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다 가는 길 주변의 대추 야자 농장

 

 

 

 

 

 

 

 

 

맛사다

 

 

마사다 유적[ Masada , ─遺蹟 ]

요약
이스라엘의 사해(死海) 해안에 있는 배 모양의 구릉(丘陵)을 이용한 자연 요새지로 이스라엘 왕국의 파멸, 이스라엘 민족과 로마군과의 전쟁과 관련된 상징물이다. 곳곳에 공격 램프와 같은 로마 포위 흔적이 남아 있다.
 
  • 지정일

    2001년

  • 분류

    문화

  • 테마분류

    도시역사지구

  • 소재지

    Tamar Region

  • 좌표

    N31 18 48.6 E35 21 09.9

장엄하고 아름다운 최후의 항전지

메마른 황야를 배경으로 우뚝 솟은 바위 산 위에서 사해(死海)를 내려다보고 있는 마사다 유적지는 장엄하고 아름답다.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인데 꼭대기는 평평한 메사(mesa) 지형 위에 자리잡아 ‘천혜(天惠)의 요새’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하지만 난공불락일 것 같은 천연 요새도 세계를 제패했던 로마 군대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곳은 AD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뒤 유대 저항군들이 마지막까지 로마군에 항전했던 곳이다.

풍부한 물과 곡식을 갖춘 이들은 2년이 넘게 로마군의 포위공격을 견뎌냈으나,

공격용 경사로를 타고 진격해오는 로마군에 의해 요새가 함락되기 직전 집단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유대전쟁사>에 따르면

당시 자결한 유대인의 수는 967명이다. 이는 다윗이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한 뒤로 1000년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 왕국이 사라지고,

이후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게 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을 비감하게 장식한 사건이었다.

이스라엘의 자존심이자 긍지가 되다

이런 이유로 구체적인 장소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오래 전부터 마사다 항전은 이스라엘 민족의 자존심이자 긍지요,

저항정신의 상징이 되었고, 20세기 중반 현장이 발굴된 뒤에는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해발고도 434m인 마사다 유적지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배(船) 모양을 하고 있으며,

평균 너비 120m, 길이 620m, 둘레 1,300m이다. 기원전 2세기경 하스몬가(家)의 지배자가 이곳에 최초로 요새를 만들었고,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이 기원전 35년에 개축하였다.

20세 중반에야 발굴된 마사다 유적지(아랍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곳을 ‘저주받은 땅’이라고 불렀다)에는

주로 헤롯 대왕 시대에 만들어진 각종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로마 초기 양식으로 호화롭게 지어진 왕궁(2채)은 물론 행정청사, 목욕탕, 곡물창고, 성곽과 망루 등이 놀라울 정도로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75만ℓ나 되는 물을 저장하는 물 탱크에 연결된 수로(水路)와 귀중한 파피루스 문서의 단편(斷片)도 발굴되었다.

더구나 로마군이 당시 최고 수준의 기술을 동원해 만든 공격용 경사로가 그대로 남아 있어

기록에서만 보던 로마 포위 공격의 전형적인 형태를 짐작하게 해준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사다 유적 [Masada, ─遺蹟] (두산백과)

 

 

 

 

 

 

 

 

 

 

 

 

 

 

 

 

 

 

 

 

 

 

 

 

 

 

마사다 [ Masada ]

  • 대륙

    아시아

  • 위치

    이스라엘>마사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001년

  • 저자

    엘리자베스 팜버그

유태인 역사 속에서 가장 극적인 에피소드 중 하나를 상징하는 곳

사해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고원에 위치하고 있는 마사다는 기원전 37년 유대의 헤롯 대왕이 지은 요새화된 궁전이다.

헤롯이 죽은 이후 로마 주둔군이 마사다를 차지했으나,

이곳은 로마 통치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66년에 예루살렘에서 도망쳐 온 유태인 열심당원('시카리')의 피난처가 되었다.

