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돌라

 

곤돌라는 이탈리아말로 ‘흔들리다’라는 뜻을 가진다.

길이 10m 이내, 너비 1.2∼1.6m이다. 관광객 유람용으로 이용되는 곤돌라는 고대의 배 모양을 본떠 만들었는데,

선수()와 선미()가 휘어져 올라가 있다.

중앙의 지붕이 낮은 객실에 5∼6명을 태우고, 선수와 선미에서 두 사람의 뱃사공이 3m 정도의 긴 노를 젓는다.

베네치아시는 운하가 도로의 역할을 하는 수상도시이어서 곤돌라는 11세기경부터 시내의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다.

16세기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야채와 식료품 등도 운반하였으며, 그 수는 약 1만 척에 달하였다.

배의 색채는 1562년 베네치아 시령()에 따라 검은색으로 통일되었다.

오늘날은 모터 보트의 보급으로 겨우 수백 척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곤돌라 [gondola]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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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01106&cid=40942&categoryId=34083

 

 

 

 

 

 

 

 

 

 

카사노바

 

1725년 4월 2일 베네치아에서 출생하였다.

‘생갈트의 기사(Chevalier de Seingalt)’라는 이름은 그가 자칭한 것이다.

처음에는 성직자·군인·바이올리니스트 등으로 입신하려 하였으나, 추문()으로 투옥되었다.

1756년 탈옥한 이후부터 생애의 3분의 2를 여행으로 유럽 전토를 편력하였다.

재치와 폭넓은 교양을 구사하여 외교관·재무관·스파이 등 여러 직업을 갖기도 하고, 감옥에 투옥당하는 등 그의 삶은 변화무쌍하였다.

그 동안 여러 계층의 사람들(·귀족·문학가·과학자·예술가·희극배우·귀부인·천민·사기꾼·방탕아)과 두루 사귀었고

계몽주의 사상에도 접하며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냈다.

그는 보헤미아 둑스의 성에서 발트슈타인 백작의 사서()로 쓸쓸히 죽었으나,

그의 저술가로서의 명성은 이 성에서 지루한 나날을 달래기 위해 쓴 《회상록 Histoire de ma vie》(12권, 1826∼1838) 때문이다.

이것은 18세기 유럽의 사회·풍속을 아는 데 귀중한 기록이 되었다.

또한 5부로 된 공상소설 《20일 이야기 Icosameron》(1888)는 쥘 베른의 《지저() 여행》의 선구적 작품이라 일컬어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아코모 카사노바 [Giacomo Girolamo Casanova] (두산백과)

 

 

 

영어로는 베니스(Venice)라고 한다.

베네치아만() 안쪽의 석호(:라군) 위에 흩어져 있는 118개의 섬들이 약 400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

섬과 섬 사이의 수로가 중요한 교통로가 되어 독특한 시가지를 이루며, 흔히 ‘물의 도시’라고 부른다.

대안의 메스테르와는 철교·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나, 철도역은 철교가 와 닿는 섬 어귀에 있고,

다리를 왕래하는 자동차도 시내에는 들어올 수 없다.

시가지는 본래 석호사주()였던 곳에 들어섰기 때문에 지반이 약하고,

따라서 근래 지반침하와 석호의 오염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베네치아의 역사는, 567년 이민족에 쫓긴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만() 기슭에 마을을 만든 데서 시작된다.

6세기 말에는 12개의 섬에 취락이 형성되어 리알토섬이 그 중심이 되고, 이후 리알토가 베네치아 번영의 심장부 구실을 하였다.

처음 비잔틴의 지배를 받으면서 급속히 해상무역의 본거지로 성장하여 7세기 말에는 무역의 중심지로 알려졌고,

도시공화제() 아래 독립적 특권을 행사하였다.

10세기 말에는 동부지중해 지역과의 무역으로 얻은 경제적 번영으로 이탈리아의 자유도시들 중에서 가장 부강한 도시로 성장하였다.

