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다 가는 길 주변의 대추 야자 농장

 

 

 

 

 

 

 

 

 

맛사다

 

 

마사다 유적[ Masada , ─遺蹟 ]

요약
이스라엘의 사해(死海) 해안에 있는 배 모양의 구릉(丘陵)을 이용한 자연 요새지로 이스라엘 왕국의 파멸, 이스라엘 민족과 로마군과의 전쟁과 관련된 상징물이다. 곳곳에 공격 램프와 같은 로마 포위 흔적이 남아 있다.
 
  • 지정일

    2001년

  • 분류

    문화

  • 테마분류

    도시역사지구

  • 소재지

    Tamar Region

  • 좌표

    N31 18 48.6 E35 21 09.9

장엄하고 아름다운 최후의 항전지

메마른 황야를 배경으로 우뚝 솟은 바위 산 위에서 사해(死海)를 내려다보고 있는 마사다 유적지는 장엄하고 아름답다.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인데 꼭대기는 평평한 메사(mesa) 지형 위에 자리잡아 ‘천혜(天惠)의 요새’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하지만 난공불락일 것 같은 천연 요새도 세계를 제패했던 로마 군대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곳은 AD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뒤 유대 저항군들이 마지막까지 로마군에 항전했던 곳이다.

풍부한 물과 곡식을 갖춘 이들은 2년이 넘게 로마군의 포위공격을 견뎌냈으나,

공격용 경사로를 타고 진격해오는 로마군에 의해 요새가 함락되기 직전 집단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유대전쟁사>에 따르면

당시 자결한 유대인의 수는 967명이다. 이는 다윗이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한 뒤로 1000년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 왕국이 사라지고,

이후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게 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을 비감하게 장식한 사건이었다.

이스라엘의 자존심이자 긍지가 되다

이런 이유로 구체적인 장소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오래 전부터 마사다 항전은 이스라엘 민족의 자존심이자 긍지요,

저항정신의 상징이 되었고, 20세기 중반 현장이 발굴된 뒤에는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해발고도 434m인 마사다 유적지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배(船) 모양을 하고 있으며,

평균 너비 120m, 길이 620m, 둘레 1,300m이다. 기원전 2세기경 하스몬가(家)의 지배자가 이곳에 최초로 요새를 만들었고,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이 기원전 35년에 개축하였다.

20세 중반에야 발굴된 마사다 유적지(아랍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곳을 ‘저주받은 땅’이라고 불렀다)에는

주로 헤롯 대왕 시대에 만들어진 각종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로마 초기 양식으로 호화롭게 지어진 왕궁(2채)은 물론 행정청사, 목욕탕, 곡물창고, 성곽과 망루 등이 놀라울 정도로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75만ℓ나 되는 물을 저장하는 물 탱크에 연결된 수로(水路)와 귀중한 파피루스 문서의 단편(斷片)도 발굴되었다.

더구나 로마군이 당시 최고 수준의 기술을 동원해 만든 공격용 경사로가 그대로 남아 있어

기록에서만 보던 로마 포위 공격의 전형적인 형태를 짐작하게 해준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사다 유적 [Masada, ─遺蹟] (두산백과)

 

 

 

 

 

 

 

 

 

 

 

 

 

 

 

 

 

 

 

 

 

 

 

 

 

 

마사다 [ Masada ]

  • 대륙

    아시아

  • 위치

    이스라엘>마사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001년

  • 저자

    엘리자베스 팜버그

유태인 역사 속에서 가장 극적인 에피소드 중 하나를 상징하는 곳

사해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고원에 위치하고 있는 마사다는 기원전 37년 유대의 헤롯 대왕이 지은 요새화된 궁전이다.

헤롯이 죽은 이후 로마 주둔군이 마사다를 차지했으나,

이곳은 로마 통치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66년에 예루살렘에서 도망쳐 온 유태인 열심당원('시카리')의 피난처가 되었다.

73년, 유태인 반란 최후의 보루인 마사다를 점령하기 위해 로마 제10군단이 파견되었으며,

그 결과 900명 이상의 열심당원들이 죽었다. 이들은 항복을 앞두고 집단 자살을 택했던 것이다.

사해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마사다는 고원의 서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이 고원의 길이는 304m, 가장 넓은 곳의 너비가 608m로, 해발 고도 396m의 높이로 솟아 있다.

절벽 위를 내려다보고 서 있는 이 궁전은 사해와 유대 사막이 보이는 훌륭한 경치를 지니고 있다.

헤롯 대왕이 산꼭대기 서쪽 면에 자신의 궁전을 짓기 시작했을 때, 이곳에는 이미 기원전 100년에 지어진 건물이 있었다.

마사다는 호화로운 저택으로, 암반 북쪽 끝에는 높이가 낮아지는 세 개의 테라스가 있었고,

로마 양식의 목욕탕, 창고, 주택, 방어탑이 있는 성벽, 그리고 시나고그(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가 있었다.

헤롯의 가장 뛰어난 건축 계획은 요새에서 필요한 물을 댈 수 있도록 지은 진보적인 물 공급 체계였다.

각각의 용적이 4,000㎡인 열두 개의 저수지가 바위 속에 파여 있다.

오늘날 마사다는 인기 있는 관광 명소이다.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교에서 1960년대 초에 이 지역에서 발굴 작업을 행했다.

마사다 궁전은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성소이며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사다 [Masada]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2009.1.20, 마로니에북스)

 

 

 

 

 

 

 

 

 

 

 

 

 

 

 

 

 

 

 

 

 

식량으로 사용 한 비둘기 집

 

 

 

 

 

 

 

 

 

 

 

 

 

 

 

 

로마군이 마사다를 함락하려 쌓아 올렸던 흙 언덕

 

 

 

 

 

 

 

 

 

 

 

 

 

 

 

 

 

내려오면서 나의 느낌은

"우리 이스라엘 사람들 이런 사람이다. 건들 지 마라."는 소리가 귀에서 맹맹 거렸고

그 협박을 들으러 돈을 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우리 민족이 이스라엘 사람 정도의 정신력으로 무장하면

그들과 맛짱 떠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어 동행인에게 얘기 했더니

"전라도 사람들 처럼 화끈 하면 된다." 하신다.

얼핏 듣기는 거북 했지만 말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스트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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