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라

[ Agra ]

요약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서부에 있는 도시.
 
위치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서부

인구 약 89만 9천(1991). 야무나강() 우안에 있는 지방행정의 중심지이다.

델리 남동쪽 200km 지점에 있다.

동쪽에는 갠지스강 유역의 광대한 평야가 전개되고, 북쪽은 야무나강 연안을 따라 델리를 거쳐 펀자브 지방의 평야에 연속되어 있다.

무굴 제국이 수도를 델리로 옮길 때까지 1564~1658년 약 1세기 동안 수도로서 북부 인도를 지배했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지배를 받을 때도 주변지 구의 행정중심지로서 중시되었으며 오늘날도 지방행정부의 청사가 있다.

대리석 세공 ·면직물 ·융단 ·제화 등의 제조업도 활발하다.

두 강 연변의 교통로와 데칸고원에서 북상하는 교통로의 접속점에 있어,

도로 ·철도 ·하천 교통의 요지로서 농산물과 일용잡화의 집산이 활발하다.

군사상 ·교육상으로도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중심을 이루며,

시내와 근교에는 무굴 제국시대 최고 전성기의 건축 ·미술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붉은색 사암으로 성벽을 쌓은 광대한 아그라성()과 이슬람건축의 대표작인 타지마할이 널리 알려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그라 [Agra] (두산백과)

 

 

 

 

 

 

타지마할

요약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 인도 아그라(Agra)의 남쪽, 자무나(Jamuna) 강가에 자리잡은 궁전 형식의 묘지로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이 왕비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여 건축한 것이다. 198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원어명 Tāj Mahal
국가 인도(India)
지정일 1983년
분류 문화
소재지 Uttar Pradesh, Agra District
좌표 N27 10 27 E78 02 32

시공을 초월한 완벽한 아름다움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22년 동안이나 그 무덤을 지었다는 한 남자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 깃들었기 때문일까?

인도 이슬람 예술의 걸작 타지마할은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순백의 대리석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빛깔을 달리하며 보는 사람의 넋을 빼놓고,

웅장한 건물은 중압감은커녕 오히려 공중에 떠있는 듯 신비롭고,

건물과 입구의 수로 및 정원의 완벽한 좌우대칭은 균형미와 정갈함을 느끼게 한다.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의 수도였던 아그라(Agra) 남쪽, 자무나(Jamuna) 강가에 자리잡은 궁전 형식의 묘지다.

무굴 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Shah Jahan, 재위 1592~1666)이 끔찍이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추모하여 만든 것이다. 무굴 제국은 물론 이탈리아, 이란,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의 건축가와 전문기술자들이 불려오고,

기능공 2만 명이 동원되어 22년간 대공사를 한 결과물이다.

최고급 대리석과 붉은 사암은 인도 현지에서 조달되었지만,

궁전 내외부를 장식한 보석과 준보석들은 터키, 티베트, 미얀마, 이집트,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수입되었다.

국가 재정에 영향을 줄 정도의 거액이 투자되었다고 한다.

왕의 사랑과 쏟은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찬란한 무덤’이라 불리는 타지마할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사랑의 금자탑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모습이다.

붉은 사암으로 된 아치형 정문을 통과하면 넓은 뜰에 수로가 있는 무굴양식의 정원이 펼쳐진다.

길이가 약 300미터에 이르는 일직선의 수로 중앙에는 연꽃 모양의 수조가 있고, 분수가 물을 뿜어내고 있다.

수로에 비친 타지마할의 모습 또한 환상적이어서 수많은 사진가들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사랑으로 빚어낸 ‘찬란한 무덤’

 

긴 수로의 끝에는 눈부신 순백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본 건물이 서 있다.

네 모퉁이에 배치한 첨탑을 비롯해 좌우가 정확한 대칭을 이룬 건물은 육중한 몸체에도 불구하고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내부와 외부의 벽면은 보석과 준보석으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여기에는 대리석에 무늬를 박아 넣는 피에트라 듀라(Pietra-dura) 모자이크 기법이 활용되었다.

건물 내부 1층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왕과 왕비의 관이 있지만 유골이 없는 빈 관이다.

샤자 한과 뭄타즈 마할의 육신은 지하 묘에 안장되어 있다.

