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

 

피렌체의 남쪽 약 50km 지점, 옴브로네강()의 지류 사이에 끼어 있는 해발고도 320m의 구릉에 위치한다.

포도주 산지로서 이름높은 키안티 산지에 위치하여 포도주 ·대리석 ·농기구 등을 생산한다.

시()는 에트루리아인()이 건설하여, 로마인의 식민시()가 되었으나, 현재 고대의 유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벽돌과 석재로 축조된 중세의 시가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중세에서 근세에 걸쳐 피렌체 ·아레초 등의 도시와 교황세력, 에스파냐 세력이 시에나의 지배를 둘러싸고 서로 다툼으로써 침략당하기도 했다. 1559년 이후에는 토스카나 공국()에 병합되어 이탈리아 통일에 이르렀다.

시에나의 르네상스는 14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특히 회화에서는 14세기 전반에 시에나파()가 성립되었다.

카시아 가도()에 위치하고 있으나 간선철도에서 떨어져 있으므로 근대도시로서의 발전은 별로 없고, 옛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이탈리아 고딕양식의 대표로 알려진 시에나 대성당, 코르사델팔리오(중세풍의 경마)가 해마다 열리는 캄포 광장, 만자탑()이 있는 시청사 등이 있다.

그 밖에 13세기에 창건한 대학, 음악 아카데미 등이 있으며, 이들 건축물과 풍부한 르네상스 미술 작품에 의해서 중부 이탈리아의 중요한 관광도시이다.

 

 

 

 

 

 

 

 

 

 

 

 

 

 

 

 

 

 

 

 

 

 

 

푸블리코 궁전

 

캄포 광장에 우뚝 서 있다. 

1297년에서 1342년 사이에 지어진 토스카나 지방의 대표적인 고딕식 건물로 현재 1층은 시청사이고, 2~3층은 시립 미술관이다.

건물 왼쪽의 만자탑(Torre di Mangia)은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탑으로 약 102m, 505개 계단을 통해서 정상까지 오르면 온통 붉은 벽돌과 진흙으로 이루어진 중세의 시가지 모습과 토스카나 지방의 농촌 풍경 파노라마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또 바로 밑의 조개 껍데기 모양의 캄포 광장의 모습도 한눈에 들어온다.

건물 오른쪽은 시청사(City Hall)로 사용되고 있는데, 프레스코화가 많이 소장되어 있다.

피에트로의 《마리아의 대관》, 소()도마의 《부활》, 마르티니의 《마에스타》 등 유명한 작품들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푸블리코 궁전 [Palazzo Pubblico] (두산백과)

 

 

 

 

 

 

 

 

 

 

 

 

 

 

 

 

 

 

 

 

 

 

 

 

 

 

 

 

 

 

 

 

캄포광장

 

시에나의 중심지이자 시에나 초기 역사의 중심지이다.

특이한 구조로 유명한데 광장은 매우 넓으며 전체적인 모양이 마치 조개 껍데기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또한 하얀 돌로 9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것은 중세시대 때의 9개 의회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광장 가장자리에 위치한 만자탑 (Torre di Mangia)은 길이 102m의 오르막 계단을 올라가면 시에나의 멋진 시가지 전경을 즐길 수 있고, 탑 옆에는 푸블리코 궁전이 있다. 광장 중앙에는 조각가 야코포 델라 퀘르치아 작품의 《가이아의 분수》 복제품이 있는데, 진품은 시립박물관에 있다.

평소에 눕거나 앉아 마시고 떠들며 이탈리아의 태양을 만끽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7~8월에는 시에나의 전통 축제인 팔리오가 열려 더욱 활기차다.

[네이버 지식백과] 캄포 광장 [Piazza del Campo] (두산백과)

 

 

 

 

 

 

 

 

 

시에나 대성당

 

고딕 양식을 이탈리아적인 모습으로 가장 잘 정리한 건물로 알려졌다.

1229년에 착공, 1259년에는 회당부(), 1317년에는 원개()를 떠받치는 6각형의 기부()와 내진부()의 건설이 끝났으나, 전면적인 확장계획이 실시되어 1340년경부터 새로운 구상으로 제2기 공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8년 후에 페스트가 도시를 휩쓰는 바람에 대규모의 개조는 중단되고 결국 당초의 계획이 바뀌어 1380년에 겨우 완성되었다.

