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베르궁

[ Amber Fort ]

요약
인도의 자이푸르(Jaipur)에서 11km 떨어진 언덕에 있는 카츠와하(Kachwaha) 왕조의 성.
 
국가 인도
소재지 인도 자이푸르
건립기간 1592~18세기

1592년 자이푸르의 라자만싱(Rajr Man Singh) 왕이 건축하기 시작해

약 150여년에 걸쳐 18세기 스와이자이싱(Sawai Jai Shingh) 왕에 의해서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암베르성은 원래 11세기 초 미나(Meena)왕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1592년 라자만싱 왕이 원래 성이 있던 곳에 새로운 성을 세웠고

18C 중엽 스와이자이싱 왕에 의해서 자이푸르에 새로운 성을 건설하고 옮기기까지

약 700년 동안 카츠와하(Kachwaha) 왕조의 성이었다.

높은 산에 둘러싸여 마오다(Maotha)호수와 무굴양식의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다.

성은 붉은 사암과 대리석을 이용해 힌두와 이슬람 양식이 조화를 이루었다.

화려한 색채의 모자이크와 벽화들이 아름답게 내부를 장식하고 창문은 스테인드글라스로 한 거울궁전이 있다.

이 거울궁전은 채광이 좋아 촛불 하나로 온 방을 밝힐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궁전은 여름 더위를 식히기 위해 커튼에 물방울이 이슬처럼 흐르게 하는 가느다란 관을 설치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암베르궁 [Amber Fort] (두산백과)

 

 

 

 

 

 

 

 

 

 

 

 

 

 

 

 

 

 

 

 

 

 

 

 

 

 

 

 

 

 

 

 

 

 

 

 

 

 

 

 

 

 

 

 

 

 

 

 

 

베스트 샷

http://landart.tistory.com/1203

Posted by landart
,

자이푸르 [ Jaipur ]

요약
인도 라자스탄주()의 주도().
 
위치 인도 라자스탄주()
경위도 동경75°49′25″ 북위26°55′34″
시간대 UTC+5.5
인구(명) 2,324,319(2006년)

도로철도 등 교통망이 정비된 상공업 중심지이다.

1727년 자이푸르 번왕국() 왕 마하라자 자이싱 2세가 건설하였으며,

자이푸르는 ‘자이왕의 성’이라는 뜻이다. 담홍색을 띤 건물이 많아 ‘핑크시티’라고도 한다.

구시가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내부는 정연한 바둑판 모양의 넓은 거리로 구획되어 있는 계획도시이다.

곡물·양털·목화·석재·금속 등의 거래가 행해지며, 모포·융단·유리·도자기·금속·구두·약품·스포츠용품 등이 제조된다.

또 보석·에나멜 금속·상아·대리석 등의 공예품 세공이 유명하다. 구시가 안에는 유적이 많으며,

자이 싱이 만든 천문대, 정원이 있는 유명한 고궁 등이 있다. 라자스탄대학·박물관·도서관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이푸르 [Jaipur] (두산백과)

 

 

 

 

 

 

 

하와마할 [ Hawa MAHAL ]

요약
‘바람의 궁전’이란 의미를 지닌 궁으로 인도의 자이푸르(Jaipur)에 있다.
자이푸르 시내의 중심가가 내려다 보이는 5층짜리 성으로  1799년 스와이 프라탑 싱(Sawai Pratap Singh)이 건축하고 라찬드 우스타(Lachand Usta)가 설계를 맡았다. 자이푸르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다.

 

이 성은 세상 밖으로의 출입이 제한되던 왕궁 여인들이 도시의 생활을 엿볼 수 있도록 건축되었다.

 

자이푸르 시내를 관망할 수 있는, 바람이 잘 통하는 격자형 창문이 벌집처럼 많아‘바람의 궁전’이라고 불린다.

 

성은 분홍 빛과 붉은 사암으로, 성의 외벽이 도로와 맞닿도록 건축되었다.

 

성의 1,2층은 정원으로 연결돼 있으며 성에는 약 953개의 작고 둥근 포대와 같은 공간이 층을 이루고 각 공간에는 작은 발코니, 아치형 지붕, 격자형 창문이 나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하와마할 [Hawa MAHAL] (두산백과)

 

 

 

 

 

 

 

 

 

 

 

 

 

 

 

 

 

 

 

 

 

 

 

 

 

 

 

 

베스트 샷

http://landart.tistory.com/1202

 

 

 

 

 

 

 

 

 

 

 

Posted by landart
,

 

아그라 역

 

 

따지간지 일대에서 그나마 믿고 먹을 수 있는 곳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

[ Itimad-ud-daula ]

요약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아그라에 있는 무굴제국 시대의 건물.

