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12일

여행정보 http://www.hanatour.com/asp/travelinfo/if-13000.asp?city_code=KRK


060812-6420

바벨성
바벨성
바벨성
바벨성
바벨성
진기한 보물들이 많은 바벨성(Zamek krolewski na Wawelu)
도시 남쪽 비스와강 상류에 위치하며 성의 역사는 9세기 초부터 시작된다. 성 내부에는 중세때의 갑옷, 검, 장신구, 초상화등을 전시하고 있다. 근처에 녹지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화재 후에 고딕 양식의 바벨성은 1502년부터 1536년까지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주변에는 커다란 정원이 있고 문 네 개와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복도가 있다. 바벨성은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진기한 보물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 바벨 대성당은 세 번째의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20개의 예배당 가운데서 황금색의 돔으로 덮힌 지그문트 예배당(Kaplica Zygmuntowska)은 르네상스 양식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대성당 내부에는 폴란드 왕의 석관과 가치있는 예술품들이 있다. 그리고 지하에는 폴란드 왕과 영웅들의 묘소가 있다. 대성당 탑에 올라가면 특별한 경우에만 울리는 유명한 지그문트 종이 있다. 도시의 소음에도 불구하고 수킬로미터까지 울려 퍼진다.







중앙시장 광장
중앙시장 광장
중앙시장 광장
유럽에서 2번째로 큰 중앙시장 광장
크라코프의 사교장인 중앙시장 광장(Rynek Glowny)

중앙시장 광장은 크라코프의 사교장으로서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구시가지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4만m²로 베니스의 산 마르코 광장 다음으로 유럽에서 두번째로 넓은 광장이다. 주위에는 옛 크라코프 귀족들의 저택이 줄지어 있다.

광장 중앙의 건물은 직물 회관으로 고딕 양식에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된 건물이다. 직물 회관안에는 관광객들이 기념품을 살 수 있는 많은 잡화점이 있다. 직물 회관에는 18,19세기의 폴란드 조각과 회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국립박물관의 일부가 있다.
시장옆쪽에 있는 "Bei Noworol"이라는 카페에서는 민속 예술품같은 각 시기의 가구들을 구경할 수 있다.


















크라코프 (Kraków)

요약

폴란드 남부 크라코프주의 주도. 인구 74만 5400(1996).

설명

폴란드 남부 크라코프주의 주도. 인구 74만 5400(1996). 마오폴스카지방의 문화·과학·산업의 중심도시이며 폴란드 제3의 도시이다. 독일어로는 크라카우(Krakau)라 한다. 비슬라강이 남쪽의 카르파트 산지에서 평야부로 흘러나오는 골짜기 꼭대기에 있으며, 도시지역은 바벨성(12∼16세기) 주변의 옛 시가지를 중심으로 비슬라강 서쪽 연안에 펼쳐져 있다. 8세기 무렵 성채가 축조되었고 10세기 후반 체코 지배 아래 놓였으나, 10세기 말에는 폴란드령이 되었으며 1000년 주교단(主敎團)이 설치되었다. 1241년 몽골의 침입으로 전화(戰禍)를 입었으나 곧 복구되었다. 1320∼1609년 폴란드왕국의 수도였으며, 15세기에는 상업·수공업·문화가 두드러지게 발전하였으나, 1596년 바르샤바 천도 후 쇠퇴하였다. 제3차 폴란드분할(1795) 후에는 오스트리아령이 되었으며 1809년 나폴레옹에 의해 바르샤바공국에 합병되었다. 1815년 빈회의에서 시가지와 그 주변이 러시아·오스트리아·프로이센 보호 아래 놓인 크라쿠프공화국으로서 자치가 허용되었으나 1846년의 독립봉기가 실패하여 다시 오스트리아에 합병되었다. 그 뒤 오스트리아령 폴란드의 정치·문화 중심지가 되었으며 제1차세계대전 후 폴란드로 되돌려졌다. 제2차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군 점령지 총독부가 설치되었고 1945년 1월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제2차세계대전의 전화를 벗어나 옛 문화유산을 많이 간직한 역사적인 도시로, 바벨 언덕에는 성 외에 폴란드 왕족의 묘가 있는 대성당이 있다. 15세기의 장대한 제단화가 있는 마리아키(Mariachi)성당을 비롯하여 오래된 교회가 50개가 넘으며, 14세기 직물관(織物館)도 남아 있다. 1364년 창립된 야기에보대학은 N. 코페르니쿠스가 공부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발트해와 흑해를 잇는 교통 중심지이며, 수공업시대부터 섬유·직물·식품가공·담배(전국생산의 41%) 등 경공업이 발달하였다. 제2차세계대전 후 노바 루다 지구에 레닌제철소를 중심으로 한 철강 콤비나트가 생겨 폴란드 최대의 철강기지로서 국가경제를 지탱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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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베스트 샷 2006. 8. 22. 19:02


6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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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12일

폴란드 http://www.koreabound.com/han/nation/europe/poland_info.htm


060812-6340

체코와 폴란드 국경

아직 유럽연합에 미가입 상태라 그런지 여권 확인 과정을 거치는 입출국 절차를 밟았다.