교차궁륭(窿)으로 덮인 회당부를 비롯하여 성당()의 본체()는 로마네스크 양식에 가깝고 구성에 있어서도 불규칙적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건물을 유명하게 한 것은 좌우 대칭으로 배치된 3쌍의 3각 박공()으로 된 고딕풍의 화려한 서쪽 정면이다.

니콜라 피사노가 설계하였으며 그가 죽은 뒤 실제로 공사를 지휘한 것은 아들 조반니였다.

박공 양옆의 소첨탑() 중앙의 장미창, 입구의 구성과 조각 등 고딕 양식의 격식은 일단 갖추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고딕 본래의 수직성보다도 계산된 명쾌한 균형이 주는 안정감이 강한 편이어서 색대리석을 사용한 색채설계와 함께 오히려 이탈리아 특유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채색() 수법은 측면 ·내부 ·종탑(14세기 말)에서도 볼 수 있으며, 검은 색과 흰색의 아름다운 줄무늬는 전체적으로 훌륭한 시각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에나대성당 [Duomo di Siena, ─大聖堂]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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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역사 지구

 

피렌체는 14~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걸작이 곳곳에 남아 있는 도시이다.

피렌체 역사 지구에는 피렌체의 상징인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과 단테의 생가, 시뇨리아 광장, 베키오 궁, 미켈란젤로 광장 등이 있으며 메디치 가문이 기증한 우피치 미술관도 만날 수 있다.

우피치 미술관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등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뿐 아니라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주요 작품까지 소장하고 있어 이탈리아 최고의 미술관으로 손꼽힌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렌체 역사 지구 [Historic Centre of Firenze] (이탈리아에서 보물찾기 1, 2, 2011., 아이세움)

 

 

 

 

 

 

 

 

 

 

 

 

 

 

 

단테의 생가

 

이탈리아 중세를 대표하는 시인 단테(1265~1321)가 태어난 집이다.

단테 알리기에리 거리(Via. Dante Alighieri)에 있으며, 내부에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13세기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개장시간: 10:00~17:00

[네이버 지식백과] 단테의 생가 [Dante's Birthplace]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시공사)

 

 

 

 

 

 

 

 

 

 

 

 

베키오 궁전

 

1298년에 착공하여 몇 번에 걸친 개조 공사를 통해 16세기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1540년에 코시모 공작 1세의 명으로 바사리가 내부를 개조했다.

일찍이 피렌체 공화국(토스카나 공화국)의 청사였던 건물로, 현재도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궁전 오른쪽 입구로 계단을 올라가면 대청으로 들어서게 되며, 대청 양쪽 벽면에는 바사리와 그 일파가 그린 메디치의 전투장면이 있다.

3층에는 기를란다요의 로마 영웅들을 표현한 프레스코화가 있으며 그밖에도 마키아벨리 초상화, 프란체스코 1세의 방, 지구의 방 등 옛날 피렌체의 부와 힘을 느끼게 하는 유물들이 많다.

[네이버 지식백과] 베키오 궁전 [Palazzo Vecchio] (두산백과)

 

 

시뇨리아 광장

 

수세기 동안 피렌체의 정치·사회적 중심지였으며, 현재는 카페 테라스가 있는 휴게장소이다.

광장 부근 베키오 궁전에 있는 종루의 종은 시민들을 공공집회에 불러모으는 데 사용되었다.

광장에는 피렌체를 일으킨 코지모 데 메디치의 동상이 있고,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동상 《다비드》의 모조품과 메두사의 목을 벤 페르세우스의 청동상인 《첼리니의 페르세우스》, 잠볼로냐의 《사빈 여인의 강간》 등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 모조품들이 있다.

광장 중앙에는 한때 피렌체를 지배했던 수도승 사보나롤라의 처형지임을 알리는 화강암이 서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뇨리아 광장 [Piazza della Signoria] (두산백과)

 

 

 

 

 

 

 

 

 

 

 

 

 

 

 

 

 

 

 

 

 

 

 

 

 

 

 

 

 

 

 

 

 

 

 

 

 

 

 

 

 

 

 

 

 

 

 

 

 

 

 

 

 

 

 

 

 

 

 

 

 

 

 

베키오 다리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강 위에 세워진 다리로 14세기에 건설되었다.