S자형의 대운하가 시가지 중앙을 관통하고,

출구 쪽의 운하 기슭에 장대한 산마르코 광장()이 자리한 기본적인 도시형태는

산마르코 대성당을 비롯한 교회·궁전 등과 더불어 13세기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산마르코 대성당의 5개의 원형 지붕에서 볼 수 있듯이,

베네치아의 몇몇 건축물에서는 동방의 영향을 반영하는 비잔틴풍() 또는 오리엔트풍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베네치아는 십자군() 원정에 힘입어서 동방무역을 확대하고,

나아가서 현재 그리스의 여러 섬들을 비롯한 동부지중해 지역에 영토를 확대함으로써

14~15세기 초에 해상무역공화국으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 무렵의 베네치아 인구는 약 20만으로 추정된다. 공화국의 정치 중심이었던 두칼레 궁전이 완성된 것도 15세기였다.

16세기 이후, 투르크인에 의해 동부 지중해에서 세력이 약화되고,

따라서 베네치아는 점차 오늘날의 베네토주의 풍요한 농업지대의 중심 도시로서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도시경제의 쇠퇴와 페스트의 유행으로 16세기에는 인구가 10만으로 감소하였다.

1797년에는 나폴레옹 1세에 의해 점령되었고, 1866년에 이탈리아 왕국군에 점령되기까지 반 세기 이상은 오스트리아의 영토가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 경제의 중심인 북부평야를 배후지로 하는 항구도시로 발전하였다.

상항()은 서부의 철도역에 인접한 스타치오네 마리티마이나,

20세기에 들어와 대안에 공업항()으로 마르게라가 건설됨으로써,

마르게라·메스트레 등 대안() 지역이 근대공업지대로 발전하였다.

대안의 공업지구는 현재 행정적으로는 베네치아시에 포함되어 있고,

유리세공업()으로 유명한 무라노섬, 국제영화제 개최지 및 해수욕장, 카지노 등으로 유명한 리도 등도 베네치아시에 포함된다.

베네치아의 구시가지는 지난날의 공화국 번영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고,

 산마르코대성당·두칼레궁전·아카데미아미술관 등은 미술·건축예술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베네치아는 로마·피렌체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중요한 관광지이다.

대학 및 시() 동부의 현대미술전시장에서의 국제비엔날레, 리도의 국제영화제, 페니체극장에서의 음악 등 문화활동도 활발하다.

그러나 구시가지는 면적이 한정되어 있고, 현대생활에는 편리한 환경이 될 수 없으므로 대안부의 도시화가 현저하다.

대안부의 공업은 화학·기계공업이 중심이며, 공업항을 포함한 베네치아항의 취급물량은 이탈리아 제3위를 차지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베네치아 [Venice] (두산백과)

 

 

 

 

 

 

 

 

 

 

 

탄식의 다리

 

두칼레 궁전과 작은 운하를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나 있는 감옥을 잇는 다리이다.

1600년부터 1603년까지 안토니 콘티노(Antoni Contino)의 설계로 만들어졌다. 

'10인의 평의회'에서 형을 받은 죄인은 누구나 이 다리를 지나 감옥으로 연행되었다.

죄인들은 이 다리의 창을 통해 밖을 보며 다시는 아름다운 베네치아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탄식을 했다고 한다.

다리로 이어지는 감옥은 조반니 카사노바가 갇혔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탄식의 다리 [Ponte dei Sospiri] (두산백과)

 

 

 

 

 

 

 

 

 

 

 

 

 

 

 

 

 

 

 

 

 

 

 

 

 

 

 

 

 

 

 

 

 

 

 

 

 

 

 

 

 

 

 

 

 

 

 

 

 

 

 

 

 

 

 

 

 

 

 

 

 

 

 

 

 

 

 

 

 

 

 

 

 

 

 

 

 

 

 

 

 

 

 

 

 

 

 

 

 

 

 

 

 

두칼래 궁전

 

679년부터 1797년까지 1,100년 동안 베네치아를 다스린 120명에 이르는 베네치아 총독의 공식적인 주거지였다. 