73년, 유태인 반란 최후의 보루인 마사다를 점령하기 위해 로마 제10군단이 파견되었으며,

그 결과 900명 이상의 열심당원들이 죽었다. 이들은 항복을 앞두고 집단 자살을 택했던 것이다.

사해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마사다는 고원의 서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이 고원의 길이는 304m, 가장 넓은 곳의 너비가 608m로, 해발 고도 396m의 높이로 솟아 있다.

절벽 위를 내려다보고 서 있는 이 궁전은 사해와 유대 사막이 보이는 훌륭한 경치를 지니고 있다.

헤롯 대왕이 산꼭대기 서쪽 면에 자신의 궁전을 짓기 시작했을 때, 이곳에는 이미 기원전 100년에 지어진 건물이 있었다.

마사다는 호화로운 저택으로, 암반 북쪽 끝에는 높이가 낮아지는 세 개의 테라스가 있었고,

로마 양식의 목욕탕, 창고, 주택, 방어탑이 있는 성벽, 그리고 시나고그(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가 있었다.

헤롯의 가장 뛰어난 건축 계획은 요새에서 필요한 물을 댈 수 있도록 지은 진보적인 물 공급 체계였다.

각각의 용적이 4,000㎡인 열두 개의 저수지가 바위 속에 파여 있다.

오늘날 마사다는 인기 있는 관광 명소이다.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교에서 1960년대 초에 이 지역에서 발굴 작업을 행했다.

마사다 궁전은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성소이며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사다 [Masada]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2009.1.20, 마로니에북스)

 

 

 

 

 

 

 

 

 

 

 

 

 

 

 

 

 

 

 

 

 

식량으로 사용 한 비둘기 집

 

 

 

 

 

 

 

 

 

 

 

 

 

 

 

 

로마군이 마사다를 함락하려 쌓아 올렸던 흙 언덕

 

 

 

 

 

 

 

 

 

 

 

 

 

 

 

 

 

내려오면서 나의 느낌은

"우리 이스라엘 사람들 이런 사람이다. 건들 지 마라."는 소리가 귀에서 맹맹 거렸고

그 협박을 들으러 돈을 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우리 민족이 이스라엘 사람 정도의 정신력으로 무장하면

그들과 맛짱 떠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어 동행인에게 얘기 했더니

"전라도 사람들 처럼 화끈 하면 된다." 하신다.

얼핏 듣기는 거북 했지만 말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스트샷

 

http://landart.tistory.com/888

Posted by landart
,

문무대왕능(대왕능) 

 

 

 

 

 

주상절리

 

 

 

 

 

 

 

 

안압지

 

 

 

 

 

 

석굴암

 

 

 

 

 

 

불국사

 

 

 

 

 

 

 

 

 

 

부산 광안대교

 

 

 

Posted by landart
,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국경 알렌비 통과

요란한 검문 검색에 입국 조차가 쉽지 않았다.

 

 

 

 

 

사해 수영 체험장

 

 

사해 [ Dead Sea , 死海 ]

요약
이스라엘과 요르단에 걸쳐 있는 염호(鹽湖)이다. 요르단 강이 흘러드나, 물이 빠져나가는 곳은 없고 유입량과 같은 량의 증발이 일어난다. 염분은 표면에서 해수의 5배인 200‰정도로 생물이 살지 못하여 사해라는 이름이 붙었다.
 

표면 면적 810㎢. 최대깊이 378m, 평균깊이 118m. 대함몰지구대에 있기 때문에, 호면은 해면보다 395m 낮아 지표상의 최저점을 기록한다. 이스라엘요르단에 걸쳐 있으며 북으로부터 요르단강이 흘러들지만, 호수의 유출구는 없다. 이 지방은 건조기후이기 때문에 유입수량과 거의 동량의 수분이 증발하여 염분농도가 극히 높아 표면수에서 200‰(해수의 약 5배), 저층수에서는 300‰이다. 따라서 하구 근처 외에는 생물이 거의 살지 않으며, 사해라는 이름도 이에 연유한다.

