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18일
호텔에서 본 프라하 일출
프라하의 봄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자유화운동. 이 운동을 막기 위하여 불법침략한 소련군의 군사개입사건을 포함하여 ‘체코사태’라고도 한다. 1956년 소련 내에서 스탈린 격하운동이 있은 후에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스탈린주의자 노보트니 정권의 보수정책이 계속되었고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들의 민주 ·자유화의 열망이 점차 고조되어 갔으나, 노보트니 정권은 이를 외면한 채 소련만을 추종하였다. 1960년대 이에 반발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지식층이 중심이 되어 민주·자유화의 실현을 위한 조직적인 운동을 펴기 시작하였다. 이 물결에 밀려 마침내, 1968년 1월 노보트니 당 제1서기가 물러나고, 개혁파의 둡체크가 당 제1서기를, 체르니크가 수상을, 온건파 스보보다가 대통령직을 각각 맡았다. 이들 개혁파는 1968년 4월 체코슬로바키아공산당 중앙위 총회에서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 즉 민주·자유화노선을 제창하는 강령을 채택하였다. 그 내용은 재판의 독립, 견고한 의회제도의 확립, 사전검열제의 폐지, 민주적인 선거법제도의 창설, 언론 ·출판·집회의 자유보장, 국외여행 및 이주의 자유보장, 경찰정치의 부활저지, 경제계획의 추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동등한 권리에서의 연방제로의 이행, 자주독립에 대한 대외정책 추진 등이다. |
따라서 사실상 검열제가 폐지되고 많은 정당 ·정치단체가 부활되었으며, 의회는 활발한 논의와 비판의 광장이 되었다.
이러한 자유화를 위한 정책적 변화가 있자 온 국민은 ‘프라하의 봄’이라 하여 공산체제로부터의 탈바꿈을 환영하였다. 그러나 소련은 이러한 체코사태가 동유럽 공산국가들에게 미칠 영향을 우려하여, 이 체제변화를 ‘마르크스·레닌주의로부터의 이탈’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불법으로 무력침공을 감행하였다. 1968년 8월 20일 소련군을 비롯한 바르샤바조약기구 5개국군 약 20만 명을 동원하여 침공함으로써, 이 자유화운동을 일시에 저지하고, 개혁파 주도자들을 숙청하였다. 1969년 4월 소련은 둡체크를 강제 해임시키고 후임 서기장에 후사크를 임명하였으며, 개혁파를 추종한 50여만 명의 당원을 제명 또는 숙청하였다. |
요즘 출타중이신 각하도 그러시지만
외국에 나가면 가끔 으쓱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먼 이국에서 보는 우리 기업의 광고입니다.
이제는 구석, 한쪽이 아니라..
쎈터, 전면으로 나가는 것 같습니다.
광고을 전혀 허용치 않는 덴마크 여왕광장에도 유일하게 *성의 광고는 버티고 있고,
러시아에 중요 교량을 건설하고 광고로 활용 후 기부키로 한 *G...
여기는 프라하성을 오르는 길입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오르는 길...
그길의 광고판 전부를 1년간 계약했다 합니다.
얼마전까지는 '세계의 *성'이라고 광고하는 통에 한국기업인 줄을 몰랐는 데
올립픽,월드컵을 거치며 '한국 *성'이라고 광고를 하여 이제는 많이 한국기업임을 안다 하더군요.
전자제품을 잘만드는 첨단을 걷는 나라 한국으로 이미지 매겨지고 있고
우리의 휴대폰은 고급이고 모두가 가지고 싶은 제품이라 합니다.
이제는 물건 하나만 좋으면 시장이 세계인 거 같습니다.
순식간에 '왕대박 !' 그런 가능성을 보고 조국의 희망이 보여 좋았습니다.
