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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237년 프톨레마이오스 3세가 착공한 후 역대의 여러 왕의 의해 완공되었다.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완공된 것은 BC 57년이다. 오랫동안 흙 속에 묻혀 있었는데,
20세기 초에 프랑스 고고학회가 발굴하여 수복했다.
탑문과 주벽 등의 구조는 말할 것도 없고,
부조 등의 장식도 거의 완전한 형태로 발굴되어 당시의 신전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호루스 신 앞에서 싸우는 왕이 새겨진 탑문을 들어가면 안뜰이 있고,
제1·2열주실, 전실, 지성소가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다.
제1열주실 앞의 매와 같은 모습의 호루스 신상은 상징이다.
주벽과 각 방의 벽에는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왕의 모습, 전투 장면, 신들에 대한 찬가,호루스 신의 탄생,
어미니인 하토루 신의 젖을 먹고 있는 모습 등등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부조가 있다.
신전 서쪽에서 고대의 마을이나 네크로폴리스가 발굴되었고 그 때문에 구멍이 무수히 뚫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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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landart.tistory.com/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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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머리를 가진 소베그 신과 매의 머리를 가진 호루스신을 모신 신전으로, 주요 부분 전부가 이중구조이다.
이 두 신에 대한 신앙은 같은 시대에 행해지고, 이 신전은 설계 당시부터 이중구조로 되어 있었던 듯하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건축되었는데, 장식에서 호루스 신전의 것과 공통성을 보이기도 한다.
파손이 심해 제2열주실은 천장이 없어졌지만, 파피루스 기둥 등이 매우 장식적이고 아름다운 신전이다.
입구가 2개인 탑문을 들어서면 안뜰이며, 주벽을 따라 세워진 16개의 열주는 대좌 부분만이 남아 있다.
정면은 제1열주실이고, 왕의 이름을 새긴 카르투시가 새겨져 있다.
그 안쪽이 제2열주실인데, 벽면에는 호루스 신과 토트 신에게서 물을 맞는 프톨레마이오스 7세가 그려져 있다.
제2열주실에 이전 전실에 3개의 방이 있으나 보존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다.
지성소를 둘러싼 회랑도 이중구조로 되어 있고 지성소도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데,
그 중 남쪽의 것이 소베그 신에게, 북쪽의 것이 호루스 신에게 바쳐진 것이다.
신전의 북쪽에는 하트호르 여신의 예배당, 바로 앞에는 탄생전의 잔해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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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완]지역의 대표적 신전이라면 [이시스(Isis) 신전]이다. '필라에(Philae)'섬에 있던 신전이라서 '필라에'신전이라고도 부른다. '아스완 댐'이 생기면서 수몰이 되었다. 그래서 UNESCO의 지원을 받아 '아질리카'섬으로 옮겨졌다. 이 섬의 이름도 점점 '필라에'섬으로 불린다.
이제 갈 곳은 소설 람세스를 지은 크리스티앙 자크의 또 다른 소설 '필레를 위하여'의 무대가 되었던 필레 신전. 그 소설에 의하면 로만의 식민지가 된 이집트는 로마의 국교가 기독교로 선포되면서 수천년간 이어져 온 이집트 고유의 신앙을 포기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집트의 맨 끝에 위치한 아스완에게까지 그 여파가 미치자, 고유 신앙을 지키려고 노력하던 일단의 제사장과 신도들은 필레섬에 모여 최후 항전을 하게 된다. 그 마지막 항전을 이끌던 이는 바로 이시스신을 모시는 여 제사장. 그는 로마측에 서서 진압을 담당한 옛친구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고귀하고 신비로운 이집트의 종교를 지키고자 노력하다 결국은 사라진다는 내용이다. 호수 한가운데 우뚝솟은 신전의 모습. 보기에는 가까워 보여도 배가 아니고서는 접근이 불가능했을 터이니 아무리 막강한 로마 군이라 하더라도 신앙을 지키려는 결사적인 신도들을 쉽게 진압할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현재의 필레 신전은 원래 있던 자리에 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아스완 하이댐 건설로 수몰위기에 처한 신전을 구하기 위해 유네스코와 아집트 정부는 진짜 필레섬에 있던 이시스 신전을 몽땅떼다가 인근에 있던 이기르카 섬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런 섬에 들어서면 10이커짜리 탑문전체에 새겨진 이시스의 조각상. 굳건한 표정과 경건한 몸짓에서 신에 대한 고대인들의 경외감을 느낄 수 있다. 카르낙 대신전이나 라메세움처럼 대열주전이 있는 것도 아닌 필레 신전. 그저 벽면 가득히 왜 우리가 신앙을 지켜야 하는지, 혹은 자신들의 신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를 설득이라도 하듯이 써놓은 릴리프가 사람을 감동시킨다. 앞면, 뒷면, 옆면에 이르기까지 빈틈 하나없이 쓰여진 글들. 그렇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신전은 말없이 위대한 역사를 말한다
이시스는 오빠 오시리스의 아내가 되어 호루스를 낳았다. 동생 세트의 손에 죽은 남편의 갈갈이 찢긴 유해를 고생 끝에 찾아내어 비탄 속에 매장한 일, 또한 자식 호루스를 온갖 위난으로부터 보호하며 양육한 일들로 아내와 어머니의 본보기가 되는 여신으로 알려졌다.