아직은 빈국의 모습이 보이는 초라한 국경

그러나 분단국가에서 온 우리에겐 장난같은 그런 국경이었다.



점심을 먹었던 식당

항상 느끼지만 현지 식당들에는 낭만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일행을 일정 내내 태우고 다녔던 벤츠 버스

운전기사 체코인 불라디미르(24세 총각)



아이슈비츠 수용소(현지 가이드 :작곡을 전공한다는 이우화씨)

인류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 한다.

하여 그들의 편리대로 편집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분명 인류에 대한 큰 죄악임이 분명하다.

어느날 갑자기 이유도 없이 잡혀가 영문도 모르고 죽어 갔을 영혼을 생각해 보면...

방문한 날은 너무도 청명하여 스산한 분위기에 어울릴 수용소의 표정이 언바란스 했지만

망자의 신발, 안경, 머리카락, 사진등의 유물을 보면서 한인간의 허망함을 실감 하였다.

과연 거대한 사회 조직의 가동에 있어 일개인의 의미는 무엇이고 가치는 얼마 정도 일까.







우리 일행












통곡의 벽

바로 오른쪽 옆건물에서 간이재판을 하고 필요에 따라 저벽에 세우고 총살을 했다고 함.





수용소장이 전쟁후 도망 가다 잡혀서 죽었던 교수대




가스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수용소이며, 폴란드의 오슈비엥침(옛이름 아우슈비츠)에 있는 옛 수용소이다. 위치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약 300km 떨어진 곳이며, 이곳에서 처형된 사람들은 유대인, 소련군 포로, 정신병자, 동성애자, 기타 나치즘에 반대하는 자들이었다. 나치가 세운 강제수용소 중에서 최대 규모였다.

배경

나치가 본격적으로 유태인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은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소련을 침공하면서부터이다. 하인리히 히믈러SS특별행동부대(SS Einsatzgruppen)을 A, B, C, D의 4개 지대로 편성하여 진격하는 국방군의 뒤를 따라 소련 영내에서 각종 처형임무에 투입하였다. 이들이 처형한 이들은 유태인, 공산주의자, 정치장교, 공산청년동맹 소속 청년당원 등이었다. 처음 이들의 처형 방법은 직접 총살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을 총살했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우선 처형 속도가 문제였으며 이와 더불어 탄약 문제도 심각했다. 둘째 부대원들에게서 심리적인 부작용 현상이 발견되었다. 이런 문제에 직면한 히믈러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할 것을 지시했다. 여러가 지 방법 중에 S트럭이 실험되었다. 자동차 배기가스를 이용한 S트럭은 불결한 결과로 인해 처형대원들의 불만을 샀고, 다시 기존 강제수용소와 S트럭에서 사용한 가스를 이용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치클론B를 이용한 아우슈비츠의 가스 대량 학살이었다.

경과

수감자들은 매우 좁은 크기의 방에서 생활했다. 이 방은 너무나 좁아서 일어서 있을 수가 없었다. 최초의 수용자들이 아우슈비츠에 온 것은 1940년 6월로, 폴란드 정치범 728명이 첫 수용자들이었다. 이후 아우슈비츠로 보내진 폴란드 수용자들은 약 15만명이며, 이중 7만 5천명이 죽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1941년 9월, 소련군 포로와 유대인 수용자들이 처음으로 독가스실에서 처형당한 것이 아우슈비츠에서의 첫 처형이었다. 독가스실에서는 한 번에 약 2,000여명의 수용자가 처형되었다. 대부분이 노인과 여성,그리고 아이들이었다. 독가스실은 대개 샤워실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사용된 독가스는 효과가 빨리 나타나는 치클론 B였다.

처형된자들의 시체는 시체 소각로에서 대량으로 불태워졌는데 하루에 약 1,500~2,000구의 시체가 소각되었다. 또한 수용자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카펫과 가발을 만들었다.