9세기에 처음 건설되었고, 현재의 외관은 14~15세기에 형성되었다.

최초의 건물은 마치 요새 같은 고딕 양식의 건물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고딕 양식을 잘 나타내면서도 비잔틴, 르네상스 건축 양식이 복합된 모습이다.

북방의 고딕 양식과 베네치아의 동방적 양식와 장식이 어우러진 모습을 베네치아 고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궁전은 베네치아 고딕의 조형미가 가장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건물은 흰색과 분홍빛의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고, 회랑은 36개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칼레 궁전에는 두 개의 정문이 있는데,

산마르코 대성당에 면한 쪽의 '문서의 문(Porta della Carta)'은 옛날에 정부의 포고문이나 법령 등을 붙이던 곳이다.

문 위에 보이는 날개가 있는 사자는 베네치아의 상징이다.

내부에는 총독의 방과 접견실, 투표실, 재판실 등이 있다.

가장 볼 만한 곳은 재판을 담당하던 '10인 평의회의 방'이다.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 중 하나로 유명한 틴토레토의 대벽화 《천》,

베네치아의 주요 역사를 그린 그림, 76인 총독의 초상화 등이 있다.

또 궁전 재판실에서 소운하를 사이에 두고 '탄식의 다리'라고 불리는 다리를 건너면 감옥이 있는데,

이곳의 감옥은 카사노바가 갇혔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궁전에서 감옥으로 넘어가는 다리에 '탄식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다리에 난 창으로 죄수들이 감옥으로 옮겨지면서

다시는 아름다운 베네치아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한숨을 쉬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베네치아의 총독은 선출되기가 힘들었던 데 비해, 

평의회 의원의 참석 없이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고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의원이 동행해야만 베니치아를 벗어날 수 있었으며, 

그의 궁전에서 열리는 모든 공식적인 축제의 비용을 시의 도움 없이 혼자서 지불해야만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칼레 궁전 [Palazzo Ducale] (두산백과)

 

 

 

 

 

 

 

 

 

 

 

 

 

 

 

산 마르코 광장

 

베네치아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열주로 가득한 건물이 광장을 'ㄷ'자로 둘러싸고 있어 광장은 하나의 거대한 홀처럼 보이며,

나폴레옹은 이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홀)이라 불렀다.

광장의 가운데에는 베네치아의 수호신인 날개 달린 사자상과 성테오도르상이 있고 동쪽으로 산 마르코 대성당, 두칼레 궁전이 있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은 16세기 경 정부청사로 건립된 것으로 나폴레옹의 날개(알라 나폴레오니카)라고도 불리며,

현재는 박물관을 비롯해 오래된 카페, 살롱들이 들어서 있다.

그중 1720년에 개업한 카페 플로리안은 과거 바이런, 괴테, 바그너 등이 자주 들렀던 곳으로 유명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산마르코 광장 [San Marco Piazza]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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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나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01177&cid=40942&categoryId=34083

 

브레네르 고개를 넘는 도로·철도가 이탈리아 북부의 평야에 들어서는 곳에 있으며,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 상업의 중심지로서 발달하였다.

로마 시대의 건조물로는 원형극장과 아디제강()의 다리 등이 남아 있다.

12∼13세기에는 롱고바르드(롬바르디아)의 지배하에 번영하였으며, 13∼14세기에는 겔프당()과 기벨린당 사이의 투쟁이 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은 이 투쟁을 배경으로 한다.

15∼16세기에는 조콘도, 산미켈리, 비토리오·피사노·파올로·베로네세 등에 의해 회화()의 중심이 되었다.

오늘날은 중요한 곡물시장이며, 기계·제지·인쇄 등의 공업 중심지이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베로나 [Verona] (두산백과)

 

 

아디제 강

 

길이 410km. 유역면적 1만 2200km2. 스위스 산지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내려 알프스를 거친다.