무굴제국 제4대 황제였던 자항기르 황제 때, 자항기르 자한 황후가 부모를 위하여 1622~1628년에 지은 건물이다. 타지마할보다 13년이나 먼저 건축되었는데, 흰 대리석으로 지은 첫 건축물이라는 가치를 지닌다. 작은 건물이지만 사용된 건축기법이 나중에 타지마할을 건축할 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베이비 따지(Baby Taj)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건물.

무글의 4대 황제 제항기르의 장인인 미르자 기야스 벡(Mirza Ghiyas Beg)의 무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 [Itimad-ud-daula] (두산백과)

 

 

 

 

 

 

 

 

 

 

 

 

 

 

 

 

 

메탑 박(Mehtab Bagh)

샤자한이 따지마할 건너 편,

즉 야무나 강 건너편에 따지마할과 똑 같은 모양의 검은 대리석으로 만든 자신의 무덤으로 기획했던 곳

 

 

 

 

 

 

 

 

 

 

 

 

 

베스트 샷

http://landart.tistory.com/1201

 

Posted by landart
,

 

 

아그라 요새

[ Agra Fort ]
 
분류 해외여행 > 관광지
지역 아시아 > 인도 > 아그라
유형 유적지
테마 세계문화유산
주소 Rakabganj, Agra
가는방법 타지마할 서문에서 도보로 약 25분 소요

 

아그라 요새는 타지마할과 더불어 아그라 관광의 필수 코스로 꼽힌다.

1566년 무굴제국의 제3대 황제인 악바르 대제가 견고한 요새로 축조한 것으로,

훗날 샤 자한에 의해 아름다운 궁전으로 재탄생했다.

무굴제국이 델리로 천도하기 전까지 악바르 대제와 자항기르, 샤 자한이 차례로 이곳에 거주했다.

무굴제국 통치자들의 권력을 상징하는 이 건축물은 입구부터 시선을 압도하는 붉은색 성벽이 인상적이다.

건축 당시 머리카락 한 올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견고하게 쌓아 올렸다고 한다.

붉은 사암으로 지은 성벽의 길이는 2.5km에 달한다.

아그라 요새에 올라 조망하는 타지마할의 전경도 장관이다.

야무나 강 건너편에 서 있는 타지마할은 마치 수면에 떠 있는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관람객들은 성의 남문에 해당하는 아마르 싱 게이트(Amar Shing Gate)로 입장한다.

성 안은 여러 채의 건물과 정원수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이슬람과 힌두, 중앙아시아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궁전들이 볼만하다.

성 안에서 가장 큰 건물인 자항기르 궁전(Jahagir’s Mahal)은 악바르 대제의 아들인 자항기르와 궁중 여인들이 머물던 곳으로 추정된다.

사암과 대리석, 힌두와 아프가니스탄 양식이 혼합된 외관이 눈에 띈다.

궁전 곳곳에서 권력자의 아들이 누렸던 영화를 짐작할 수 있는데,

거대한 규모와 미로 같은 통로들로 이루어진 구조가 관람객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또한 성의 위쪽을 둘러싸고 배치된 회랑 사이마다 섬세한 문양으로 조각된 문들이 아름답다.  

아그라 요새 관람의 하이라이트는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다.

무삼만 버즈는 ‘포로의 탑’이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타지마할을 짓기 위해 국가 재정을 바닥낸 샤 자한이 말년에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이곳에 유폐되었다고 한다.

샤 자한은 8년 동안 감금 생활을 하며 그토록 사랑하던 아내의 무덤인 타지마할을 바라보다가 쓸쓸하게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은 관에 안치되어 강을 통해 타지마할까지 운구된 뒤 뭄타즈 마할 옆에 안치되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이곳에서 야무나 강 건너편에 서 있는 타지마할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그라 요새 [Agra Fort]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시공사)

 

 

 

 

 

 

 

 

 

 

 

 

 

 

 

 

 

 

 

 

 

 

 

 

 

 

 

 

 

 

 

 

 

 

 

 

베스트 샷

http://landart.tistory.com/1200

Posted by landart
,

아그라

[ Agra ]

요약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서부에 있는 도시.
 