희생자수

기존에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당한 사람은 약 400만명이며 이 중에서 약 250만명이 유대인이라고 알려져왔다. 처음에 이 수용소를 해방한 소련군의 발표였다. 그러나 이 숫자에 대한 반론도 있다. "과장되고 꾸며낸 얘기가 많다"는 제목으로 씌여진 뉴스위크지 1995년 1월 18일 자의 기사[1] 에 의하면, 아우슈비츠에서 실제로 사람은 유태인을 포함하여 110만 ~ 150만명으로 추산했으며, 가장 많은 희생자가 유태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정확하게 몇 명이나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유태인 외에 나머지 희생자들은 폴란드 정치범, 소련군 포로(주로 정치장교), 집시 등이었다. 이어 2005년 아우슈비츠 해방 60주년 행사를 알리는 기사에서는 유태인 희생자 수를 100만명으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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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지하감방 질식의 방 수감자들이 손톱으로 그린 벽화. 해골같은 모습은 자신들의 얼굴이다.
수용소 의사 멩겔레 박사에 의해 인체실험을 받고있던 집시소녀들. 너무 여위어 성별구분도 어려울 정도다.

가스실 바로 옆에 설치된 소각장. 독일에서 만들어 현지에서 조립한 이 소각로는 지금도 가동될 수 있다.

면적이 54만평이나 되는 제2수용소 구내로 뻗은 철도 인입선. 유럽 각지에서 끌려온 유태인들은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남자는 강제노역장, 노약자는 가스실로 끌려갔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포로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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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11일

체코

  • 극단의 이념 교육으로 자라난 사람으로 동구에 대한 생각을 다르다.
  • 공포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섬찟한 느낌과 함께
  • 뭔가 신비하게도 궁금한 점이 많다.
  • 하여 거기로 나서 보기로 했다.





060811_6328

창가에 앉고 싶지만 그것이 맘대로 되던가.

남의 창을 빌려서 한컷.

보통사람의 여행이 다 그렇지만 찡겨가는 이름도 이쁜 비지니스석

그래도 그나름대로 맛이 있다.

머갈 여행 떠나는 사람들과 사귀기도 좋고

어렸을 때 빠끔살이 처럼 끼니 때 마다 챙겨주는 조그만 그릇의 별미 먹는 맛도 쏠쏠하다.

체코공항이 작아서 점보기는 갈 수 없고... 그래도 300여석이나 되는 A300이 꽈악찼다.

동유럽 여행이 유행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타고오간 비행기 에어버스 A330-300



체코 루지네 국제 공항

인천 공항 처럼 택도 없이 비대하지는 않했지만

잘 짜여진 실속, 사용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는 정도의느낌이었다.

입국 수속의 민첩성등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불만으로 하기에는 그런 정도.

언제나 처럼 내게는 전에 공산국가였던 나라의 입국느낌은 묘하다.

< 체코 여행 정보 >

http://www.hanatour.com/asp/travelinfo/if-12000.asp?country_code=CZ



프라하로 입국하여 버스를 타고 바로 체코 모라비아의 주도 부르노로 이동

호텔 옆 식당에서의 저녁 식사

그들의 식사에는 밴드가 동참하여 음악과 함께하는 여유가 있다.


체코 제 2의 도시이자 풍부한 문화유산의 도시. 과거 모라비아 왕국의 수도로 발전하면서 여러 번의 전쟁을 치르면서도 이 지방의 문화, 학문의 중심지로 자리잡아 많은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대학 등이 있다.

구시가의 중심에 위치한 자유 광장은 광장 한 가운데를 관통하며 전차가 달리고 때때로 문화행사가 열리기도 하는 곳으로 주변에 야외 까페와 기념품 가게 등이 있어 여행 중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구시가지 서쪽 언덕에 위치한 슈필베르크 성은 13세기의 성터이며 이 곳에서 모라비아의 자연과 브르노 시가지의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북쪽의 성 야콥 교회 역시 13세기 지어진 교회로 92m의 첨탑이 교회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다. 브루노 서쪽 외곽의 멘델수도원은 유전학의 대가 멘델이 사제 생활을 하면서 완두콩의 교배 실험을 했던 유서깊은 장소이다.

<부르노여행 정보 >

http://www.hanatour.com/asp/travelinfo/if-13000.asp?city_code=BRQ



양초 공예에 가까운

오랜 역사를 보여 주는 촛대

식당 인테리어가 깔끔 했고 식탁에는 촛불을 켜게 되어 있었다.




식당의 외관

언제나 북적 거리지는 않을 것 같은

그러면서도 아늑한 자리를 줄 것 같은...






비행 10시간 30분, 버스 2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이국의 첫날 밤'보로노즈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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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에서

베스트 샷 2006. 8. 10. 20:26


060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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