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피해서해안의아프셰론반도남해안에 있으며,로스토프·트빌리시·바투미등지로 통하는 철도와, 바투미로 통하는 송유관의 기점이 되어 있다. 바쿠라는 지명은 페르시아어의 ‘바트쿠베’ 즉 ‘산바람이 심하게 부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공업은석유정제·석유화학·황산·소다·아세틸렌·합성고무·석유굴착기·석유플랜트시설·전동기·조선·정면(精綿)·메리야스·합성섬유·공업약품·피혁·식품·담배 등 다양하게 이루어진다.항만은 현대식 시설과 화물수송량을 자랑하며, 시가지는 해안에서부터 배후의 바쿠 구릉에 걸쳐서 전개되어 있다. 구릉 경사면에는 잘 정돈된 도로와 위압적인 건물들이 늘어서고 해안에는 아름다운 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전력수요의 태반은 몇 개의 가스터빈 발전소와 부수적으로 밍게차우르댐으로부터의 송전에 의존하고 있다.
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중세에는 아제르바이잔인(人)의 교역도시로서 번영하였으며, 요새(13세기), 시르반샤 궁전(15세기) 등이 남아 있다. 18세기에는 바쿠칸의 거성(居城)이 되었으며, 1806년에 러시아에 병합되었다. 1920년 9월에는 볼셰비키 국제공산당(CommunistInternational)대회가 바쿠에서 열렸는데 중동피압박민족대회라는 이름으로 열렸으며 이 대회를 통해 공산주의의 국제적 확대를 시도했다. 19세기 후반부터 바쿠 유전에 외국자본이 투입되고 개발이 시작되자 인구가 급격히 늘어났으며(1997년:11만 2천), 1989년 소련 붕괴에 앞서 주권을 선언한 신생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교육기관으로는 종합대학과 8개의 단과대학 및 고등전문학교가 있으며, 그 밖에 과학 아카데미·니자미 극장·니자미 박물관·민족역사박물관 등이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 내 올드 시티에 있는 고대 탑으로, 12세기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어명
MaidenTower
바쿠의 옛 도시 남동쪽에 있는 탑이다. 둥근 타원형 모양으로, 12세기 바쿠 성곽도시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고 추정된다. 조로아스터교도들,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 아랍인들, 페르시아인들, 터키인들, 러시아인들 사이에 문화적인 관련성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역사적인 탑이다. 15세기에 주조된 쉬르반샤 궁전[Shirvanshahs'Palace]과 함께 2001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역사 유적지 목록[UNESCOWorldHeritageListofHistoricalMonuments]에 등재되었으며, 아제르바이잔의 화폐 마나트와 공식 문서의 도안에 사용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어로 ‘퀴즈 콸라시(QızQalası)’,지역민들 사이에서는 ‘기즈 갈라시(GizGalasi)’로도 불린다.
지명 유래에는 바쿠 왕[KhanofBaku]의 딸 메이든이 이곳 꼭대기에서 강물로 투신했다는 설과 바쿠 왕에 의해 감금당했던 그의 여동생이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탑 꼭대기에서 투신자살했다는 설, 이 탑을 무력으로 정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성역(聖域)이라는 의미이자 처녀성[virginity]의 은유적 영어표현인 ‘메이든’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이 있다. 첫 번째 설이 유력하다. 세 번째 설과 관련해 ‘처녀성’ 혹은 ‘소녀의 탑’으로도 불린다.
탑의 용도에 관련해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천문 관측소의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주장과 각 층마다 목재 버팀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진에 대비해 지어졌다는 주장 등 다양하다.
탑은 단단한 바위로 만든 직경 16.5m,높이 29.5m의 8층 원통형의 석탑이다. 아랍, 페르시아, 오토만 제국의 건축양식을 혼합한 형태로 지어졌다. 새 부리모양으로 된 지지벽은 현재 석조 원통형으로 되어 있으나, 원래는 정사각형 모양이었다. 탑의 외부와 내부, 꼭대기와 바닥의 석조를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절단한 것이 특징이다. 벽의 두께는 5m에서부터 3.2m-4.2m 등 크기가 다양하며, 탑의 일부분에 원래 사용했던 표면 마감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탑 내부는 2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탑 2층에서 발굴된 직경 0.7m,깊이 21m의 우물은 빗물 저장고로, 가뭄대비를 위해 건설되었다. 탑 꼭대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우물로 연결해주는 직경 30cm의 도자기 파이프는 고대 배관시스템의 원형으로 일컬어진다. 배관시스템 내에 있는 도자기와 이 속에 축척된 흙들 또한 탑의 건립시기에 대한 근거자료로서 활용되고 있다. 2층부터 7층까지의 각 층에는 직경 20-25cm,두께 2.2cm,길이 40-45cm의 도자기로 끼워진 반원모양의 배수로가 있으며, 이 배수로들은 석회 모르타르로 연결되어 있다.