예로부터 높은 염분 때문에 사람 몸이 뜨기 쉬운 것으로 유명하다. 또 이 해수에는 유용광물이 함유되어 있으며, 특히 브롬의 함유량이 많아 보통 해수의 100배나 된다. 그 보급원은 갈릴리호(湖)의 바닥에 있는 지하온천일 것으로 생각되며, 이것이 요르단강에 의해 사해로 운반된다고 한다. 또 브롬의 기원을 고대의 달팽이 퇴적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사해 주변은 고대문명, 특히 초대 그리스도교가 발생·발전한 곳으로 유명하며 구약성서에서도 사해가 ‘소금의 바다(Yam ha-Melah)’ 등의 이름으로 종종 나온다. 서안(西岸)에는 1947년 이후 ‘사해사본(死海寫本)’이 발견된 쿰란 동굴과 로마군이 멸망시킨 유대인의 마사다 성채 유적 등이 있다. 칼리야와 남단의 소돔 등지에서는 호숫물의 염분에서 염화칼륨·브롬 등을 생산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해 [Dead Sea, 死海] (두산백과)

 

 

 

 

 

사해

(Dead Sea)

서(西)아시아 요르단과 이스라엘 국경에 있는 염호(鹽湖). 면적 1,020, 동서 15km, 남북 80km로 호수의 모양은 길쭉하다.

지중해 연안에서 약 100km 내륙의 요르단 지구대 남부에 위치한다.

아프리카 대지구대(大地溝帶)의 일부를 구성하기 때문에 호면은 해면하 396m로 지구상의 최저지점을 이루며, 최대수심은 399m, 평균수심은 146m이다.

요르단강이 흘러들지만 호수의 유출구는 없고, 건조기후하에 있기 때문에 유입수량(流入水量)과 거의 같은 양의 수분이 증발한다.

그 때문에 염분함유율이 높아 표면수에서 20%(해수의 약 5배), 저층수에서는 30%이다.

따라서 생물이 생존하지 못하며, 사해라는 이름도 이에 연유한다.

또한 염분농도가 높기 때문에 인체가 가라앉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호수의 염분에는 여러 유용광물이 내포되어 이스라엘에서는 그 채취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북단의 카리아, 남단의 소돔 등에 채취공장이 있으며, 칼륨·취소(臭素)·소금 등이 산출되고 있다.

주변지역에서는 천연 가스의 개발도 진척되고 있다.

사해의 연안지대는 고대문명이 발전한 곳으로〈구약성서〉에도 사해는「소금의 바다」「아라바의 바다」등의 이름으로 등장하며, 신께서 고모라에 유황불로 심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서안에는「사해문서(死海文書)」가 발견된 쿰란 동굴과 로마군에 멸망된 유태인의 마사다 성체 유적 등이 있다.

 

 

 

 

 

사해 [ 死海 ]

 

 

사해 문서사해 문서 원본의 일부이다. 사해 문서는 고대 언어인 히브리어와 아람어 등으로 쓰여 있다.

어차피 죽은 바다인데 또 죽는다고? 사해에 유입되는 수량이 갈수록 줄어들어 1년에 평균 80센티미터 가량씩 수면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비율로 낮아진다면 얼마 안 가 사해는 바다는커녕 소금밭으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고 있다.

사해(死海)라! 죽어 있는 바다란 말인가, 아니면 죽이는 바다란 말인가? 둘 다 맞다. 그러니까 명실상부하게 사해요, 영어로도 데드 시(Dead Sea, 죽은 바다)인 셈이다. 이런 무서운 명칭이 붙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경에 위치한 사해는 엄밀히 말하면 바다가 아니라 호수다. 그러나 예로부터 사해라는 명칭을 써 왔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그런데 사해는 수면이 해수면에 비해 약 400미터 정도 낮다. 수면의 높이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지만 여하튼 해수면에 비해 너무 낮은 까닭에 주위에서 유입되는 물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특히 세계에서 수면이 가장 낮은 요르단 강으로부터 유황과 질산 성분을 함유한 수백만 톤의 물이 날마다 이곳으로 들어오는데, 당연히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는 못한다. 따라서 사해에서는 수분이 증발될 뿐 수분 가운데 함유되어 있던 염분 등은 고스란히 이곳에 남게 된다. 이렇게 유입되는 양에 비해 더 많은 양이 증발함으로써 수면은 점차 낮아졌고, 수백만 년 동안 지속된 이런 상황으로 인해 사해의 크기는 줄어들었고, 퇴적층의 두께는 점차 두꺼워졌다.