강 양쪽으로 귀금속 세공소와 보석상이 즐비하다. 본래 푸줏간이 있던 자리였는데, 페르디난도 1세가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로 철거시킨 후 금은 세공품 상점이 들어섰다. 베키오 다리는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처음 만난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된 이 다리에서 피렌체의 연인들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그 증표로 자물쇠를 채운 뒤 열쇠를 강물에 버리거나 다리에 자물쇠를 달곤 했다.

현재는 피렌체 시에서 다리가 손상될 것을 우려해 이와 같은 행위를 금지하고 어길 시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저녁노을이 질 무렵 베키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아르노강의 풍경도 아름답다.

[네이버 지식백과] 베키오 다리 [Ponte Vecchio]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시공사)

 

 

 

 

 

 

 

 

 

 

 

 

 

 

 

 

 

 

 

 

 

 

 

 

우피치 미술관

 

고대 그리스의 미술 작품에서 렘브란트의 작품까지 소장품은 다양하지만, 무엇보다 르네상스 회화의 걸작들을 다량 보유하고 있어서 세계 굴지의 미술관으로 손꼽힌다. 우피치(Uffizi)는 이탈리아어로 '집무실'을 뜻하며 미술관 건물은 본래 피렌체 공화국의 행정국이었다. 1560년경 초대 토스카나 대공인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1세가 피렌체의 행정·사법기관을 한곳에 모으기 위한 건물 건립을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에게 명령하면서 착공되었다.

우피치 미술관의 역사는 바사리가 이 건물을 완성한 1560~1574년에 시작되지만, 미술품이 수집된 것은 이보다 이른 시기인 15세기 전반부터 피렌체를 다스린 코시모 일 베키오(1389~1465)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메디치가는 이곳을 통치하던 200년 동안 예술가들에게 미술품 제작을 의뢰하고 작품을 수집했다. 코시모 1세 때부터 각지에 분산되어 있던 메디치가의 미술품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1737년 메디치가의 마지막 후손으로 우피치 궁의 미술품을 물려받은 안나 마리아 로도비카가 토스카나 대공국에 기증했고 그녀의 뜻에 따라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우피치 미술관에는 14~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뿐 아니라 17~18세기 바로크와 로코코의 화가, 독일과 프랑스 르네상스 화가들의 중요한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장품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봄의 향연>,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조토의 <마돈나>, 다빈치의 <수태고지>, 미켈란젤로의 <성가족>, 라파엘로의 <어린 요한과 함께 있는 예수와 성모>, 카라바조의 <바쿠스> 등이다.

무려 2,500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소장품을 보려면 적어도 한나절은 필요하다. 유명 회화 작품들이 몰려 있는 3층부터 관람하는 것이 좋다. 2층은 소묘와 판화 전시실이며 1층에는 고문서류도 있다. 미술관 한 모퉁이에는 '바사리의 회랑'이라는 긴 복도 모양의 건물이 베키오 다리로 이어져 있다. 베키오 궁전과 아르노 강 건너편의 피티 궁전을 연결하는 이 회랑은 길이가 약 1km에 이르며 세계 최대의 초상화 전시로 유명하다.

우피치 미술관은 1993년 테러리스트가 폭탄을 던져 상당한 피해를 입었으나 그 후 중요한 부분을 개조했다. 워낙 관람객이 많아 몇 십 명 단위로 입장을 허용하니 관람하려면 일찍 가는 것이 좋다. 피렌체는 우피치, 아카데미아, 바르젤로, 산 마르코 미술관 입장권 예매를 실시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우피치 미술관 [Galleria degli Uffizi]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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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두오모 대성당)

 

브루넬레스키의 유명한 돔 지붕이 얹혀 있는, 한때는 세계 최대였던 성당

두오모, 혹은 피렌체 대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바실리카는 현재 로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 밀라노 대성당에 뒤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성당이다.

그러나 이 바실리카가 처음 지어졌을 때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3만 명의 신도를 수용할 수 있었으며 피렌체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지배력을 상징하던 곳이었다.

성당을 짓는 작업은 1296년에 시작되었으나, 축성을 받은 것은 1436년에 이르러서였다.

이 성당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화려한 녹색과 붉은색, 흰색의 대리석 파사드, 르네상스 거장들 그림과 조각 작품 컬렉션,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돔 덕분에 명성이 높다.