위치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서부

인구 약 89만 9천(1991). 야무나강() 우안에 있는 지방행정의 중심지이다.

델리 남동쪽 200km 지점에 있다.

동쪽에는 갠지스강 유역의 광대한 평야가 전개되고, 북쪽은 야무나강 연안을 따라 델리를 거쳐 펀자브 지방의 평야에 연속되어 있다.

무굴 제국이 수도를 델리로 옮길 때까지 1564~1658년 약 1세기 동안 수도로서 북부 인도를 지배했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지배를 받을 때도 주변지 구의 행정중심지로서 중시되었으며 오늘날도 지방행정부의 청사가 있다.

대리석 세공 ·면직물 ·융단 ·제화 등의 제조업도 활발하다.

두 강 연변의 교통로와 데칸고원에서 북상하는 교통로의 접속점에 있어,

도로 ·철도 ·하천 교통의 요지로서 농산물과 일용잡화의 집산이 활발하다.

군사상 ·교육상으로도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중심을 이루며,

시내와 근교에는 무굴 제국시대 최고 전성기의 건축 ·미술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붉은색 사암으로 성벽을 쌓은 광대한 아그라성()과 이슬람건축의 대표작인 타지마할이 널리 알려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그라 [Agra] (두산백과)

 

 

 

 

 

 

타지마할

요약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 인도 아그라(Agra)의 남쪽, 자무나(Jamuna) 강가에 자리잡은 궁전 형식의 묘지로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이 왕비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여 건축한 것이다. 198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원어명 Tāj Mahal
국가 인도(India)
지정일 1983년
분류 문화
소재지 Uttar Pradesh, Agra District
좌표 N27 10 27 E78 02 32

시공을 초월한 완벽한 아름다움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22년 동안이나 그 무덤을 지었다는 한 남자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 깃들었기 때문일까?

인도 이슬람 예술의 걸작 타지마할은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순백의 대리석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빛깔을 달리하며 보는 사람의 넋을 빼놓고,

웅장한 건물은 중압감은커녕 오히려 공중에 떠있는 듯 신비롭고,

건물과 입구의 수로 및 정원의 완벽한 좌우대칭은 균형미와 정갈함을 느끼게 한다.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의 수도였던 아그라(Agra) 남쪽, 자무나(Jamuna) 강가에 자리잡은 궁전 형식의 묘지다.

무굴 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Shah Jahan, 재위 1592~1666)이 끔찍이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추모하여 만든 것이다. 무굴 제국은 물론 이탈리아, 이란,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의 건축가와 전문기술자들이 불려오고,

기능공 2만 명이 동원되어 22년간 대공사를 한 결과물이다.

최고급 대리석과 붉은 사암은 인도 현지에서 조달되었지만,

궁전 내외부를 장식한 보석과 준보석들은 터키, 티베트, 미얀마, 이집트,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수입되었다.

국가 재정에 영향을 줄 정도의 거액이 투자되었다고 한다.

왕의 사랑과 쏟은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찬란한 무덤’이라 불리는 타지마할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사랑의 금자탑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모습이다.

붉은 사암으로 된 아치형 정문을 통과하면 넓은 뜰에 수로가 있는 무굴양식의 정원이 펼쳐진다.

길이가 약 300미터에 이르는 일직선의 수로 중앙에는 연꽃 모양의 수조가 있고, 분수가 물을 뿜어내고 있다.

수로에 비친 타지마할의 모습 또한 환상적이어서 수많은 사진가들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사랑으로 빚어낸 ‘찬란한 무덤’

 

긴 수로의 끝에는 눈부신 순백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본 건물이 서 있다.

네 모퉁이에 배치한 첨탑을 비롯해 좌우가 정확한 대칭을 이룬 건물은 육중한 몸체에도 불구하고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내부와 외부의 벽면은 보석과 준보석으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여기에는 대리석에 무늬를 박아 넣는 피에트라 듀라(Pietra-dura) 모자이크 기법이 활용되었다.

건물 내부 1층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왕과 왕비의 관이 있지만 유골이 없는 빈 관이다.

샤자 한과 뭄타즈 마할의 육신은 지하 묘에 안장되어 있다.

