초기에 이집트히에로글리프나 크레타의 회화문자의 영향을 받았다. BC 15세기에 이미 22자의 자음으로 된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료(史料)는 BC 13세기의 비블로스왕 아히람의 관(棺)에 새겨진 각문(刻文)이다. 그 후 BC 11세기에 이르러 페니키아인의 식민 ·무역활동에 의하여 지중해 연안지방에 전파되었다(식민 페니키아문자). 그 후 이오니아를 경유하여 BC 8세기에 그리스 본토에 전해진 것이 모체가 되었고, 여기에 모음이 추가되어 오늘날과 같은 알파벳이 형성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페니키아문자 [Phoenician alphabet] (두산백과)

 

 

알파벳 [ alphabet ]

요약
세계의 문자체계 중에서 현행의 라틴문자(로마자)·슬라브문자·그리스문자 및 이 계통의 각종 문자를 낳은 체계 또는 거기에 사용된 문자의 기초적인 서열.

문자에는 단어문자(한자 등)·음절문자(일본의 가나 등)·단음문자(單音文字 또는 음소문자;한글 등) 등이 있다.

알파벳 체계는 이 가운데 단음문자를 아크로포니(頭音法)에 의하여 배열하는 것으로서 상형문자의 두음(頭音)만을 그 문자의 음가(音價)로 삼고 있으며, 한글도 이 체계에 속한다. 예를 들어 페니키아문자 알레프(aleph:소를 의미하는 기호)에서 A, 베트(beth:집을 나타내는 기호)에서 B가 만들어졌다. 알파벳이라는 명칭도 이 페니키아어의 유파(流派)에 속하는 그리스문자의 자모표(字母表)의 처음 두 글자인 α(알파)와 β(베타)가 결합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알파벳 [alphabet] (두산백과)

 

 

 

 

 

성 요한 성당

 

1115년 십자군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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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의 성모상이 있는 산

 

 

 

호텔 주변 저 산 위에 있는 레바논 성모상

올라 가는 케이블카로 있는 데...

내려다 보는 전망이 좋다는 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못 올라 갔다.

 

 

 

 

 

 

 

 

 

 

레바논의 숙소 "MADISSON HOTEL"

 

 

 

 

 

 

레바논의 마로나이트

마로나이트(Maronites)는 레바논의 기독교인 계열 중 다수를 차지하는 종파이다. ‘마로나이트’의 유래와 관련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4세기 경 시리아의 오론테스(Orontes) 강변에서 수도생활을 하였던 마론(St. Maron)의 추종 무리를 가리킨다. 마론의 추종자들은 마론이 사망한 후 그의 무덤 위에 수도원(Monastry)을 세우고 마론의 가르침을 전파하였다. 마로나이트는 당시 이단으로 여겨졌던 단의론(Monothelitism, 單意論)을 받아들였다.

단의론은 예수에게 한 의지(Will)가 있어 예수 안에 있는 신성(divine, 神性)과 인성(human, 人性)을 하나로 묶어 움직이게 했다는 주장인데, 이는 로마 가톨릭의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마로나이트는 비잔틴 시대부터 계속적인 탄압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9세기 이슬람 압바스(Abbasids) 왕조 때 핍박이 거세어지자 많은 수의 마로나이트들이 시리아에서 레바논의 산간 지대로 이주하였다. 그들은 레바논의 험한 준령에 공동체를 구성하고 성자 마론의 삶을 본받아 수도생활에 정진하였다. 그러다가 1608년 로마 가톨릭과 화해하게 되면서 로마 가톨릭의 한 분파(a branch of Roman Catholicism)로 인정받게 되었다.

마로나이트는 18세기 이후 프랑스와 손을 잡기 시작하였다. 1943년 레바논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할 시점에는 프랑스의 지원 하에 마로나이트에게 유리한 협약이 만들어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요직이 마로나이트에서 선출되었다. 이 합의에 따라, 마로나이트는 권력의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 계열 중 가장 큰 종파로 발전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명상가 칼릴 지브란(Khalil Gibran)의 고향인 해발 2천 미터의 브샤레(Bechare) 마을로 올라가는 카디샤 밸리(Qadisha Valley: 성자들의 계곡)는 가파른 절벽에 굴을 파고 들어가 수도생활에 전념하였던 마로나이트 수도사(修道士)들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마로나이트는 현재 레바논에 7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은 매년 2월 9일 성 마론의 탄신일(St. Maron's Day)을 기념한다. 마로나이트 수장1)은 주교 회의에서 선출되며 후에 로마 교황청의 추인을 받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톨릭의 란 분파라지만 그들의 종교는 묘했다.

우리 눈에는 정교회 필이 나는 데다 성모상등의 모습이 세련되지 못했고 거리.건축물 주변에 모셔져 있는 모습이...

종교 문제로 내전이 가시지 않는 레바논

좀 더 세련된 종교 생활을 모색해 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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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옥상에서 지중해로 떨어지는 노을를 잡고 있는 데

반대편 레바논의 성모상이 있는 산의 중턱에서 총소리가...

깜짝 놀라 몸을 웅크리고 돌아보니 성당 주변에서 귀여운 불꽃놀이가...

호텔방에 있던 아내도 소리에 놀라 휴대폰으로 연락을 여러번...

총소리가 언제라도 날 수 있는 나라라 순간 긴장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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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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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어콘의 위력(?)으로 편안한 첫날밤을 보내고

전통시장등의 투어에 나서다.

 

 

 

 

 

 

 

 

 

 

 

 

 

 

 

 

운하를 파 바닷물을 육지로 끌어 들인 강 "두바이 크리크"

 

 

 

버르두바이 와 데이라 지역을 오가는 "아브라 택시"

 

 

 

 

 

 

 

 

 

 

 

 

바스타키야의 민박집

 

 

 

 

 

 

 

 

 

 

 

 

 

 

 

두바이 민속촌 "바스타키야"

 

 

 

 

 

 

 

 

두바이 왕궁(?)

 

 

 

 

 

 

7성급 호텔 "버즈 알 아랍'

 

 

 

 

 

인공섬 '팜아일랜드'에 위치한 베컴의 별장이 있는 입구

 

 

팜아일랜드에 위치한 '아틸란티스 호텔'

 

 

 

 

 

 

 

 

 

 

 

 

에미레이츠몰안에 위치한 "실내 스키장"

 

 

 

 

 

 

 

 

 

 

 

물가가 비싸서 일까

중형버스에 짐을 실을 곳이 없어 리어카(?)를 매달고 다녀야 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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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는 하고 나섰지만

더워도 너~~무 더웠다.

한증막에 비유해도 과장이 아니다.

실내에서 밖으로 나서면 안경과 카메라 렌즈에 서린 김에 사람과 기계의 눈을 한참이나 멀게 했다.

거기서도 돈이 있어 행복해 하는 그들에 묘하기도 했지만...

나는 살기 싫었다.

새삼 우리 나라, 좋은 나라 ....다만, 지도자들은 빼고...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칼리파'(62층,626m)

 

 

 

 

 

 

 

 

빌딩 건너편의 "두바이몰"

 

돈이 있어 가능한 쇼핑센타

축구장 몇배 크기의 실내를 냉방으로 빵빵...

촌놈 거리 헤메이기에 딱이었다.

 

 

 

 

 

 

 

 

 

 

 

 

 

 

중동의 꽃_호텔 주변 아침 산책 길에

 

 

 

이번 여행의 첫날밤을 묵은 AL MANARA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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