오늘날 사해의 염분 농도는 약 26~33퍼센트 정도로, 다른 해수의 평균 농도 5퍼센트에 비해 여섯 배가 넘는다. 따라서 특수한 염생식물과 세균을 제외한 어떤 생물체도 살 수 없는 죽음의 호수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이로울 때도 있으니, 피부병을 구성하는 세균들도 이 물속에서는 살기가 힘들어 세계적인 피부병 치료 장소로도 이름이 높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 사해는 자원의 보고로도 한몫 톡톡히 하는데, 이곳에서 산출되는 브롬이 세계 생산량의 1/4 정도에 달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해 주변의 검은 진흙이 미용 효과가 뛰어나다고 알려지면서 이를 이용한 화장품 공장이 설립되기도 했다. 한편 염분의 밀도가 너무 높아 사람이 팔을 젓지 않아도 그냥 물에 떠 있을 수 있어 사해에 가면 누구라도 수영 선수가 될 수 있다.

사해는 역사적으로도 유명하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이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고 전해지는 만큼 사람들은 두 도시가 사해 어느 곳에 수몰되어 있다고 여기고 있다. 언젠가 두 도시가 수몰될 당시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발굴되어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줄지도 모르겠다.

한편 ‘사해 문서’라고도 부르는 고대 필사본 사해두루마리가 사해 주변 동굴에서 발견되어 그 시대의 역사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다. 양피지 또는 파피루스에 기록된 사해두루마리는 팔레스타인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와 유대교에 대해서도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1947년 양 치던 아랍 베두인족 청년들이 사해 북서쪽의 키르바트 쿰란(Khirbat Qumran) 동굴에서 발견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 후에도 그 부근에서 많은 두루마리가 발견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현존하는 성서를 구성하는 내용과 함께 신빙성에 의심이 가는 내용도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들어 사해에 대해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다름 아닌 사해가 죽어가고 있다는데···. 어차피 죽은 바다인데 또 죽는다고? 사해에 유입되는 수량이 갈수록 줄어들어 1년에 평균 80센티미터 가량씩 수면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50년 전에 비해 20미터 이상 낮아진 수면이 현재와 같은 비율로 낮아진다면 얼마 안 가 사해는 바다는커녕 소금밭으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이스라엘과 요르단과 세계은행 등에서는 사해로 유입되는 수량을 늘리기 위해 이념과 민족간 적대감까지 옆으로 밀어둔 채 협력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해 [死海] (세상의 모든 지식, 2007.6.25, 서해문집)

 

 

 

 

 

 

 

 

 

 

 

 

 

 

 

베스트 샷

 

http://landart.tistory.com/885

Posted by landart
,

 

   왕의 대로에 위치한 카락성은 전략적인 요충지역이다. 993m의 해발과 협곡 사이에 위치해 있다.

  성은 십자군 성과 유럽,비잔틴,아랍 식의 혼합된 건축물의 주목할 만한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 '아라비아늬 로렌스'의 로렌스는 1909년 학술여행을 하면서 이성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이곳에 여러 날 머물면서 터널과 지하 감옥을 탐험하고 성의 모습을 그림에 담기도 했다.

  성의 정상으로 올라 가면 사해와 왕의 대로를 비롯한 멋진 정경을 조망할 수 있다.