샤 자한 왕은 애초 타지마할과 마주보는 자무나 강 건너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자신의 묘를 짓고,

구름다리로 연결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자무나 강 건너편에서 건물의 기단을 조성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진위 여부는 확실치 않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공된 후 10년 뒤인 1658년 막내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의 반란으로 왕위를 박탈당하고 아그라 요새(Agra Fort)의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 탑에 갇혀 말년을 보냈다.

다행히도 아그라 요새에서는 2km 떨어진 타지마할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1666년 죽은 뒤에는 그토록 사랑하던 부인 옆에 묻혔으니 마냥 불행하기만 한 말년은 아니었던 듯싶다.

[네이버 지식백과] 타지마할 (두산백과)

 

 

 

 

 

 

 

 

 

 

 

 

 

 

 

 

 

 

 

 

 

 

 

 

 

 

 

 

 

 

 

 

 

 

 

 

 

 

 

 

 

베스트 샷

http://landart.tistory.com/1198

Posted by landart
,

 

 

오르차

[ Orchha ]

요약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에 있는 옛 라지푸트왕조의 수도.
위치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

1531년에 라지푸트왕조의 수도로 건설되었다.

17세기 초에는 분델라의 족장인 주자르 싱이 반란을 일으켰고, 곧 무굴제국의 왕 샤자한의 침략을 받았다.

그 뒤 타지마할을 세운 샤자한과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 등의 왕이 살았다.

영국이 통치하던 때는 인도 중부청에서 관할하였으며 1948년에 인도가 독립하면서 빈디아프라데시주()에 포함되었다.

제한기르마할·라지마할·라지프라빈마할 등의 유적을 비롯하여 인도신화의 신() 비슈누의 일곱 번째 화신 라마를 신으로 모시는 람라자사원·락시미나라얀사원 등의 사원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르차 [Orchha] (두산백과)

 

 

 

자항기르 궁전

[ Jahangir's Palace ]

분류 해외여행 > 관광지
지역 아시아 > 인도 > 아그라
유형 궁전·성
주소 Rakabganj, Agra
가는방법 아그라 요새 내에 위치

1605년 무굴제국의 악바르 대제가 아들 자항기르(Jahangir)의 거처로 마련한 곳으로 추정된다. 힌두 양식과 아프가니스탄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외관을 지녔으며, 궁전 내부 또한 규모와 구조에 가히 놀랄 만하다. 회랑 사이마다 작은 문이 많이 있는데, 아름답고 섬세한 격자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궁전 안에 비밀통로가 많이 있다는 것. 마치 미로같이 통로가 짜여 있어 자칫 길을 잃기 쉽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항기르 궁전 [Jahangir's Palace]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시공사)

 

 

 

자항기르

요약
인도 무굴제국의 제4대 황제. 비()이슬람교도에 대한 인두세를 폐지했고, 많은 종교에 대하여 관대했으며, 문학·미술 등을 보호해 문화의 꽃을 피웠다. 자신의 전기《투즈케 자항기르》를 남겼다.
원어명 Jahāngīr
출생-사망 1569.8.31 ~ 1627.10.28
국적 인도 무굴제국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투즈케 자항기르》

악바르대제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그러나 즉위 때 장자() 호스로와 다투었고,

즉위 후에도 왕비 누르 자한과 그녀의 오빠 아사프 칸 및 대귀족 마하바트 칸 등 궁정을 둘러싼 음모가 치세 중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비()이슬람교도에 대한 인두세()를 폐지하였고,

메와르 라지푸트를 복속시켰으나 만년에는 아편을 애음하고 왕비의 전횡을 허용하는 등 무굴황실의 부패를 초래하였다.

부왕 악바르처럼 많은 종교에 대하여 관대하였으며, 또 문학·미술 등을 보호하여 문화의 꽃을 피웠다.

자신의 전기 《투즈케 자항기르》를 남겼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항기르 (두산백과)

 

http://jhdyys.tistory.com/1248

 

 

 

 

무굴제국

[ Mughul , ─ ]

요약
16세기 전반에서 19세기 중엽까지 인도 지역을 통치한 이슬람 왕조(1526∼1857).
 

시조 바부르는 중앙아시아를 전전한 후 카불을 점령하고,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1526년 인도에 침입, 델리 왕조인 로디조(1451~1526)의 이브라힘왕을 델리 북방의 파니파트전투에서 격파하고, 델리를 탈취하여 여기에 무굴제국을 창시하였다.