이곳은 또한 1439년부터 피렌체 의회가 있었으며,

종교 개혁가이자 '허영의 소각'(죄가 된다고 여겼던 사치품과 이교도적인 미술품, 책 등을 공개적으로 불태운 사건)의 주동자 지롤라모 사보나롤라가 설교를 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 성당에서는 살인 사건이 일어난 적도 있다. 1478년 피렌체의 공동 통치자였던 줄리아노 디 피에로 데 메디치가 라이벌인 피사의 대주교와 교황 식스토 4세가 보낸 이들에게 찔려 숨졌던 것이다.

그의 형이자 공동 통치자였던 '위대한 로렌초' 역시 칼에 찔렸으나, 무사히 몸을 피했고 이후에는 대주교를 목매달아 죽여 버렸다.

오래된 산타 레파라타 성당이 있던 부지에 세워진 이 성당의 건축은 아르놀포 디 캄비오로 시작하여 여러 건축가들이 맡아 보았다.

1331년 작업을 총괄하기 위한 협회가 창설되었고,

1334년에는 화가이자 건축가인 조토가 총 책임자로 임명되었으며, 건축가 안드레아 피사노가 조수를 맡았다.

1337년 조토의 사망 후 여러 명의 건축가가 감독을 맡았으며, 원래의 계획을 확장하고 돔을 짓는 쪽으로 설계했다.

1418년 돔을 건축할 디자이너를 찾기 위한 공모전이 열렸다.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선발되었다.

그의 혁신적인 설계는 발판이 필요 없이 스스로 지탱되는 돔을 낳았다. 돔은 1436년에 완공되어, 독창적인 걸작으로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렌체 대성당 [Florence Cathedral]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2009. 1. 20., 마로니에북스)

 

 

 

 

 

 

 

 

 

 

 

 

산 조반니 세례당

 

두오모 옆에 위치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팔각형 건물로,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건축물이다.

4세기경에 세워진 소성당을 11세기에 재건한 것으로, 피렌체의 수호 성인 산 조반니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세례당 자체보다 부조가 새겨진 3개의 청동 문이 더 유명하다.

특히 로렌초 기베르티가 제작한 동쪽 출입문은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답다'고 극찬했다고 전해진다.

심판자 그리스도의 모습, 천체도, 성서 에피소드 등이 그려진 천장의 모자이크도 볼거리다.

[네이버 지식백과] 산 조반니 세례당 [Battistero di San Giovanni]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시공사)

 

 

 

 

 

 

 

 

 

 

 

 

조토의 종탑

 

피렌체 출신 화가 조토와 그의 제자 피사노가 함께 작업해 14세기 말에 완성한 종탑이다.

두오모와 마찬가지로 외관은 장미색, 흰색, 녹색의 3색 대리석을 이용해 정교하게 만들었다.

종탑 최하단에 장식되어 있는 붉은색 패널 안에 있는 부조는 안드레아 피사노의 작품이다.

현재 종탑에 장식되어 있는 것은 복제품이다. 원작은 두오모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414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 높이 84m의 꼭대기에 도달하면 두오모의 웅장한 모습과 피렌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개장시간: 8:30~19:30

[네이버 지식백과] 조토의 종탑 [Campanile di Giotto]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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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

 

아르노강()의 퇴적작용으로 인하여 현재의 해안선은 피사시()에서 서쪽으로 10km쯤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항만도시로서의 의미는 지니지 못한다.

11세기 말에 제노바·베네치아와 대립하는 강력한 해상공화국으로서 번영하였다.

13세기에 이르러 제노바에 패하였으나 그 후에도 문예의 중심지로서 번창하여, 갈릴레이도 이곳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아르노강 하구 부근에 있는 오래된 도시로 도로·철도 등 교통의 요지이며

기계공업을 비롯한 많은 근대공업, 대리석 가공업 등이 성하다.

주변 농업지대에서는 포도·올리브·곡물 등의 재배와 목축이 활발하다.

피사 대성당에 부속된 사탑은 갈릴레이의 이름과 더불어 유명하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피사의 사탑

 

피사의 십자형 두오모는 그 원주형 캄파닐레(종탑)와 원형 세례당과 함께 세계에서도 가장 보기드문 건물군 중의 하나이다.

캄파닐레는 묘하게도 대성당의 앞편이 아닌 뒤편을 향한 위치인데, '기적의 들판'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볼 수 있다.