 

 

 

 

 

 

 

 

 

 

 

 

 

 

 

 

 

 

 

 

 

 

 

 

 

 

 

 

 

 

 

 

 

 

 

 

 

 

 

 

 

 

 

 

 

 

 

 

 

 

 

 

 

 

 

 

 

 

 

 

 

 

 

암만 호텔 입구의 바리케이트

주차장 출구쪽으로 진입은 절대로 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직도 중동의 살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베스트

 

http://landart.tistory.com/880

Posted by landart
,

 

 

 

와디 럼 [ Wadi Rum ]

요약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남쪽으로 320km지점에 위치한 사막지대이며 곳곳에 거대한 바위산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2011년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와디(Wadi)는 아랍어로서 비가 오는 겨울에는 강이 되지만 비가 내리지 않는 우기에는 마른 계곡이나 땅이 되어 버리는 곳을 말한다. 와디 럼(Wadi Rum)은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에서 남쪽으로 320km지점에 위치한 곳인데 1998년에는 요르단 정부에 의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총 720평방km의 넓은 지역이며 약 3억 년전 지각 작용으로 이루어진 곳이며 아래층에 화강암층이 있고 그 위에 석회암 그리고 가장 상부에 사암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은 해발 1745m의 럼 마운틴(Rum mountain)이며 평지로 보이는 곳도 해발 1000m정도이다. 와디 럼은 오래전부터 아라비아 상인들의 교역로 역할을 하였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올라 오는 카라반(대상)들이 시리아레바논이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였고 당시에 이들이 남겨 놓은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뿐 아니라 선사시대에도 유목민들이 이곳을 통과하면서 남겨 놓은 암벽화 등을 여기 저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와디 럼은 1916년부터 아랍 지역에서 활동했던 아라비아의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가 이곳을 통과하여 요르단 최 남단의 아카바 항구를 점령하는 장명이 나오는 아라비아 로렌스 영화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와디 럼을 찾는 여행객들에게는 트레킹이나 암벽 등반 또는 낙타나 자동차를 이용한 사막투어 등을 즐길 수 있고 베두윈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베두윈식의 식사와 밸리 댄스 및 아랍전통 음악 연주와 노래도 즐길 수 있다. 트레킹이나 암벽등반의 경우는 반드시 현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행동해야 안전하다. 이 지역은 자연 보호구역일 뿐 아니라 베두윈들이 생활을 하고 있는 터전이기 때문이다.

와디 럼을 찾는 한국관광객들은 일반적으로 2시간 코스의 짚 투어를 즐기는데 6명이 탈 수 있으며 3곳을 정차한다. 처음 정차하는 곳은 로렌스가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는 산 중턱에 있는 로렌스의 샘이며 현재도 물이 나오고 있다. 그 아래 평지에는 선사시대 유목민들이나 카라반들이 남겨 놓았다는 암벽화(사실은 기호나 글자)가 있는 거대한 바위가 있다. 두번째 정차하는 장소는 알가잘리로 알려져 있는 계곡인데 일반인들은 계곡입구에서 100여미터 정도를 들어 갈 수 있다. 들어 가는 좌우 바위벽에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그려 놓은 암벽화가 여기 저기 있으며 계곡안쪽에는 위에서 떨어지는 물에 의해 파여진 바위로 만들어진 웅덩이들이 있어 오랜세월동안 흘러내린 물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차하는 곳은 알가잘리 계곡에서 그리 멀지 않아 보이는 곳에 위치한 모래 언덕이다. 이 곳은 멀리서 또는 바로 밑에 가서 보더라도 별로 높아 보이지 않지만 모래언덕이기 때문에 오르기는 상당히 힘들다. 특히 봄, 여름, 가을철에는 오전 10시만 되어도 모래가 달구어져 맨발로 올라가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뜨겁고 화상을 입을 위험도 있다. 반면에 겨울에는 너무 차가워서 맨발로 올라 가는 것이 곤란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와디 럼 [Wadi Rum] (두산백과)

 

 

 

 

 

 

아라비아의 로렌스 [ Lawrence of Arabia ]

요약
아랍 민족운동의 원조자인 영국군 장교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의 일생을 그린 작품.
  • 제작년도

    1962년

  • 감독

    데이비드 린(David Lean)

  • 각본

    로버트 볼트(Robert Bolt)

  • 출연

    피터 오툴(Peter O'Toole), 알렉 기네스(Alec Guinness), 클라우드 레인 (Claude Rains), 앤터니 퀸(Anthony Quinn)

  • 상영시간

    216분

  • 제작사

    미국 컬럼비아 영화사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8년 수에즈 운하를 둘러싸고 영국과 터키가 대치하고 있을 때 영국은 아랍의 참전 및 지원을 요구하기 위해 정보국 소속의 로렌스(피터 오툴)를 아랍에 파견한다.

