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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8.24 슬로바키아_타트라국립공원
  2. 2006.08.24 폴란드_소금광산 3
  3. 2006.08.23 폴란드_크라코프 1
  4. 2006.08.21 폴란드_아이슈비츠와 진실
  5. 2006.08.20 체코_진입

2006년 8월 13일

여행정보 http://www.hanatour.com/asp/travelinfo/if-12000.asp?country_code=SK



버스로 동구의 알프스라는 타드라국립공원지대로 향하다 잠시 정차

마을이 무척 평화로왔고 우측 아래와와 같이 잘가꾸어진 축구장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여유와 멋을 살짝 들여다 보는 듯 했다.



아침 산책길에 - 호텔 주변의 호수





호텔 GRAND JASNA

주변이 대규모 스키장 시설이었다.










슬로바키아와 체코 국경

슬로바키아 (Slovakia)

요약

유럽 중부에 있는 나라. 정식명칭은 슬로바키아공화국(Slovenská Republika).

설명

유럽 중부에 있는 나라. 정식명칭은 슬로바키아공화국(Slovenská Republika). 면적 4만 8845㎢. 인구 543만 명(2003). 서쪽으로 체코, 북쪽으로 폴란드, 동쪽으로 우크라이나, 남쪽으로 헝가리, 남서쪽으로 오스트리아와 접해 있다. 자파도슬로벤스키·스트레도슬로벤스키·비호도슬로벤스키 등 3개 주와 행정상 독립된 수도지역인 브라티슬라바로 이루어져 있다.

슬로바키아의 자연
중부와 북부에 슬로벤스케루도호리에산맥·화이트카르파티아산맥·베스키드산맥 등이 뻗어 있는 산악지대로 북부로 갈수록 산세가 높아져 게를라호프스카산(2654m)에서 절정을 이룬다. 남서 및 남동지역에는 저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모라바강·도나우강이 남쪽 경계를 이루며 흐르고 바흐강·호론강·호르나트강·토리사강 등이 산악지대를 흐르고 있다. 기후는 체코보다 대륙성이며 수력·광물자원이 풍부하다.

슬로바키아의 역사
6세기 무렵 이곳에는 슬라브족의 슬로바키아인들이 정착하였으며 7세기에 사모왕국, 9~10세기에는 모라비아제국의 일부가 되었다가 모라비아가 붕괴된 뒤 11세기에 헝가리에 복속되었다. 16세기 이후 투르크의 헝가리 진출로 이곳으로 피난온 헝가리인의 압제를 받았다.

1918년 제1차세계대전의 결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해체되고 보헤미아·모라비아와 합체하여 체코슬로바키아공화국을 세웠다. 1939년 침략국 독일의 보호 아래 슬로바키아는 독립하였으나 제2차세계대전 후 다시 체코슬로바키아공화국을 구성하는 공화국이 되었다. 그러나 1948년 공산당이 권력을 잡은 뒤 체코인들이 주도권을 쥔 엄격한 중앙집권체제를 맞게 되었다.

1960년 선포된 헌법에 따라 명목상이나마 체코와 동등한 권리를 갖게 되었으며, 1969년 슬로바키아사회주의공화국이 되어 연방의회에 체코사회주의공화국과 같은 수의 대의원을 보내게 되었다.

1989년 공산정권 몰락과 함께 연방으로부터 분리하려는 움직임이 높아져 1993년 1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각각 독립하였다. 1999년 5월 실시된 투표에서 루돌프 슈스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임기는 5년이다.

슬로바키아의 경제·사회
전체면적 중 2/5 이상이 삼림지역이며 경작지는 1/3에 불과하다. 저지대에서는 밀·보리·옥수수·사탕무 등이 재배되고 소와 돼지가 많이 사육되며, 산간지대에서는 감자·귀리·아마가 재배되고 주로 양을 사육한다. 바흐강 유역에서는 담배와 과일이 경작되며 능선지대에는 포도원이 많다.

산악지대에서는 철광석·구리·마그네사이트·아연 등이 채굴된다. 공업으로는 야금(冶金)·석유화학·목재가공·식품 등이 활발하다. 국민의 86%는 슬로바키아인이며 나머지는 헝가리인·체코인·우크라이나인·독일인·러시아인 등이다. 슬로바키아어가 공용어로 쓰이며, 종교는 로마 가톨릭교와 프로테스탄트교가 우세하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슬로바키아와 한국과의 관계
남북한 동시수교국으로 1993년 수교하였다. 2003년 대한수입액은 1억 976만 달러, 대한수출액은 1782만 달러이다. 2003년 체류자수는 4명이다.