샤 자한 왕은 애초 타지마할과 마주보는 자무나 강 건너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자신의 묘를 짓고,

구름다리로 연결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자무나 강 건너편에서 건물의 기단을 조성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진위 여부는 확실치 않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공된 후 10년 뒤인 1658년 막내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의 반란으로 왕위를 박탈당하고 아그라 요새(Agra Fort)의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 탑에 갇혀 말년을 보냈다.

다행히도 아그라 요새에서는 2km 떨어진 타지마할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1666년 죽은 뒤에는 그토록 사랑하던 부인 옆에 묻혔으니 마냥 불행하기만 한 말년은 아니었던 듯싶다.

[네이버 지식백과] 타지마할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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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차

[ Orchha ]

요약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에 있는 옛 라지푸트왕조의 수도.
위치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

1531년에 라지푸트왕조의 수도로 건설되었다.

17세기 초에는 분델라의 족장인 주자르 싱이 반란을 일으켰고, 곧 무굴제국의 왕 샤자한의 침략을 받았다.

그 뒤 타지마할을 세운 샤자한과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 등의 왕이 살았다.

영국이 통치하던 때는 인도 중부청에서 관할하였으며 1948년에 인도가 독립하면서 빈디아프라데시주()에 포함되었다.

제한기르마할·라지마할·라지프라빈마할 등의 유적을 비롯하여 인도신화의 신() 비슈누의 일곱 번째 화신 라마를 신으로 모시는 람라자사원·락시미나라얀사원 등의 사원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르차 [Orchha] (두산백과)

 

 

 

자항기르 궁전

[ Jahangir's Palace ]

분류 해외여행 > 관광지
지역 아시아 > 인도 > 아그라
유형 궁전·성
주소 Rakabganj, Agra
가는방법 아그라 요새 내에 위치

1605년 무굴제국의 악바르 대제가 아들 자항기르(Jahangir)의 거처로 마련한 곳으로 추정된다. 힌두 양식과 아프가니스탄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외관을 지녔으며, 궁전 내부 또한 규모와 구조에 가히 놀랄 만하다. 회랑 사이마다 작은 문이 많이 있는데, 아름답고 섬세한 격자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궁전 안에 비밀통로가 많이 있다는 것. 마치 미로같이 통로가 짜여 있어 자칫 길을 잃기 쉽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항기르 궁전 [Jahangir's Palace]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시공사)

 

 

 

자항기르

요약
인도 무굴제국의 제4대 황제. 비()이슬람교도에 대한 인두세를 폐지했고, 많은 종교에 대하여 관대했으며, 문학·미술 등을 보호해 문화의 꽃을 피웠다. 자신의 전기《투즈케 자항기르》를 남겼다.
원어명 Jahāngīr
출생-사망 1569.8.31 ~ 1627.10.28
국적 인도 무굴제국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투즈케 자항기르》

악바르대제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그러나 즉위 때 장자() 호스로와 다투었고,

즉위 후에도 왕비 누르 자한과 그녀의 오빠 아사프 칸 및 대귀족 마하바트 칸 등 궁정을 둘러싼 음모가 치세 중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비()이슬람교도에 대한 인두세()를 폐지하였고,

메와르 라지푸트를 복속시켰으나 만년에는 아편을 애음하고 왕비의 전횡을 허용하는 등 무굴황실의 부패를 초래하였다.

부왕 악바르처럼 많은 종교에 대하여 관대하였으며, 또 문학·미술 등을 보호하여 문화의 꽃을 피웠다.

자신의 전기 《투즈케 자항기르》를 남겼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항기르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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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제국

[ Mughul , ─ ]

요약
16세기 전반에서 19세기 중엽까지 인도 지역을 통치한 이슬람 왕조(1526∼1857).
 

시조 바부르는 중앙아시아를 전전한 후 카불을 점령하고,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1526년 인도에 침입, 델리 왕조인 로디조(1451~1526)의 이브라힘왕을 델리 북방의 파니파트전투에서 격파하고, 델리를 탈취하여 여기에 무굴제국을 창시하였다.

바부르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인 제2대 후마윤은 벵골·비하르 지방에서 일어난 아프간계() 수르 왕조의 셰르 샤에게 패하여, 1540년 페르시아로 도망하였다가 1555년 재차 델리를 점령하고 일시 중단되었던 무굴왕조를 부활시켰다.