로렌스는 자국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아랍 지도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싸워 분열된 아랍군을 통합하고 드디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여 아랍 민족으로부터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웅적인 칭호를 받게 된다. 그런데 아랍 민족의 독립을 논의할 시점이 서서히 다가오자 열강국들은 아랍의 분할통치 음모를 기도한다.

이에 로렌스는 영국에 항의하고 아랍 민족에게도 단결을 호소하지만 소용없다. 영국의 소환 명령을 받고 런던으로 돌아가지만 중동으로 다시 보내줄 것을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중동 문제는 이미 정치적으로 타결된 이후이므로 로렌스가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드디어 로렌스는 오토바이를 광적으로 몰다 교통사고로 죽는다.

주인공 로렌스는 열강국 출신답지 않게 약소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낭만적인 직업 군인이라고 볼 수 있고, 사막에서 아랍 낙오병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는 면이 있지만 적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영화사상 '생각하는 인간 서사시'라고 평가받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70mm 화면에 담은 광활한 사막은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모리스 자르와 런던 필하모니 교향악단이 연주한 음악은 고독한 영웅 로렌스의 심정과 유목민의 변화무상한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로렌스 역을 맡은 피터 오툴은 비록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지 못했지만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1963년 제3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촬영, 편집, 미술, 음악, 녹음 등 7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라비아의 로렌스 [Lawrence of Arabia] (두산백과)

 

오아시스-로렌스의 샘

 

 

 

 

 

 

 

와디 럼 보호구역 [ Wadi Rum Protected Area ]

요약
자연 및 문화 복합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이 74,000㏊인 이 유산은 사우디아라비아(Saudi Arabia) 접경의 요르단(Jordan) 남부에 있다.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좁은 협곡(gorge), 자연적으로 생긴 아치형 지형, 우뚝 솟아오른 절벽, 비탈면, 대규모 경사면 붕괴(landslide), 동굴 등 다양한 사막 경관을 보여 준다. 암각화(Petroglyph)와 비문(inscription) 그리고 여러 고고학적 유산들은 약 12,000년 동안 인간이 이곳에서 거주하며 자연 환경과 상호 작용하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20,000여 점에 이르는 비문과 25,000여 점의 암각화를 통해 인류 사상의 진화와 초기 문자의 발전을 짐작할 수 있다. 유산은 이 지역의 목축, 농경, 도시 활동의 발전 과정을 뚜렷이 보여 준다.
  • 국가

    요르단(Jordan)

  • 좌표

    N29 38 23, E35 26 2

  • 등재연도

    2011년

  • 등재기준

    (ⅲ), (ⅴ), (ⅶ) *참고: 세계유산 등재기준

  • 유산면적

    74,180㏊

  • 완충지역

    59,177㏊

탁월한 보편적 가치

와디 럼 보호구역(Wadi Rum Protected Area, WRPA)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경과 가까운 요르단 남부에 있다. 위치상으로 암만(Amman)에서 약 290㎞ 남쪽, 해안 도시 아카바(Aqaba)에서 약 60㎞ 정도 북동쪽에 해당하는 와디 럼 보호구역은 총면적이 74,200㏊에 달한다. 유산의 범위는 남북으로 약 42㎞, 동서로 약 33㎞ 지점까지 펼쳐져 있다. 일부 제외된 지역을 포함하여 너비 약 5㎞, 총면적 60,000㏊의 완충지역이 유산을 둘러싸고 있다.