다시 롬바르디아 평원의 포강() 북쪽에서 거의 포강과 나란히 동쪽으로 흘러 베네치아 남쪽에서 아드리아해()로 흘러들어간다.

산간 유역에는 트렌토, 산기슭 부근에는 베로나 등의 도시가 있으며,

산간의 골짜기 지대에는 이탈리아인()과 독일계 농민이 옥수수와 밀을 재배한다.

과거 수세기에 걸쳐 제방을 높이 쌓아올려 하류의 끝에서 80m 지점까지는 완전히 인공수로로 이루어졌다.

하구에서 270km까지는 소항()이 가능하며, 발전 ·수운 ·관개 등에 이용된다.

아디제강 본문 이미지 1 

[네이버 지식백과] 아디제강 [Adige R., ─江] (두산백과)

 

 

 

 

 

 

 

 

 

 

 

 

 

 

 

 

 

 

 

 

 

 

 

 

 

 

 

 

 

 

 

 

 

 

 

 

 

 

줄리엣의 발코니까지 완벽하게 갖춘, 『로미오와 줄리엣』 여주인공의 유명한 집

소박한 길거리에 베로나에서 가장 많은 이가 찾는 명소가 서 있다.

바로 줄리엣의 집(라 카사 데 줄리에타)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집이라 여겨지는 이곳은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연인들에게 사원과 같은 곳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상징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만큼 방문객은 벽에 낙서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오늘날 이 집은 건축학적, 역사적, 문학적 사연뿐만 아니라 끝없는 낙서로도 유명해졌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베로나를 방문했다는 증거는 없으나

그의 희곡은 서로 적대적인 두 가문에 대한 이탈리아 전설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그는 이 가문에 캐풀렛과 몬태규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실 현재 줄리엣의 집이라 알려진 이 저택은 한때 델 카펠로라는 이름의 가문의 소유였던 적이 있는데,

셰익스피어가 붙인 캐풀렛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왔을 법도 하다.

아치 꼭대기에 박힌 돌에서는 아직도 델 카펠로 가문의 문장을 볼 수 있다.

희곡의 등장인물들이 실제 인물에 근거한 것인지 여부는 열띤 논쟁의 대상이었지만,

로미오나 줄리엣이 정말 존재했든 아니었든,

그들의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쓰인 가장 훌륭한 러브 스토리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그렇기에 전설적인 기념물이 될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이 집에는 현재 아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좋을 발코니가 있다.

이 발코니는, 로미오가 자신의 사랑을 털어놓는 순간 줄리엣이 서 있던 발코니라는 소문이 있지만

사실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살았다고 여겨지는 시대보다 몇 세기나 뒤에 이 집에 증축된 부분이다.

근처에 로미오의 집이 있으며, 줄리엣의 무덤이라 여겨지는 무덤이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 안에 유골이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연극 속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함께 묻힌다).

오늘날 이 집은 작은 박물관이 되었으며, 계단을 타고 올라가 발코니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다.

20세기에 제작된 줄리엣의 청동상도 서 있는데,

조각상의 오른쪽 가슴을 어루만지면 사랑에 행운이 따른다는 관습 때문에 그녀의 오른쪽 가슴은 항상 반들반들 빛나고 있다.

"이름이란 무엇인가? 장미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해도 여전히 그 향기는 달콤한 것을."
윌리엄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1596년경)

[네이버 지식백과] 줄리엣의 집 [Juliet’s House]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2009. 1. 20., 마로니에북스)

 

 

 

 

 

 

 

 

절절한 사연들

 

 

쥴리엣의 집

 

 

로미오의 집

 

 

 

 

 

 

 

 

 

 

 

 

 

 

 

 

 

스칼라 가문의 묘

 

 

 

 

 

 

 

 

 

 

 

 

 

 

 

 

 

원형 극장 아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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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연 문화 유산

세게의 100대 절경 중의 하나인 랖프스 산맥

 

돌로미테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80&contents_id=1222

 

알프스에는 더 높은 봉우리들이 많지만, 돌로미티는 가장 경이로운 형태로 순수한 드라마를 펼쳐 보인다.