그 뒤를 이은 왕이 13세에 즉위한 M.악바르 황제이다. 그는 북인도에 지배력을 확보하게 되자 그 세력을 인도의 다른 지방까지 확대하여, 라자스탄 지방에 독립국으로 있던 라지푸트족의 왕(라자)들을 동맹세력으로 끌어들였다. 또한 1573년 서방의 구자라트 지방에 진격하여 그곳을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 왕조를 타도하였다. 동방으로는 1576년 벵골 지방까지 그의 지배하에 넣었다.

1580년대에는 인도 북서부지방의 펀자브에서 아프가니스탄카불까지도 군대를 파견하여 인더스강 하류 신드 지방까지 정복하였다. 1590년대에는 남하정책으로 데칸 지방의 이슬람 여러 왕조에도 세력을 뻗어나갔다. 행정면에서도 악바르 황제는, 이슬람교도나 힌두교도 등 종파를 가리지 않고 능력에 따라 중용하여 각 지방의 토지측량이나 지세() 결정 등의 실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따라서 무굴제국의 행정 ·사법 ·지방행정 등의 지배체제는 악바르 황제 시대에 거의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악바르 황제의 사후 자항기르, 샤 자한, 아우랑제브로 이어져 이 시기는 무굴제국의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특히 제6대 아우랑제브는 데칸의 이슬람 여러 왕조를 정복하여 최대의 판도를 실현하였다. 그러나 그의 만년인 1674년 힌두교도들이 데칸지방에 마라타왕국을 세워, 무굴제국의 강력한 적대세력으로 등장하였다. 1707년 아우랑제브가 데칸고원의 원정 도중 죽자 제위() 계승을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나 무굴의 중앙 권력은 급속히 쇠퇴해졌다. 18세기 말에 이르자, 약화된 무굴의 중앙권력은 데칸지방에서 델리 주변까지 세력을 확장한 마라타동맹에 의하여 좌우되어, 무굴 황제의 지배력은 약화되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 걸쳐 영국의 식민지 지배세력은 마라타 ·마이소르 등 강력한 봉건세력을 멸망시키고, 인도에서의 식민지 지배영역을 확대하여 갔으나, 명목상으로만 존속한 무굴 황제의 지위는 그대로 남겨 두고 식민지 지배의 도구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1857년, 북인도를 중심으로 ‘세포이의 반란’이 일어나자, 각 주둔지에서 반란을 일으킨 인도의 병사들이 델리에 집결하여, 무굴 황제 바하두르 샤 2세를 추대하여 새로 정권을 수립하였다. 2년에 걸친 이 반란이 영국군의 무력으로 진압되자, 그들은 탄압정책을 한층 강화하여, 그때까지 명목상으로만 남겨 두었던 무굴 황제의 지위를 폐함으로써 무굴제국은 멸망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굴제국 [Mughul, ─帝國] (두산백과)

 

 

 

 

 

쉬시마할(오른쪽 하얀집)

 

 

 

 

 

 

 

 

 

 

 

 

 

 

 

 

 

 

 

 

 

 

 

람 라자 만디르(Ram Raja Mandir)

 

 

 

 

 

 

 

 

 

 

차투르부즈 만디르(Chaturbhuj Mandir)

 

 

 

 

 

 

 

 

 

잔시역

 

잔시

[ Jhansi ]

요약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주도().
원어명 Jhānsi
위치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인구(명) 420,259(2006년)

칸푸르 남서쪽 200km에 있으며, 철도망이 집중되어 있다.

도시는 1613년에 창설되었고, 주요 부분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1742년 마라타족()이 점령하였고, 1886년 영국령이 되었다.

주() 남부의 정치적 중심지인 동시에, 마디아프라데시주 북부에 걸쳐 넓은 상업권()을 지니며, 제분·면공업·식품공업도 성하다.