해그림/김명희 작
해그림/김명희작
프라하성
체코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물이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성이다. 9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카를 4세 때인 14세기에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었고, 이후에도 계속 여러 양식이 가미되면서복잡하고 정교한 모습으로 변화하다가 18세기 말에야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
그 뒤 블라디슬라프 2세 때 후기 고딕 양식이 가미되고, 1526년 합스부르크왕가가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다시 르네상스 양식이 도입되었다. 그러다 바로크시대인 1753년부터 1775년 사이에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는데, 시작에서 완성될 때까지 900년이나 걸렸다. 1918년부터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면서 내부 장식과 정원이 새롭게 정비되었다. 왕궁뿐 아니라 성 안에 있는 모든 건축물들이 정교한 조각과 높이 솟은 첨탑, 화려하고 다채로운 장식으로 꾸며져 있어 유럽에서도 중요한 역사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프라하뿐 아니라 체코·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명소이며, 특히 성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
성 비투스 성당(St Vitus Cathedral) |
총길이 124m, 폭 60m, 천장 높이 33m, 탑높이 100m의 프라하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건축물중 하나로 현재 대통령궁으로 쓰이고 있는 프라하성곽안에 위치해 있다. 교회의 건축이 시작된 것은 600여년전인 1344년이나 증개축이 계속되어 체코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29년이다. 또 성당이 완성되었을 때는 초기 비투스 성당의 최초 설립자이자 보헤미아의 수호성인인 웬체슬라스 왕자 사망 1,000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
황금소로(Zlata ulicka) |
16세기의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거리로 후기 고딕으로 지어진 프라하 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좁은 길이다. 동화에 나올법한, 허리를 굽혀야 겨우 들어 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길인데, 원래 이곳은 성에서 일하던 집사와 하인들이 살던 곳이었으나 이후 연금술사들이 모여 살면서 황금 소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하지만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그 집들 사이에 있는 22번지가 실존주의의 대표적 작가인 카프카가 작품을 집필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벌써 500년 이상이 지났지만 이곳은 여전히 16C 옛날 모습 그대로의 거리 모습을 보전하고 있고, 이제는 서점, 레코드 가게, 기념품점과 같은 상점들이 들어서 있어 손님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
프란츠 카프카 체코의 수도 프라하 출생. 부유한 유대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폐결핵으로 41세의 생애를 마쳤다. 평범한 지방 보험국 직원으로 근무하였으며, 카프카문학의 독자적인 세계도, 그가 죽기 직전 2개월간의 요양기간과 짧은 국외 여행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떠나지 않았던 프라하의 유대계 독일인이라는 특이한 환경의 소산이다. 독일계 고등학교를 거쳐 프라하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였다. 그 사이 훗날 카프카 전집의 편집자가 된 M.브로트를 알게 되어 문학에 대한 정열이 더욱 뜨거워져 단편 《어떤 싸움의 기록 Beschreibung eines Kampfs》(1905) 《시골의 결혼 준비 Hochzeitsvorbereitungen auf dem Lande》(1906) 등을 썼다. 1906년에 법학박사의 학위를 받았고 법률 실습 등을 거쳐, 1908년부터 노동자재해보험국에서 1922년 7월까지 근무하면서, 잡지 《휴페리온》에 8편의 산문을 처음으로 발표하였다. 1912년 초에 《실종자》(후에 《아메리카》로 改題, 1927년 간행)를 착수하였고, 9월에 《심판 Der Prozess》(1925년 간행), 연말에 《변신(變身) Die Verwandlung》(1916년 간행)을 써서, 이 해는 최초의 중요한 결실기가 되었다. |
1914년에 《유형지에서 In der Strafkolonie》(1919년 간행)와 《실종자》를 완성하였고, 1916년에는 단편집 《시골 의사 Ein Landarzt》(1924년 간행)를 탈고하였다.
1917년 9월, 폐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아, 여러 곳으로 정양을 겸하여 전전하였고, 그 동안에 장편소설 《성(城) Das Schloss》(1926년 간행) 《배고픈 예술가 Hunger Künstler》(1924년 간행)를 비롯한 단편을 많이 썼다. 1924년 4월 빈 교외의 킬링 요양원에 들어가, 6월 3일 그곳에서 죽었고, 1주일 후 프라하의 유대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사르트르와 카뮈에 의해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받은 카프카 문학의 의의 ·문제성은, 무엇보다도 인간 운명의 부조리성, 인간 존재의 불안과 무근저성을 날카롭게 통찰하여, 현대 인간의 실존적 체험을 극한에 이르기까지 표현한 점이다 |
카프카가 집필했던 22번가
프라하성에서 내려 본 프라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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