꼭대기에서 올드 시티의 후미진 골목과 첨탑, 국립공원인 바쿠 불리바드(BakuBoulevard), 드골[DeGaulle] 하우스, 바쿠만(灣)의 전경을 볼 수 있다.
1806년 러시아 통치기간에도 잘 보존되었으나, 최근 일부 복구과정에서 원래 모습인 거대한 돌기둥의 형태를 잃어가고 있다. 2000년 11월 지진과 아제르바이잔 당국의 무계획적인 보존정책으로 인해 유네스코가 이곳을 ‘위험에 처한 세계 유산 목록[ListofWorldHeritagesitesinDanger]’으로 지정했다.
탑은 딸과 사랑에 빠진 왕에 대한 전설과 그 딸의 자살이야기로 아제르바이잔 시와 연극의 주제가 되었다. 1940년에는 ‘메이든 탑’을 주제로 한 발레 공연이 바쿠 오페라 극장과 발레 극장에서 각색 공연되기도 했다. 요새 안에는 바쿠 시(市)의 역사적인 발달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박물관과 기념품 가게가 있다.
인구 :1,005만명(2019년, 아제르바이잔인 92%, 러시아인 1.3%, 레즈기인 2%)
면적 :86,600㎢ (한반도의 40%)
위치 :카스피해연안, 러시아ㆍ이란ㆍ터키ㆍ아르메니아ㆍ조지아와 접경
기후 :건조(중서부), 아열대(남부), 대륙성(북부)
언어 :아제르바이잔어(러시아어 통용)
종교 :이슬람교 96%(시아파 85%, 수니파 15%), 러시아정교(2.5%) 등
아제르바이잔의 역사
아제르바이잔의 인간 거주 역사는 대단히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BC7~8세기에는 메디아왕국의 일부였으며,BC6세기에는 페르시아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BC4세기 마케도니아의 아트로파테스에 의하여 아제르바이잔 최초의 독립국가가 세워졌다. 아트로파테스로부터 아제르바이잔이란 명칭이 유래되었다. 3세기에 페르시아의 사산왕조 지배 하에 들어갔으나, 7세기부터는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1세기에는 셀주크투르크에게 정복되고, 13세기에몽골의 침입을 받았다.
16세기 초 이후 페르시아의 지배 하에 있었으나 오스만투르크인(人)의 침입이 잦았다. 1728년 콘스탄티노플조약에 의해 오스만투르크제국의 통치가 인정되었으나 1735년부터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1805년 일부 지역이 러시아의 보호령이 되었다. 1828년 투르크만차이조약에 의해 러시아령과 페르시아령으로 분리되었다. 19세기 후반 석유가 발견되어 1900년에는 세계적인 산유국이 되었으며, 많은 러시아인이 이주하였다.
1917년 11월 공산혁명 후 볼셰비키의 지배 하에 있었으나, 1918년 민족정부가 득세하여간자를 수도로 정하고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후 2년 동안 연합군에 의해 점거되었으나 1920년 4월 붉은 군대의 침공을 받았으며 소비에트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22년 12월 트랜스캅카스소비에트연방 사회주의공화국의 일원이며 동시에 구소련을 구성하는 공화국이 되었으나, 1936년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으로 분리되었다. 1989~1992년 동안 아르메니아인이 많이 거주하는 나고르노-카라바 지역에서 일어난 대량학살 및 아르메니아와의 무력 충돌은 심각한 정치·국제문제가 되었다. 1990년 9월 주권 선언에 이어, 12월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으로 개칭하였으며 1991년 10월 공식적으로 독립하였다.