1857년 세포이 항쟁 때에는 마라타계의 왕비를 내세운 반란군이 이곳에 있던 영국인을 대량 학살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29km 남쪽인 더콴에는 수력발전소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잔시 [Jhansi]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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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그들의 수업

 

 

서부 사원군 입구_한국의 위력

 

 남부 사원군 초입

 

 

 

 

 

 

 

 

 

 

 

 

 

 

 

 

 

 

 발걸이_ 무슨 용도 일까

 

 여기도 학교

 

 

 

 

 

 

자인교(JAINISM) 산띠나뜨 사원(Shri Shantinath Timple)

 

자인교(Jaina교)

BC 6세기경

크샤트리아 출신 마하비라(Mahavira  BC 599-527)가

동물 희생제를 반대, 30세에 출가하여 12년간의 고행끝에 창시

자인교에는 24명의 해탈에 이른 성자 티르탄카라(Tirthankara)가 있는 데

마하비라라 24번째 해탈자라 한다.

자이나라는 말은 지나(Jina)에서 온 것으로

최고의 승리를 성취한 사람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아디나뜨(Adintha Timple) 사원

첫번째 티르탄카라(Tirthankara,해탈한 성자) 아디나뜨에게 봉헌된 사원

내부에 그의 조각상이 있다.

 

 

 

빠르스바나뜨(Parsvanath Mandir) 사원

 

 

 

1. 옷을 입지 않은 사람은 공의파로 완전 무소유를 주장하여 나체로 다닙니다.

2. 흰옷을 입은 사람은 최소한 옷 하나는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도

 

마하비라 부터 시작된 전통은

 - 철저한 무소유, 불살생,윤회,채식,성욕 금지,이성 금지,욕망차단 입니다.

 

인도에 200만면 정도의 신도

 

손에 들린 빗자루는

길을 걷다가 자신도 모르게 벌레가 발에 밟혀 죽을 까바  쓸면서 다니는 용도

 

 

 

24번째  티르탄카라(Tirthankara,해탈한 성자)  교주 마하비라

 

 

첫번째  티르탄카라(Tirthankara,해탈한 성자) 아디나뜨(Adintha)

 

 

16번째 티르탄카라(Tirthankara,해탈한 성자)

높이 4.5m 산티나트(Shantinath)

 

 

 

 

 

 호텔 앞 호수 노을

 

 호텔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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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주라호 기념물군

[ Khajuraho Group of Monuments ]

요약
인도 카주라호에 있는 사원군으로 찬델라 왕조 때 건설되었다. 건축과 조각이 완벽한 균형을 이룬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1986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국가 인도(India)
지정일 1986년
분류 문화
테마분류 고대문명
소재지 State of Madhya Pradesh
좌표 N24 51 E79 56

카주라호는 인도의 중북부 마디아 프라데시(Madhya Pradesh)주에 있는 도시로

이 도시와 인근에 있는 약 20여 곳의 힌두교와 자이나교 사원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사원들은 나가라(Nagara) 건축 양식과 에로틱한 조각 작품들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사원들은 찬델라 왕조 시기인 950년에서 1050년 사이에 지어졌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이곳에는 12세기까지 약 85개의 사원들이 있었으나

그 가운데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는 사원은 20여곳 뿐이다.

대부분의 사원은 야소바르만(Yashovarman)왕과 당가(Dhanga)왕의 제위 기간에 건축되었는데

야소바르만 시기에 지어진 가장 뛰어난 사원은 락시마나(Lakshmana) 사원이며

당가 왕 시기의 최고의 사원은 비스바나타(Vishvanatha) 사원이다.

오늘날 가장 유명하며 규모가 큰 사원은

간다(Ganda)왕 시기에 지어진 칸다리야 마하데바(Kandariya Mahadeva) 사원이다.

 당가데바(Dhangadeva)왕이 1030년에 건축한 이 사원의 전체적인 모습은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인 카일라스(Kailash)산을 묘사한 것으로

중앙탑인 시키라의 높이가 약 31미터에 이르며 84개의 작은 첨탑들이 시키라를 둘러싸고 있다.

사원 내부에는 시바를 표현한 대리석상이 세워져 있다.

대부분의 사원들은 힌두교의 상징인 원형 또는 사각의 만다라를 설계 원칙으로 삼아 건축되었으며

풍부하고 정교한 조각 예술품들로 장식되어 있다.