바부르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인 제2대 후마윤은 벵골·비하르 지방에서 일어난 아프간계() 수르 왕조의 셰르 샤에게 패하여, 1540년 페르시아로 도망하였다가 1555년 재차 델리를 점령하고 일시 중단되었던 무굴왕조를 부활시켰다.

그 뒤를 이은 왕이 13세에 즉위한 M.악바르 황제이다. 그는 북인도에 지배력을 확보하게 되자 그 세력을 인도의 다른 지방까지 확대하여, 라자스탄 지방에 독립국으로 있던 라지푸트족의 왕(라자)들을 동맹세력으로 끌어들였다. 또한 1573년 서방의 구자라트 지방에 진격하여 그곳을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 왕조를 타도하였다. 동방으로는 1576년 벵골 지방까지 그의 지배하에 넣었다.

1580년대에는 인도 북서부지방의 펀자브에서 아프가니스탄카불까지도 군대를 파견하여 인더스강 하류 신드 지방까지 정복하였다. 1590년대에는 남하정책으로 데칸 지방의 이슬람 여러 왕조에도 세력을 뻗어나갔다. 행정면에서도 악바르 황제는, 이슬람교도나 힌두교도 등 종파를 가리지 않고 능력에 따라 중용하여 각 지방의 토지측량이나 지세() 결정 등의 실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따라서 무굴제국의 행정 ·사법 ·지방행정 등의 지배체제는 악바르 황제 시대에 거의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악바르 황제의 사후 자항기르, 샤 자한, 아우랑제브로 이어져 이 시기는 무굴제국의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특히 제6대 아우랑제브는 데칸의 이슬람 여러 왕조를 정복하여 최대의 판도를 실현하였다. 그러나 그의 만년인 1674년 힌두교도들이 데칸지방에 마라타왕국을 세워, 무굴제국의 강력한 적대세력으로 등장하였다. 1707년 아우랑제브가 데칸고원의 원정 도중 죽자 제위() 계승을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나 무굴의 중앙 권력은 급속히 쇠퇴해졌다. 18세기 말에 이르자, 약화된 무굴의 중앙권력은 데칸지방에서 델리 주변까지 세력을 확장한 마라타동맹에 의하여 좌우되어, 무굴 황제의 지배력은 약화되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 걸쳐 영국의 식민지 지배세력은 마라타 ·마이소르 등 강력한 봉건세력을 멸망시키고, 인도에서의 식민지 지배영역을 확대하여 갔으나, 명목상으로만 존속한 무굴 황제의 지위는 그대로 남겨 두고 식민지 지배의 도구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1857년, 북인도를 중심으로 ‘세포이의 반란’이 일어나자, 각 주둔지에서 반란을 일으킨 인도의 병사들이 델리에 집결하여, 무굴 황제 바하두르 샤 2세를 추대하여 새로 정권을 수립하였다. 2년에 걸친 이 반란이 영국군의 무력으로 진압되자, 그들은 탄압정책을 한층 강화하여, 그때까지 명목상으로만 남겨 두었던 무굴 황제의 지위를 폐함으로써 무굴제국은 멸망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굴제국 [Mughul, ─帝國] (두산백과)

 

 

 

 

 

쉬시마할(오른쪽 하얀집)

 

 

 

 

 

 

 

 

 

 

 

 

 

 

 

 

 

 

 

 

 

 

 

람 라자 만디르(Ram Raja Mandir)

 

 

 

 

 

 

 

 

 

 

차투르부즈 만디르(Chaturbhuj Mandir)

 

 

 

 

 

 

 

 

 

잔시역

 

잔시

[ Jhansi ]

요약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주도().
원어명 Jhānsi
위치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인구(명) 420,259(2006년)

칸푸르 남서쪽 200km에 있으며, 철도망이 집중되어 있다.

도시는 1613년에 창설되었고, 주요 부분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1742년 마라타족()이 점령하였고, 1886년 영국령이 되었다.

주() 남부의 정치적 중심지인 동시에, 마디아프라데시주 북부에 걸쳐 넓은 상업권()을 지니며, 제분·면공업·식품공업도 성하다.

1857년 세포이 항쟁 때에는 마라타계의 왕비를 내세운 반란군이 이곳에 있던 영국인을 대량 학살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29km 남쪽인 더콴에는 수력발전소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잔시 [Jhansi] (두산백과)

 

베스트 샷

http://landart.tistory.com/1197

 

Posted by landar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