국민투표가 실시되어 대통령 지지파가 승리하면서 정국이 안정되었다. 1998년 10월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 헤이다르 알리예프(HaydarAliyev)가 재선되었다. 알리예프는 1993년 집권하여 구소련 시절부터 국가보안위원회(KGB) 비밀경찰과 공산당 제1서기장, 국회의장을 거쳐 실질적으로 아제르바이잔을 30년 동안 통치해 온 철권 통치자이다. 2003년 10월 아들인 일함 알리예프가 후기 대통령이 되었으며, 아버지인 헤이다르 알리예프는 12월 12일 사망하였다.
14,470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공동체로, 고부스탄 암각화와 진흙화산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석기시대와 청동기 시대에 사람이 거주했던 세계최고의 유적지이다.
원어명
Gobustan
바쿠 남쪽 65km지점에 있는 사막건조기후의사암(沙巖)지대로, 기원전 8세기 전 선사시대 사람들이 거주했던 지역이다. 기원전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암각화와 매장되어 있는 가스로 인해 진흙이 분출하는 진흙화산이 대표적 명소다. 석유, 천연가스 등의 자원이 풍부하며, 지명은 돌을 뜻하는 고부[gobi]와 땅을 뜻하는 스탄[stan]이 합성된 ‘바위지역’에서 유래했다. 현재는 지진과 바람에 의한 풍식작용으로 일부 훼손되어 있다.
고부스탄 주립 보호구에는 약 5천 년에서 2만 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약 6,200여점 의 암각화가 있다. 이 암각화는 당시 사람들이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며 새긴 것으로, 수렵 및 채취를 하는 그림, 전쟁 장면, 낙타, 사슴, 소 등과 같은 동물, 10명이 손을 잡고 춤추는 그림(얄리얄리 춤), 황소싸움 장면, 무장한 사람이 배를 타고 노를 젓고 있는 장면, 창을 쥐고 있는 전사(戰士), 낙타, 해와 별 등이 그려져 있다. 암각화 보존을 위해 암각화마다 번호가 부여되어 있다. 49번 암각화가 가장 대표적이다.
그 밖에 75년경에 로마황제 도미티아누스[Domitian]가 통치하던 당시 로마의 병사들이 이곳을 통과하며 바위에 새긴 글과 그들이 지나간 다리가 있다.
오일과 가스가 함유된 진회색의 진흙화산도 유명하다. 분출된 진흙의 기포가 터지면 가스냄새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외에도 이 지역 마라자(Maraza) 근처에는 1402년 건립된 디리바바(DiriBaba)의 묘가 있다. 디리바바는 이란의 이슬람 수피파 성자로, 그가 행한 기적으로 인해 ‘살아있는 할아버지[LivingGrandfather]’로 불린다.
고부스탄의 암각화는 200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부스탄 주립 보호구[TheGobustanStateReserve]로 지정되어 있다.
영어로는 코카서스(Caucasus)·코카시아라고도 한다. 동쪽으로 카스피해(海), 서쪽으로는 흑해와 아조프해(海)를 경계로 한 지협상(地峽狀)의 지방이다. 캅카스 산계는 카스피해 남서해안의 아프셰론 반도에서 흑해 북동해안인 쿠반강(江) 어귀까지 약 1,200㎞ 정도 뻗어 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엘브루스산(5,633m)를 비롯하여 디흐타우산(5,204m), 슈하라산(5,068m), 코슈탄타우산(5,144m), 카스벡산(5,037m) 등이 캅카스 산계에 속해 있다. 이 산맥의 북부지방은 프레트카프카지에, 남부지방은 자카프카지에라고 하는데,화강암과수정암석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2,000여 개의 빙하가 있다. 남북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으나, 대개 북쪽은 러시아 연방의 마니치강(江)·쿠마강 지구대(地溝帶)를, 남쪽은 터키·이란과의국경을 경계로 삼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국경 너머 지역까지도 포함한다. 전자(前者)를 기준으로 했을 때의 면적은 약 44만㎢이다.
수력자원이 풍부하며, 쿠라강(江)·리오니강(江)·아락스강(江) 등과 세반호(湖)가 있다.석탄·철광석·몰리브덴·납·아연·망간·구리등 광물자원이 풍부하며,석유가 아제르바이잔과 크라스노다르·스타브로폴 지역에서 개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