와디 럼은 요르단 지구대(地溝帶, Rift Valley) 동쪽, 중앙 요르단 고원의 가파른 경사면 남쪽에 있는 힘사(Hisma) 사막 안쪽의 주요 특징을 나타낸다. 이곳의 자연적 가치는 대륙성 사암(sandstone) 지대에 발달한 사막 지형을 포함하고 있다. 수백만 년 동안 계속된 풍경의 진화를 나타내는 이 지형은 암석의 구조와 급격한 융기, 수많은 단층(fault)과 절리(joint)를 포함한 지각 활동, 그리고 과거의 습윤 기후(humid climate)를 비롯하여 사막 기후와 연관된 풍화 작용(weathering)과 침식 작용(erosion)을 포함한 지형 형성 과정 등과 같이 복합적이고 다양한 지배적 요인의 영향 아래 발전했다.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암각화와 비문 그리고 여러 고고학적 유산들은 약 12,000년 전에 인간이 이곳에 거주하며 자연 환경과 상호 작용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이 유산은 아라비아 반도(Arabian Peninsula)와 이 지역에서 발전한 목축, 농경, 도시 활동의 모습을 보여 준다.

완전성

이 유산은 중요한 문화적·자연적 특성들을 갖추고 있으며 훌륭하게 설계되어 있다. 인구 밀도가 낮고 개발로 인한 영향이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와디 럼 보호구역은 상대적으로 훼손되지 않고 온전한 상태로 보존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문객들과 차량 통행이 미치는 영향들, 그리고 럼 마을의 잠식, 지역 주민들에 의한 지하수 개발과 땔감 채집 등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위협 요소들이 많다. 유산의 경계는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으며, 유산을 둘러싸고 있는 5㎞ 너비의 완충지역은 유산 경계의 외부에서 발생하는 위협들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진정성

암면 미술(rock art)은 비바람에 의해 침식되는 풍화 작용으로 인해 일부 구별하기 힘든 것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변경되지 않고 처음 상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일부 암면 미술의 경우에는 현대적인 낙서(modern graffiti)들이 추가되었지만, 아주 많은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문화적 전통을 전달하는 당시 사람들의 능력을 파악하고 충분히 연구할 수 있다.

보존 및 관리체계

와디 럼 보호구역은 사막 지형과 생태계 및 문화적 가치가 있는 관련 유적들을 보존하기 위하여 1997년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유산은 아카바특별경제구역(Aqaba Special Economic Zone, ASEZA) 내에 있으며, 두 단계에 걸쳐 영구적인 특별규제지역(Special Regulations Area)으로 지정되었다. 1997년에 54,000㏊가 영구적인 특별규제지역으로 지정되었고 2002년에 18,000㏊가 추가로 지정되었다.

요르단 내 보호구역에 대해 관리 체제가 강력한 특별규제지역에는 유산 전체가 포함되어 있다. 와디 럼 보호구역(WRPA) 관리 및 개발에 대해 지침을 제공하는 주요 계획은, 아카바 전체 관리 방침을 규정한 아카바 특별경제구역(ASEZA) 토지 이용 계획이다. 유산은 유지 보수 작업이 필요하며, 지속적으로 갱신함으로써 관리 계획을 효과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등재기준