동유럽 자연의 보고, 타트리-포프라드

타트리 산맥(2663m)은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국경지대에 걸쳐있는 알프스 산맥 중 하나이다. 총 면적의 3/4이 슬로바키아에, 나머지 1/4이 폴란드령에 속한다. 양측 타트라는 모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지형과 지질, 암석의 종류에 의거, 타트라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서부 타트라(TATRY ZACHODNIE), 하이 타트라(TATRY WYSOKIE), 비엘스키에 타트라(TATRY BIELSKIE)가 그것들인데 하이 타트라와 비엘스키에 타트라는 동부 타트라로 묶이기도 한다. 가장 높으면서도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곳은 하이 타트라로, 최고봉은 해발 2655m에 달하는GERLACH이다.

1949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타트라스 국립공원(TANAP)은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총면적 741㎦로, 서부와 하이 타트라의 슬로바키아 지역과 비엘스키에 타트라 전 지역을 포함한다. TANAP의 경계로는 북쪽으로 슬로바키아-폴란드 국경선, 동쪽으로 ZDIAR-TATRANSKA KOTLINA ROAD, 남쪽으로 산림구분선 그리고 서쪽으로 SUCHA DOLINA 계곡이다. 공원측의 삼엄한 보호로 인해 현재 이곳에는 수많은 희귀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 때묻지 않은 자연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폴란드 영역의 TATRZALSKI 국립공원(TPN)은 폴란드쪽의 하이와 서부 타트라를 포함하고 있다. 서부 타트라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해발 2176m의 STAROROBOCIALSKI WIERCH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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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12일 비옴

- 실내 촬영권 3유로


060813-6462

주차장

세계문화유산, 세계적인 관광지에 비하면 자연스러운(?) 주차장이었다.



소금 램프, 조각, 목욕용품 등을 판매









소금으로 만든 성당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실감하게 하는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계단을 이용하여 수직으로 수백m를 내려갔다.



전직 광부이신 안내원

재개발, 재활용(?)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었다.

모델요구에 흔쾌히 웃으시며 응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소금 성당







소금광산이 있는 비엘리츠카(Wieliczka)
소금광산이라... 그곳에 가면 광산에 석탄이 아니라 소금이 마구 나오는 곳일까? 하는 상상을 하며 비엘리치카로 향했답니다. 크라코프 남동쪽 13km 근교의 소금광산은 약 10세기에 이 곳에 소금 제조장이 있었던 흔적이 발견되었고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라고 합다. 아주 오래전에 바다였던 곳이 퇴적되면서 암염이 되어 광산이 되었다네요. 이곳은 몇세기 전에도 코페르니쿠스나 괴테가 다녀갈만큼 유명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소금광산 내부는 모두 소금으로 되어 있고, 17세기의 소금제단, 5개의 소금 샹들리에, 소금으로 만들어진 조각상과 소금으로 만든 '최후의 만찬'이 있다. 지하 박물관에는 제염의 역사, 제염 도구 등이 전시되어 있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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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광산 안내인-광부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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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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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광산을 내려갈 때는 계단으로 100M를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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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개의 방중 관현악 연주가 있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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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 방문을 기념하는 코페르니쿠스 기념상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유네스코 인증 안내석
197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13세기 Boleslaw Wstydliwy 의 아내인 킹가 공주가 반지를 던진 자리에서 지금의 소금 광산이 발견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후로 킹가 공주는 소금광산의 광부들에게 수호신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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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가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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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으로 만든 기적같은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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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갈 때 30초에 지상으로 주파하는 엘리베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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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길에 각종 기념품점과 커피숖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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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12일