원래 신전이 있던 자리
이시스(Isis)
지혜, 미의 여신. 뜻은 "의자" 또는 "왕좌". 헬리오폴리스의 에네아드의 일원. 게브와 누트의 딸. 오시리스의 아내이자 누이. 호루스의 어머니. 아세트, 에스트라고도 불린다. 세트가 오시리스를 죽여서 그 몸을 여러 조각을 잘라버리자 모두 찾아내어 원래대로 맞추었다. 그러나 오시리스의 남근만은 나일강에 가라앉아 장어가 삼켜버린 뒤라서 찾을 수가 없었다. 오시리스와 네프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누비스가 남근의 모조를 만들어 전체 몸을 완성하자 그 모조남근을 입에 넣고 신의 입김을 불어넣어 오시리스를 소생시켰다. 또 오시리스의 모습을 밀랍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숭배하도록 하였다. 그동안 오시리스의 몸으로부터 임신한 이시스는 삼각주 지역의 켐니스에서 호루스를 낳았다. 세트가 모르도록 그곳에 숨어서 호루스를 키웠다. 후일 호루스는 장성하여 세트를 물리치고 상하 이집트를 통치한 최초의 파라오가 되었다. 그후 이시스는 파라오의 어머니이자 수호신이 되었다. 세상의 일들에 싫증이 난 이시스는 이미 노쇠한 태양신의 이름을 사용하여 하늘로 올라가려 했다. 이시스는 라가 뱉은 침을 얼마쯤 모아 흙과 섞어서 뱀을 만들었다. 그것을 라가 다니는 통로에 놓아두었다. 라가 그 뱀에게 물려 중독되자 이름을 말해보라고 했다. 라는 독성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말하게 되고 이시스는 라의 힘의 일부를 훔칠 수 있었다. 그후 이시스는 시리우스 별이 되었다. 그녀는 대모신으로 숭배받기도 했는데, 머리에 난 암소의 뿔 사이에 태양 원반을 지고 있는 여성 또는 아기 호루스를 무릎위에 앉혀 놓은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녀는 마아트의 깃털로 장식된 또는 양의 뿔이 달린 상하 이집트의 이중왕관을 쓰고 있다. 여성으로서의 이시스는 보통의 머리장식을 쓰고 우라이우스를 이마에 드리운 여성으로 묘사되었다. 로마시대에 지중해에서 널리 숭배되었으며, 헬레니즘시대 알렉산드리아에서는 "항해자들의 수호여신"이었다. 대머리수리가 종종 그녀의 왕관에 나타난다. 그녀는 또 미이라가 된 오시리스의 위에 연(鳶)으로 묘사된다. 이시스의 인기는 로마시대까지 지속되었다. 그녀를 섬기는 사제가 있었으며 그녀의 신전이 많이 세워졌다. 나일강 삼각주의 필라이(Philae) 섬에는 그녀의 신전으로서 가장 큰 신전이 있다. 그 신전은 1975년에서 1980년에 걸쳐 아길키아(Agilkia) 섬으로 옮겨졌다. 필라이에 있던 이시스 신전에는 이시스와 호루스의 부조가 있었다. 왕좌, 연, 전갈, 시스트라 등이 그녀의 상징이며 제물로는 포도주, 우유, 꽃, 석류, 몰약, "이시스의 버클" 등을 바쳤다. "사자의 서"에서 이시스는 사자에게 생명과 음식을 주는 신이다. 그녀는 또한 사자의 심판관 중 하나이다. 그녀의 다른 역할은 사자의 간을 지키는 임세티를 보호하는 것이다. 이시스는 위대한 마법사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그녀는 최초의 코브라를 만들어 라로 하여금 그의 비밀이름을 말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이시스는 또 현모양처의 전형이었다. 그녀에 대한 신앙은 이집트 이외의 지역까지 퍼져 영국까지 전해졌다. 고전시대의 작품 속에서 그녀는 페르세포네, 테티스, 아테나 등과 동일시 되었다. 그와 더불어 오시리스는 하데스, 디오니소스, 기타 여러 신과 동일시 되었다. 사실 초창기 기독교도들은 그녀의 특성중 몇 가지를 성모 마리아에게 부여하였다. 현모양처로서 이시스는 중동의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이시스가 호루스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마돈나와 아기" 그림에서 나타나는 많은 아이콘에 영감을 주었다.