여덟 줄의 열주형 아치가 에워싸고 맨 꼭대기에는 종루를 올려놓은 대리석 석공술은 교회의 앱스와 그 테마 면에서 연결이 되어 있다.

이 종탑은 원래 수직으로 똑바로 서 있도록 설계되었으나, 착공 때부터 징크스에 걸려 있었던 것 같다.

진흙, 고운 모래, 조개껍데기 등으로 구성된 미끄러운 토대 위에 밑돌을 놓는 바람에 곧 눈에 띄게 함몰이 되었고,

1178년에는 겨우 세 층밖에 올리지 못한 상황에서 공사가 중지되었다.

기울어지는 각도가 점점 더 심해지면서 구조 자체가 그 축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 남쪽 부분이 표면을 향해 위로 쳐들리게 되었고,

1272년 경사의 장력을 상쇄시키기 위해 더 무거운 자재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1360년에는 종루로 올라가는 일곱 번째 코니스로부터 남쪽과 북쪽의 층계의 개수를 4개와 6개로 번갈아가며 바꿈으로써

중력에 저항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방법도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1838년 기단부 주위로 통로를 파는 바람에 홍수가 나서 더욱 심하게 기울어지는 역효과만 초래했다.

1173년 이래 이 '기울어지는 탑'은 세간의 화제였다.

1991년부터 2001년에 걸쳐 현대 기술이 허락하는 온갖 공학적 재주를 다 동원하여 기단부 재건 공사가 진행되었다.

전문가들은 이 탑을 후세에게 보전하기 위해 흙을 추출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사의 사탑 [Tower at Pisa]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 2009. 1. 20., 마로니에북스)

 

 

 

 

 

 

 

 

 

 

 

 

 

 

 

 

 

 

 

 

 

피사 대성당

 

1063년 부스케투스의 설계로 착공, 1118년에 헌당식()을 올렸고,

1272년 이후에 라이날두스에 의해 회당부()가 서쪽으로 연장()되었다.

전체는 어느 것이나 바실리카풍의 단면()을 가진 5회랑식() 회당부와,

좌우의 익랑()으로 된 라틴 십자() 플랜을 나타내며, 교차부()에는 드물게 보이는 타원형의 원개()를 올려놓았다.

대리석의 가로무늬 모양의 석조물 배합이 선명한 외부는 전면에 장식적인 둥근지붕이 있는 복도와 측주()를 둘러쳤으며,

서쪽 정면()의 상부 4층은 개방된 열주()로 장식되었다.

대성당의 앞에 독립해서 세워진 세례당()은 디오티살비의 설계에 의해 1153년에 착공되었으며,

2층의 회랑을 가진 내부는 원추상()의 궁륭(窿)의 천장으로 덮이고, 이것을 외부의 원개가 싸안은 특수한 이중구조로 되었다.

고딕풍의 외관은 N.피사노도 협력했다고 전하는 13세기의 개장()에 의한 것이다.

대성당의 배후에는 ‘피사의 사탑’으로서 이름높은 종탑(:캄파닐레)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피사대성당 [Duomo di Pisa, ─大聖堂] (두산백과)

 

 

 

 

 

 

 

 

 

 

 

 

 

 

 

 

 

 

 

 

 

 

 

 

 

 

 

 

 

 

 

 

 

 

 

 

 

 

 

 

 

 

 

 

 

 

 

 

 

 

 

 

 

 

 

 

피사모 두오모 광장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582356&cid=47318&categoryId=4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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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퀘테레

 

5개 마을은 제노바에서 라 스페치아(La Spezia)로 향하는 중간에 있는 마을로

몬테로소 알 마레(Monterosso al Mare)와 베르나차(Vernazza), 코르닐리아(Corniglia), 마나롤라(Manarola), 리오마조레(Riomaggiore)이다.

20세기에 이탈리아의 지역 중 외국의 관광객에 의해서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곳으로 발견되었고

해안과 5개 마을, 주변의 언덕은 친퀘테레(Cinque Terre) 국립 공원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18Km에 이르는 가파른 바위 해안을 따라 계단식의 언덕과 농장,

과수원이 있는 리비에라(Riviera) 해안에 위치하는 5개의 작은 마을을 연결한 관광노선을 의미한다.

바다 위 언덕에 있는 오래된 도보용 도로와 노새 길은 올리브 나무 숲과 포도 농장, 과수원, 밤나무 숲을 따라 지난다.