여행정보 http://www.hanatour.com/asp/travelinfo/if-13000.asp?city_code=KRK


060812-6420

바벨성
바벨성
바벨성
바벨성
바벨성
진기한 보물들이 많은 바벨성(Zamek krolewski na Wawelu)
도시 남쪽 비스와강 상류에 위치하며 성의 역사는 9세기 초부터 시작된다. 성 내부에는 중세때의 갑옷, 검, 장신구, 초상화등을 전시하고 있다. 근처에 녹지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화재 후에 고딕 양식의 바벨성은 1502년부터 1536년까지 르네상스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주변에는 커다란 정원이 있고 문 네 개와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복도가 있다. 바벨성은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진기한 보물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 바벨 대성당은 세 번째의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20개의 예배당 가운데서 황금색의 돔으로 덮힌 지그문트 예배당(Kaplica Zygmuntowska)은 르네상스 양식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대성당 내부에는 폴란드 왕의 석관과 가치있는 예술품들이 있다. 그리고 지하에는 폴란드 왕과 영웅들의 묘소가 있다. 대성당 탑에 올라가면 특별한 경우에만 울리는 유명한 지그문트 종이 있다. 도시의 소음에도 불구하고 수킬로미터까지 울려 퍼진다.







중앙시장 광장
중앙시장 광장
중앙시장 광장
유럽에서 2번째로 큰 중앙시장 광장
크라코프의 사교장인 중앙시장 광장(Rynek Glowny)

중앙시장 광장은 크라코프의 사교장으로서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구시가지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4만m²로 베니스의 산 마르코 광장 다음으로 유럽에서 두번째로 넓은 광장이다. 주위에는 옛 크라코프 귀족들의 저택이 줄지어 있다.

광장 중앙의 건물은 직물 회관으로 고딕 양식에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된 건물이다. 직물 회관안에는 관광객들이 기념품을 살 수 있는 많은 잡화점이 있다. 직물 회관에는 18,19세기의 폴란드 조각과 회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국립박물관의 일부가 있다.
시장옆쪽에 있는 "Bei Noworol"이라는 카페에서는 민속 예술품같은 각 시기의 가구들을 구경할 수 있다.


















크라코프 (Kraków)

요약

폴란드 남부 크라코프주의 주도. 인구 74만 5400(1996).

설명

폴란드 남부 크라코프주의 주도. 인구 74만 5400(1996). 마오폴스카지방의 문화·과학·산업의 중심도시이며 폴란드 제3의 도시이다. 독일어로는 크라카우(Krakau)라 한다. 비슬라강이 남쪽의 카르파트 산지에서 평야부로 흘러나오는 골짜기 꼭대기에 있으며, 도시지역은 바벨성(12∼16세기) 주변의 옛 시가지를 중심으로 비슬라강 서쪽 연안에 펼쳐져 있다. 8세기 무렵 성채가 축조되었고 10세기 후반 체코 지배 아래 놓였으나, 10세기 말에는 폴란드령이 되었으며 1000년 주교단(主敎團)이 설치되었다. 1241년 몽골의 침입으로 전화(戰禍)를 입었으나 곧 복구되었다. 1320∼1609년 폴란드왕국의 수도였으며, 15세기에는 상업·수공업·문화가 두드러지게 발전하였으나, 1596년 바르샤바 천도 후 쇠퇴하였다. 제3차 폴란드분할(1795) 후에는 오스트리아령이 되었으며 1809년 나폴레옹에 의해 바르샤바공국에 합병되었다. 1815년 빈회의에서 시가지와 그 주변이 러시아·오스트리아·프로이센 보호 아래 놓인 크라쿠프공화국으로서 자치가 허용되었으나 1846년의 독립봉기가 실패하여 다시 오스트리아에 합병되었다. 그 뒤 오스트리아령 폴란드의 정치·문화 중심지가 되었으며 제1차세계대전 후 폴란드로 되돌려졌다. 제2차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군 점령지 총독부가 설치되었고 1945년 1월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제2차세계대전의 전화를 벗어나 옛 문화유산을 많이 간직한 역사적인 도시로, 바벨 언덕에는 성 외에 폴란드 왕족의 묘가 있는 대성당이 있다. 15세기의 장대한 제단화가 있는 마리아키(Mariachi)성당을 비롯하여 오래된 교회가 50개가 넘으며, 14세기 직물관(織物館)도 남아 있다. 1364년 창립된 야기에보대학은 N. 코페르니쿠스가 공부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발트해와 흑해를 잇는 교통 중심지이며, 수공업시대부터 섬유·직물·식품가공·담배(전국생산의 41%) 등 경공업이 발달하였다. 제2차세계대전 후 노바 루다 지구에 레닌제철소를 중심으로 한 철강 콤비나트가 생겨 폴란드 최대의 철강기지로서 국가경제를 지탱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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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12일

폴란드 http://www.koreabound.com/han/nation/europe/poland_info.htm


060812-6340

체코와 폴란드 국경

아직 유럽연합에 미가입 상태라 그런지 여권 확인 과정을 거치는 입출국 절차를 밟았다.