 특히 성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조각품들이 전체의 약 10퍼센트를 차지하는데

이 같은 조각품들은 외설적인 의미 보다는 힌두교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세기에 찬델라 왕조가 쇠퇴하면서 이곳의 사원들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는데,

이후 종교, 정치, 사회적으로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슬람의 공격을 피해 보존될 수 있었다.

19세기에 영국인들이 이곳의 사원들을 발굴하기 시작하였으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재건 작업이 이루어졌다.

사원들 근처에는 라니 두르가바띠 박물관(Rani Durgavati-Museum)이라고 하는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에서는 파괴된 사원들의 터에서 발굴된 아름다운 조각 작품들과 종교 예술품들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주라호 기념물군 [Khajuraho Group of Monuments] (두산백과)

 

 

빠르바띠 사원(Parvati Mandir)

  서부 사원군에서 가장 작은 사원으로 비슈누신을 모셨던 곳

강가 여신이 검은 악어를 타고 있는 조각이 모셔져 있다.

 

 

 

이날, 날이 정말 좋았습니다.

사진가로 큰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더구나 겨울 인도의 안개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쭈욱 좋은 그림을 보는 심정으로 보십시오.

"사진가는 사진으로 말합니다."

 

 

 

 

미투나(Mithuna)

 

 

 

 

 

 

 

 

 

 

 

 

 

 

 

 

비슈와나트 사원과 난디상(Vishwanath Mandir and Nandi Shrine)

9세기 건축물

비슈와나트는 쉬바신의 다른 이름

 

 

 

 

 

 

 

 

 

 

 

 

 

 

 

 

 

 

 

 

 

 

 

 

칫트라굽타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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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역_카주라호를 향하여

 

 

 

 

 

 

 

 

 

 

 

카주라호 역

 

 

 

 

카주라호

[ Khajuraho ]

요약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주() 북부에 있는 도시.
 
위치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주() 북부
인구(명) 27,672(2006년)

델리에서 약 400km 떨어진 곳에 있다.

현재 20개 이상의 힌두교자이나교의 사원이 있는 순례지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10∼11세기 찬델라 왕조시대에는 이 지방의 주도였으며,

파라슈바나트 사원(자이나교), 차툴부자 사원(힌두교) 등을 비롯하여 약 30개의 사원이 건립되었다.

처마끝을 여러 층으로 높이 쌓아올린 지붕이 특징이며,

붉은 사암()으로 된 벽면에는 중세 인도의 부조를 대표하는 많은 상(), 병사·여인상, 관능의 극치를 표현한 조상() 등이 새겨 있다.

판나까지 전용기가 왕복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주라호 [Khajuraho]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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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가트

[ Varanasi Ghat ]

요약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바라나시 갠지스 강변에 있는 돌계단.
 
원어명 वाराणसी घाट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강 서쪽 6km에 걸쳐 84개가 있다.

보통 힌두교도들이 목욕재개를 하는 장소로 사용되며 일부 가트는 시체를 태우는 화장터의 역할도 한다.

대부분 마라타왕국(1674-1818)이 통치하던 18세기 무렵에 건설되었다.

강변을 따라 줄지어 돌을 쌓고 계단을 정비해 완성되었다.

근처에는 당시 군주들이 가트와 함께 지었던 별궁이 있다.

힌두교도들은 갠지스강을 성스러운 어머니 강으로 숭배한다.

그 때문에 갠지스강물에 목욕재개하면 죄업이 씻겨나가며 죽은 뒤 이 강물에 유해를 흘려보내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에 따라 힌두교도들은 이른 아침부터 가트로 내려와 경건하게 목욕을 한다.

아침저녁으로 아르티 푸자(Arti Puja) 예배의식이 거행되는 다샤스와메드 가트(Dashashwamedh Ghat)와 큰 화장터가 있는 마니카르니카 가트(Manikarnika Ghat)가 가장 유명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라나시 가트 [Varanasi Ghat] (두산백과)

 

 

 

 

 

 

 

 

 

 

 

 

 

 

 

 

 

 

아시가트(Assi Ghat)

 바라나시 남쪽 끝에 있는 아시가트는 '바라나시의 수호자'라는 별명이 있는 곳

신화집 Purna에 의하면 두르가 여신이 악마인 슘바니슘바(Shumbha Nishumbha)를 죽인 후 칼을 떨어 트린 곳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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