산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파르고 환상적이며, 풍경은 거의 하이킹족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 같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높은 산꼭대기야 등산객들이나 올라갈 수 있겠지만, 좀더 편하게 하이킹을 즐길 만한 곳도 많다.

또 의자식 리프트와 케이블카도 있어 계곡 위로 올라가 볼 수도 있다.

초원의 풀을 깎기 전인 초여름에 가면 야생화가 만발한 스펙터클한 풍경이 당신을 맞을 것이다.

가장 좋은 곳은 이탈리아의 오르티세이 마을 위에 위치한 풀이 무성한 고원,

알페 디 시우시로, 오스트리아 쪽에서는 상크트울리히라 부르며,

독일어, 이탈리아어, 라디노어 방언이 모두 쓰인다.

조그만 민들레와 새파란 용담화, 그 밖에 수백 종에 이르는 식물들이 초원 곳곳을 수놓고 있다.

이곳까지는 걸어오는 것도 그리 힘들지 않다.

우뚝 솟은 사솔룽고가 굽어보고 있는 완만한 산길을 따라 슬슬 걸어오면 된다.

사솔룽고 오두막은 등산객들과 하이킹족들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곳이다.

이 높은 곳에서 사솔룽고 오두막이나 다른 산장들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 밖으로 나오면 상상도 못할 아름다운 산 풍경을 혼자서 즐기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심지어 알페 델 푸에스 주위의 바위투성이 풍경 위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세체다에 다다르면

꼬불꼬불한 오솔길 여기저기에 피어 있는 에델바이스도 발견할 수 있다.

피시아두로 향하는 길고 가파른 여정 끝에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 셀라 초원을 가로지르는 작은 길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신나는 하이킹을 가능하게 한다.

"…숲이 우거진 계곡과 거의 야만적이라고까지 할 만한 풍경이 녹아내린 묘비처럼 우뚝 서 있다."
닉 레드먼, 『옵저버』지()

[네이버 지식백과] 돌로미티 [Experience the Dolomites]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세계휴양지 1001, 2011. 1. 7., 마로니에북스)

 

 

 

 

 

 

아드리아해()로 흘러드는 아디제강()에서 피아베강() 사이로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있으며,

서쪽은 이사르코강()과 아디제강, 북쪽은 리엔자강(), 동쪽은 피아제강, 남쪽은 브렌타강() 등의 골짜기들로 둘러싸여 있다.

산맥에는 마르몰라다산(3,343m)을 최고봉으로 3,000m급의 고봉이 18개나 솟아 있다.

카르스트, 빙하기 지형 등을 갖추어 지형학적으로 중요하며

깎아지른 듯한 수직 절벽과 폭이 좁고 기다란 깊은 계곡들이 장관을 연출한다.

2009년 6월 총면적 14만 1903ha에 이르는 지역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산맥과 기암괴석들은 18세기 프랑스 지질학자인 디외도네 돌로미외의 이름에서 명명된 것으로,

지질학에서 ‘돌로마이트(백운암)’의 기원이 되었다.

돌로미외는 최초로 이곳의 지질학적 특성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지질학자이다.

지질학적으로 돌로미티케 산맥은 돌로마이트화()한 백운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침식작용과 산사태·눈사태·홍수 같은 동적인 과정으로 인해 기묘한 형상이 만들어졌다.

보다 높은 지역에는 빙하작용으로 형성된 독특한 형상을 한 40여 개의 빙하가 있다.

화석 기록과 함께 중생대 탄산염 지대 체계가 잘 보존된 곳으로 꼽힌다.

등정 노선으로는 남북으로 통하는 캄폴롱고 고개(1,845m)가 있으며,

동서로는 포르도이(2,203m)·팔차레고(2,071m)·트레크로치(1,780m)·셀라(2,221m)·가르데나(2,087m) 등 잘 알려진 고개가 있다.