기준 (ⅲ) : 와디 럼 보호구역은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암각화와 비문의 특별한 증거를 간직하고 있다. 20,000여 점의 비문과 25,000여 점의 암각화가 혼재한다는 점, 그리고 적어도 12,000년 동안 그것이 지속되었다는 점으로 인해, 와디 럼은 다른 암각화나 비문 유적들보다 특별하다. 인간과 동물을 표현한 암각화는 둥근 바위나 절벽에 새겨져 있다. 이것으로 인류의 사상과 아라비아 반도에서 행해졌던 목축, 농경, 도시 활동 유형들 및 온대 습윤 기후에서 반건조(semi-arid) 기후로 변화된 이 지역의 독특한 환경사(環境史, environmental history)의 발전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암각화는 정교한 미적 감각과 회화적 문화를 보여 주고 있다. 북아라비아의 서로 다른 네 가지 문자로 된 수많은 비문들을 보면 알파벳(alphabet)이 초기에 표현 양식으로 등장하여 아라비아 반도의 목축 사회에 널리 퍼진 문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준 (ⅴ) : 와디 럼의 다양한 지형은 인간의 정착을 촉진했으며, 많은 암각화와 비문에 기록된 바와 같은 복잡한 지적 활동 발전에 핵심적인 요소였다. 수천 년 동안의 다양한 문화적 전통과 문명을 보여 주는 이 생생한 증거(암각화와 비문)는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기록 유산 중 하나이다. 청동기 시대(Bronze Age)에 기후가 건조해진 이후,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희소 자원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인간의 적응 능력과 창의력을 보여 주는 이 유산은 사막 지형에서의 정착 생활과 이동 생활의 연속적 형태를 연구하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이처럼 풍부한 정보를 간직한 자료는 세계 다른 어떤 지역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기준 (ⅶ) : 상징적인 사막 경관으로 전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와디 럼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산과 계곡, 자연적으로 생긴 아치형 지형, 좁은 협곡, 우뚝 솟아오른 절벽, 대규모 경사면 붕괴, 동굴 등 극적인 풍화 형태가 나타내는 장엄한 풍경으로 유명하다. 다양한 지형과 거대한 규모를 비롯하여 모자이크와 같은 색채, 좁은 협곡과 거대한 와디에서 볼 수 있는 멋진 전망, 거대한 규모의 절벽 등이 유산에 미적 가치를 더해 주는 핵심 요소들이다.

유산은 장엄한 벌집 모양의 풍화 지형을 비롯하여 물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지형, 염분과 생물학적 과정 및 기타 과정에 의해 심하게 풍화된 지형, 그리고 이 풍화 작용에 의해 침식된 가파른 사암 절벽 등이 한곳에 모여 독특한 경관을 보여 준다. 유산 지정 시 강조되었던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T.E. Lawrence, 영국 고고학자) 작품과의 연관성으로 인해 더욱 확실한 입지를 갖게 되었으며, 아랍 국가들 내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전형적인 사막 경관으로 명성을 높이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와디 럼 보호구역 [Wadi Rum Protected Area] (유네스코, 유네스코한국위원회(번역 감수))

 

 

 

 

 

 

 

 

 

 

 

 

 

 

알가잘리

 

 

 

 

 

 

 

 

 

 

 

 

 

 

 

 

 

 

 

 

 

 

 

 

 

 

 

 

 

 

 

 

 

 

 

 

 

 

 

 

 

 

 

 

 

 

 

 

 

 

 

 

 

 

 

 

베스트

 

http://landart.tistory.com/878

 

Posted by landart
,

 

 

여행사 프로그램으로는 온종일 페트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나름 큰 특징이었다.

그것도 간밤과 오늘밤의 숙소가 버스로 10여분 거리이니.....

6km 정도를 엄청난 더위와 함께 주파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페트라 여한은 없다.

 

 

세계의 걷고 싶은 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80&contents_id=1399

 

 

 

 

 

 

 

 

 

 

 

대신전

 

 

 

 

 

 

 

 

 

 

 

 

 

 

 

 

 

 

 

 

 

 

여기가 끝이다

돌아서 나갔다.

 

 

 

 

 

 

 

로마 열주로

 

도대체 로마의 경계는 어디까지 일까?

그들의 흔적으로 먹고 사는 나라는 도대체 몇개국일 까?

인류 역사에 그들 이상의 강국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나오면서 다시 보는 알카즈네

낙타등과 대비해 보면 그 스케일을 짐작할 수 있다.

 

 

 

 

 

 

 

 

 

 

 

호텔 앞의 모세의 샘

모세가 이용했단다.

지금도 약수터(?)로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관리 상태는 많이 아쉬웠지만

물이 귀한 나라를 생각하면 신비스러웠다,

 

베스트샷

http://landart.tistory.com/874

Posted by landar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