아직은 빈국의 모습이 보이는 초라한 국경

그러나 분단국가에서 온 우리에겐 장난같은 그런 국경이었다.



점심을 먹었던 식당

항상 느끼지만 현지 식당들에는 낭만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일행을 일정 내내 태우고 다녔던 벤츠 버스

운전기사 체코인 불라디미르(24세 총각)



아이슈비츠 수용소(현지 가이드 :작곡을 전공한다는 이우화씨)

인류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 한다.

하여 그들의 편리대로 편집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분명 인류에 대한 큰 죄악임이 분명하다.

어느날 갑자기 이유도 없이 잡혀가 영문도 모르고 죽어 갔을 영혼을 생각해 보면...

방문한 날은 너무도 청명하여 스산한 분위기에 어울릴 수용소의 표정이 언바란스 했지만

망자의 신발, 안경, 머리카락, 사진등의 유물을 보면서 한인간의 허망함을 실감 하였다.

과연 거대한 사회 조직의 가동에 있어 일개인의 의미는 무엇이고 가치는 얼마 정도 일까.







우리 일행












통곡의 벽

바로 오른쪽 옆건물에서 간이재판을 하고 필요에 따라 저벽에 세우고 총살을 했다고 함.





수용소장이 전쟁후 도망 가다 잡혀서 죽었던 교수대




가스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수용소이며, 폴란드의 오슈비엥침(옛이름 아우슈비츠)에 있는 옛 수용소이다. 위치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약 300km 떨어진 곳이며, 이곳에서 처형된 사람들은 유대인, 소련군 포로, 정신병자, 동성애자, 기타 나치즘에 반대하는 자들이었다. 나치가 세운 강제수용소 중에서 최대 규모였다.

배경

나치가 본격적으로 유태인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은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소련을 침공하면서부터이다. 하인리히 히믈러SS특별행동부대(SS Einsatzgruppen)을 A, B, C, D의 4개 지대로 편성하여 진격하는 국방군의 뒤를 따라 소련 영내에서 각종 처형임무에 투입하였다. 이들이 처형한 이들은 유태인, 공산주의자, 정치장교, 공산청년동맹 소속 청년당원 등이었다. 처음 이들의 처형 방법은 직접 총살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을 총살했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우선 처형 속도가 문제였으며 이와 더불어 탄약 문제도 심각했다. 둘째 부대원들에게서 심리적인 부작용 현상이 발견되었다. 이런 문제에 직면한 히믈러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할 것을 지시했다. 여러가 지 방법 중에 S트럭이 실험되었다. 자동차 배기가스를 이용한 S트럭은 불결한 결과로 인해 처형대원들의 불만을 샀고, 다시 기존 강제수용소와 S트럭에서 사용한 가스를 이용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치클론B를 이용한 아우슈비츠의 가스 대량 학살이었다.

경과

수감자들은 매우 좁은 크기의 방에서 생활했다. 이 방은 너무나 좁아서 일어서 있을 수가 없었다. 최초의 수용자들이 아우슈비츠에 온 것은 1940년 6월로, 폴란드 정치범 728명이 첫 수용자들이었다. 이후 아우슈비츠로 보내진 폴란드 수용자들은 약 15만명이며, 이중 7만 5천명이 죽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1941년 9월, 소련군 포로와 유대인 수용자들이 처음으로 독가스실에서 처형당한 것이 아우슈비츠에서의 첫 처형이었다. 독가스실에서는 한 번에 약 2,000여명의 수용자가 처형되었다. 대부분이 노인과 여성,그리고 아이들이었다. 독가스실은 대개 샤워실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사용된 독가스는 효과가 빨리 나타나는 치클론 B였다.

처형된자들의 시체는 시체 소각로에서 대량으로 불태워졌는데 하루에 약 1,500~2,000구의 시체가 소각되었다. 또한 수용자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카펫과 가발을 만들었다.