관광·등산 중심지로는 코르티나담페초가 있고, 아우론초, 산마르티노디카스트로차, 협궤철로가 있는 오르티세이 등의 휴양지가 있다.

주변의 주요 도시로는 볼차노벨루노가 있다.

1860∼1870년대에 영국 산악인들이 최초로 주요 고봉들을 정복하였다.

돌로미티케산맥 본문 이미지 1 

[네이버 지식백과] 돌로미티케산맥 [Dolomitiche Mts.]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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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인 듯, 아닌 듯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의 향기 볼차노

 

돌로미테 알프스 산맥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볼차노는

독일,오스트레일리아와도 가까와

이탈리아 임에도 동유럽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소도시다.

길게 와이너리가 펼쳐져 있으며 멀리서 보이는 돌로미티 산악은 이 지역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볼차노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03302&cid=40942&categoryId=34083

독일명은 보첸(Bozen)이다.

트렌토의 북동 50km, 아디제강과 이자르코강의 합류점에 자리잡고 있다.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인 브레네르 고개에서 55km 떨어져 있으며, 이 고개를 넘는 도로와 철도교통의 요충지를 이룬다.

오스트리아의 티롤 지방이 바로 남쪽에 있어, 그곳에서 이주한 독일어계 주민이 많이 살고 있다.

7∼8세기에 바바리아 백작의 지배를 받았고, 그 후에도 지배자가 여러 번 바뀌었으나 대부분은 오스트리아령()에 속하였다가

1919년 이탈리아령이 되었다.

돌로미티 알프스에의 등산 기지로 알려져 있고, 산업으로는 제지·제강·섬유·양조 등의 여러 공업이 성하다.

높이 65m의 종루가 있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14∼15세기)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볼차노 [Bolzano]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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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을 타고 가르다 호수를 가르며 시르미오네를 감상

 

가르다 호수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01g0210a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호수

면적 370㎢. 남서쪽과 서쪽으로 롬바르디아, 동쪽과 남동쪽 끝으로 베네토, 그리고 북쪽으로 트렌티노알토와 맞닿아 있다.

알프스 지역에서는 레만 호와 콘스탄츠 호 다음으로 크다. 표고 65m, 길이 54km, 폭 3.2~17.5km,

호숫가 둘레길이 123km이고 최고수심은 341m이다.

발도 산의 좁은 산마루에서 아디제 강 유역과 갈라지는 이 호수는 북쪽 끝으로 사르카 강이 흘러 들어오며

남쪽 끝으로 민초 강이 포 강을 향해 흘러나간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에 있어 북단은 좁지만 남쪽으로 갈수록 점점 넓어져

남쪽과 서쪽 해변은 거의 둥근 내포 모양을 하고 있고 초목이 무성하다.

때로 폭풍으로 변하기도 하는 바람이 오전에는 북쪽에서(sover), 오후에는 남쪽에서(ora) 불어온다.

고전작가들인 베르기우스, 호라티우스, 카룰루스는 이 호수를 베나쿠스 호라고 적고 있으나

9세기초에 샤를마뉴 대제가 가르다 시를 주(州)로 승격시킬 때 가르다 주에 속하게 되어 그 이름도 함께 변했다.

북단은 1919년까지 오스트리아에 속해 있었다. 호수 둘레에는 1931년에 완공한 큰 규모의 가르데사나 관광로(141km)가 나 있다.

북쪽이 알프스 산맥으로 막혀 있어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를 갖기 때문에 유명한 휴양지가 되었다.

남쪽과 서쪽 연안에서는 밀감·올리브·포도·월계수·서양협죽도·사이프러스·야자를 재배하며 뱀장어·잉어·송어 잡이를 하고 있다.

작은 증기선이 리바·가르냐노·데센카노델가르다·페스키에라델가르다 등의 호수 주변 주요마을을 왕복한다.

 

 

 

 

 

 

 

 

 

 

 

 

로마 황제 시절의 귀족 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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