밸비아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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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경관
몇 천년 전의 고대에 저 거대한 돌을 어떻게 따 내고 운반을 했을까?
오벨리스크'의 규모와 설계가 끝나면 석산에 그 모습대로 나무 쐐기를 박는다고 한다.
물론 그 쐐기는 물을 잘 먹어 불어나는 것이어야 한다.
쐐기에 물을 계속 부어 불어나게 하면 돌을 밀어내 그 쐐기의 선을 따라 틈이 생긴 다는 것이다.
'합셋수트'여왕을 위해 만들다 만 이곳의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길이가 41미터 였다는 가장 큰 규모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을 운반할 때의 무게는 무려 1,267톤이라고 한다.
그 것을 도대체 어떻게 운반했을까?
현대의 중장비와 선박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은 그 것을 고대에 무슨 힘으로 옮겨 갔을까?
방첨탑(方尖塔)이라고도 한다.
하나의 거대한 석재로 만들며 단면은 사각형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져 끝은 피라미드꼴이다.
태양신 신앙과 관계가 있고,
고왕국(古王國)시대에 아브시르에 있는 제5왕조의 네우세르라 왕묘의 태양피라미드 신전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분묘의 기념비로 건립되었다.
중(中)왕국시대 이후로는, 국왕의 통치 기념제 때에 신전탑문 앞에 한쌍이 건립되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것은 헬리오폴리스(태양의 도시라는 뜻)에 있는,
제12왕조의 세누세르 1세가 건립한 것으로 높이 20.7 m이다.
제18왕조의 투트모세 1세 이후로 제왕(諸王)이 명문(銘文)을 4면에 새긴,
애스원의 화강석제의 오벨리스크를 카르나크의 아몬 신전 앞에 세웠는데 대부분 유럽에 반출되어,
현재는 투트모세 1세(23.2 m, 143 t)와 하트솁수트 여왕(29.6 m, 325 t)의 것이 하나씩 남아 있을 뿐이다.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 불리는 투트모세 3세의 것은 19세기에 워싱턴 D.C.과 런던으로 각각 가져갔다.
아스완의 채석장에는 길이 41.7 m의 미완성 오벨리스크가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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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아스완주(州)에 있는 댐으로
높이 111m, 제방 길이 3.6km,저수량 1,570억m3, 저수지 길이 500km인 아스완 부근 나일강(江) 급류를 막아 건설한
세계 최대의 록필(rock-fill)댐이다.
1902년 영국인이 나일강의 홍수조절과 관개용수 확보를 위하여 아스완에 댐을 만든 이후
1960년에 러시아의 기술 원조로 공사에 착수하였고 1971년에 완공하였다.
(항공 사진 - 인용)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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