희생자수

기존에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당한 사람은 약 400만명이며 이 중에서 약 250만명이 유대인이라고 알려져왔다. 처음에 이 수용소를 해방한 소련군의 발표였다. 그러나 이 숫자에 대한 반론도 있다. "과장되고 꾸며낸 얘기가 많다"는 제목으로 씌여진 뉴스위크지 1995년 1월 18일 자의 기사[1] 에 의하면, 아우슈비츠에서 실제로 사람은 유태인을 포함하여 110만 ~ 150만명으로 추산했으며, 가장 많은 희생자가 유태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정확하게 몇 명이나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유태인 외에 나머지 희생자들은 폴란드 정치범, 소련군 포로(주로 정치장교), 집시 등이었다. 이어 2005년 아우슈비츠 해방 60주년 행사를 알리는 기사에서는 유태인 희생자 수를 100만명으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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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지하감방 질식의 방 수감자들이 손톱으로 그린 벽화. 해골같은 모습은 자신들의 얼굴이다.
수용소 의사 멩겔레 박사에 의해 인체실험을 받고있던 집시소녀들. 너무 여위어 성별구분도 어려울 정도다.

가스실 바로 옆에 설치된 소각장. 독일에서 만들어 현지에서 조립한 이 소각로는 지금도 가동될 수 있다.

면적이 54만평이나 되는 제2수용소 구내로 뻗은 철도 인입선. 유럽 각지에서 끌려온 유태인들은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남자는 강제노역장, 노약자는 가스실로 끌려갔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포로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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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11일

체코

  • 극단의 이념 교육으로 자라난 사람으로 동구에 대한 생각을 다르다.
  • 공포까지는 아니어도 뭔가 섬찟한 느낌과 함께
  • 뭔가 신비하게도 궁금한 점이 많다.
  • 하여 거기로 나서 보기로 했다.





060811_6328

창가에 앉고 싶지만 그것이 맘대로 되던가.

남의 창을 빌려서 한컷.

보통사람의 여행이 다 그렇지만 찡겨가는 이름도 이쁜 비지니스석

그래도 그나름대로 맛이 있다.

머갈 여행 떠나는 사람들과 사귀기도 좋고

어렸을 때 빠끔살이 처럼 끼니 때 마다 챙겨주는 조그만 그릇의 별미 먹는 맛도 쏠쏠하다.

체코공항이 작아서 점보기는 갈 수 없고... 그래도 300여석이나 되는 A300이 꽈악찼다.

동유럽 여행이 유행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타고오간 비행기 에어버스 A330-300



체코 루지네 국제 공항

인천 공항 처럼 택도 없이 비대하지는 않했지만

잘 짜여진 실속, 사용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는 정도의느낌이었다.

입국 수속의 민첩성등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불만으로 하기에는 그런 정도.

언제나 처럼 내게는 전에 공산국가였던 나라의 입국느낌은 묘하다.

< 체코 여행 정보 >

http://www.hanatour.com/asp/travelinfo/if-12000.asp?country_code=CZ



프라하로 입국하여 버스를 타고 바로 체코 모라비아의 주도 부르노로 이동

호텔 옆 식당에서의 저녁 식사

그들의 식사에는 밴드가 동참하여 음악과 함께하는 여유가 있다.


체코 제 2의 도시이자 풍부한 문화유산의 도시. 과거 모라비아 왕국의 수도로 발전하면서 여러 번의 전쟁을 치르면서도 이 지방의 문화, 학문의 중심지로 자리잡아 많은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대학 등이 있다.

구시가의 중심에 위치한 자유 광장은 광장 한 가운데를 관통하며 전차가 달리고 때때로 문화행사가 열리기도 하는 곳으로 주변에 야외 까페와 기념품 가게 등이 있어 여행 중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구시가지 서쪽 언덕에 위치한 슈필베르크 성은 13세기의 성터이며 이 곳에서 모라비아의 자연과 브르노 시가지의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북쪽의 성 야콥 교회 역시 13세기 지어진 교회로 92m의 첨탑이 교회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다. 브루노 서쪽 외곽의 멘델수도원은 유전학의 대가 멘델이 사제 생활을 하면서 완두콩의 교배 실험을 했던 유서깊은 장소이다.

<부르노여행 정보 >

http://www.hanatour.com/asp/travelinfo/if-13000.asp?city_code=BRQ



양초 공예에 가까운

오랜 역사를 보여 주는 촛대

식당 인테리어가 깔끔 했고 식탁에는 촛불을 켜게 되어 있었다.




식당의 외관

언제나 북적 거리지는 않을 것 같은

그러면서도 아늑한 자리를 줄 것 같은...






비행 10시간 30분, 버스 2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이국의 첫날 밤'보로노즈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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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and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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