도보용 도로 중에서 리오메기오레(Riomaggiore)와 메네롤라(Manarola) 사이의 도로는 아름다운 경치와 걷기 쉬운 곳으로

‘연인의 길’이라는 의미를 지닌 ‘비아 델아모르(Via DellAmore: Lovers Walk)’라고 한다.

각 마을은 라 스페치아(La Spezia)에서 제노바로 향하는 기차로 연결되어 있고

몇 분의 거리에 있으며 리오메기오레(Riomaggiore)와 몬테로소(Monterosso) 사이의 철로는 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철도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친퀘테레 카드(Cinque Terre Card) 시스템이 있다.

마을 도로가 좁아 자동차를 이용하기 어렵고, 해안을 따라 각 마을을 운행하는 선박이 운항된다.

올리브 오일과 와인을 생산하고 포카치아(Focaccia)라는 지역 특산 빵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친퀘테레 [Cinque Terre] (두산백과)

 

 

 

 

 

 

 

 

 

 

 

 

 

 

 

 

 

 

 

 

 

 

 

 

 

 

 

 

리오마제래 마을

 

이탈리아 북부의 리구리아 주() 라스페치아(La Spezia)지방에 속하는 마을이다.

대서양에 면해있는 가파른 절벽 해안가 협곡에 위치하고 있다.

라스페치아에서 서쪽 대서양 절벽 협곡을 따라 북쪽으로 작은 어촌 마을들이 이어져 있는데

이들 어촌 마을 중 유명한 곳 다섯곳의 마을을 친퀘테레(Cineque Terre)라고 부른다.

리오마조레는 이들 다섯개의 마을 중 가장 남쪽에 있는 첫 번째 마을이다.

13세기초부터 이곳에 마을이 있었다는 역사적인 기록이 전해지며 오래된 고성유적이 남아있다.

협곡의 비탈을 개간하여 포도를 재배하고 건조한 해풍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와인이 유명하다.

집들은 해안가 절벽 바위 위에 지어져 있고 연한 붉은색과 노란색, 분홍색 등 파스텔풍의 색채로 칠해져 있어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라스페치아에서 철로가 연결되며 라오마조레 역(train station)이 있다.

해안선을 따라 절벽에는 비탈진 길이 나 있는데

'사랑의 샛길'이라고 불리는 '델 아모레(dell'Amore)'는 친퀘테레 중 리오마조레와 마나롤라(Manarola)를 연결하고 있다. 

해안에는 방파제가 있고 관광유람선이 정박하며 370번 도로가 산길을 따라 정기 버스가 라스페치아로 연결된다. 

마을의 중심지인 콜롬보(Colombo) 거리에는 많은 음식점, 술집, 기념품 상점과 카페들이 줄지어 있다.

하지만 거리가 좁은 골목길이기 때문에 자동차 진입이 불가능하고 마을 입구에 작은 주차장이 있지만 성수기에는 주차가 불가능하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절벽을 내려가면 가갈밭 해변이 있어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붐빈다.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이자 마키아이올리파에 속해있었던 텔레마코 시뇨리니(Telemaco Signorini)가

리오마조레에서 예술적인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알려져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리오마조레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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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알토 다리

 

"베네치아에서는 리알토 다리(Rialto Bridge)를 보아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다리이다.

예전부터 리알토 다리 주변은 상권의 중심가였다.

12세기 경, 넘쳐나는 상품들과 한쪽 둑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요를 배가 감당하지 못하자

다리 건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16세기가 될 때까지 제대로 된 다리 없이 나무 다리를 임시로 사용하다가,

16세기 말 안토니오 다 폰테가 돌로 된 최초의 다리를 설계·건축하였는데 그 다리가 바로 리알토 다리이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다리는 1854년 아카데미아 다리가 지어지기 전까지 대운하를 건너는 유일한 다리였다.

이 다리를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베네치아의 첫 번째 다리라는 사실,

아치 모양의 아름다움, 다리 위에 화려하게 장식된 아케이드 점포들이다.

대운하에서 곤돌라를 타고 보는 모습이 아름답고 계단식 다리 위는 귀금속과 가죽 제품 등을 파는 점포들과

그것을 구경하는 관광객,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 

[네이버 지식백과] 리알토 다리 [Ponte di Rialto]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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