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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13일이 되면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죄의 회개와 로자리오의 기도를 권하였다는 유래 때문에 순례지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정부는 목동들을 체포하고 순례를 금지시켰으나 30년 레이리아의 주교가 이 사실의 신빙성을 인정하게 되면서 ‘파티마의 로자리오 성모’에 대한 숭앙은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지금은 대성당이 건립되어 해마다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아 참배한다. 큰 십자가를 꼭대기에 꽂은 높이 65m의 탑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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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독 장벽의 일부
그들의 기도가 통하기를..
나도 순간 기도 했다.
나의 기도가 이기적이지만은 않기를....
베스트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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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어로는 리스보아(Lisboa)라고 한다. 테주강(타호강)의 삼각 하구 우안(右岸)에 위치한다. 이 나라 최대의 도시이며, 유럽대륙 대서양 연안 굴지의 양항(良港)이기도 하다. 일찍이 페니키아·그리스·카르타고 시대부터 항구도시로서 알려져 왔으며, BC 205년에는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714년 이래 다시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리사보나로 불리다가, 1147년 알폰소 1세에 의해 해방되었다. 1255년 코임브라로부터 천도한 뒤 수도로서 현재까지 이르렀으며, 15∼16세기 해외진출시대에는 유럽 유수의 상공업 도시가 되었다. 1755년의 지진과 그에 따른 화재·해일로 시가지의 2/3가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역사적인 건조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동부의 알파마 지구에는 성(聖)조지성(城)이, 서부의 벨렝 지구에는 본래 성채였던 벨렝의 탑, 바스쿠 다 가마를 기념한 고딕양식의 수도원 및 아주다 궁전(현재의 외무성)·박물관 등 역사적인 건축물이 남아 있고, 1290년에 창립된 대학이 있다. 시가지는 3개 부분으로 나뉜다. 중앙부는 바이샤라고 부르는 저습지로 거의 전지역이 지진 후에 재건되어 상업·행정기관이 이곳에 집중한다. 동부는 본래 페니키아인·로마인의 거리였던 옛 시가지, 서부는 신 시가지이고 또 최근의 시가지 확장은 북부로 펼쳐 나가고 있다. 독·부두 등 항만시설은 테주강 우안을 따라 30km에 걸치고, 그 북동부에 곡물·냉장창고 및 시멘트·정유·철강·코르크제품 등 공장이 자리한다. 어항은 벨렝 서쪽에, 대서양 각지를 잇는 여객항은 시 중심부에 위치하나, 1966년에 테주강에 가로놓인 현수교(懸垂橋:2.3km)가 완공되어 강의 좌안(左岸)에도 철강·화학·조선 등 대공장이 건설되어 발전하고 있다. 유럽공동체(EC)는 1994년도의 유럽문화도시로 이곳을 지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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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니모스 수도원
벨렘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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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라바트의 동쪽 160km, 리스 산계(山系)의 남쪽 기슭에 있다. 801년 이드리스왕조의 제2대 이드리스 2세가 수도로 삼고, 마그레브에서의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후 1276년에 마리니드왕조가 새로운 페스를 건설하였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 강가의 옛 도시가 페스알발리, 왼쪽의 새로운 도시가 페스알제디드이다. 대서양 연안의 카사블랑카나 라바트에서 지중해 연안의 알제로 통하는 대상로의 요지로서 독자적인 상공업이 발달되고 있다. 857년에 창립한 이슬람신학대학과 아랍문예 중심의 알 카라윈대학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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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
메디나
냄새 한번 좋더라
베스트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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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는 ‘하얀 집’이라는 뜻으로 아랍어로는 다르엘베이다(Dar el-Beida)라고 한다. 카사블랑카는 베르베르인의 어항으로 1468년 파괴된 고대 도시 안파의 자리에 포르투갈인에 의해 건설되어, 1757년 모로코 술탄에게 점령되었다. 18세기 후반에 무역항으로서 재건되어 19세기에 유럽과 미국의 무역업자가 정착하였고, 1906년에는 무역액이 탕헤르를 앞질러 모로코 제1의 항구가 되었다. 1907년 프랑스가 점령, 1912년 이후 료티 원수(元首)의 통치하에서 근대적인 항만과 도시가 건설되었다. 아프리카 북서부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상공업의 중심지이다. 모로코 공업 생산의 90%가 이 도시와 주변에 집중되어 있고, 수도 라바트로 통하는 도로연변의 동부와 북동부는 공업지대를 이룬다. 모로코 수출입 무역의 3/4이 통과하고 국제공항이 있으며 철도·도로망의 중심지이다. 항만 근처에 ‘구(舊)메디나’라는 옛 아랍 시가가 있으며,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성벽, 미로와 같은 좁은 골목, 흰 벽의 가옥들이 바깥쪽을 둘러싸듯이 건설된 근대적인 시가(프랑스의 도시계획에 의해 건설)와 대조적인 경관을 이룬다. ‘구메디나’에는 유대인이 살며 이슬람교도인 서민들은 새 시가지의 바깥쪽에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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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2세 사원
아~ 카사블랑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곳
패키지의 특성으로 환상을 확인 할 수 없었고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허나, 아마 그때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 이름도 거창한 호텔 카사블랑카
눅눅한 냄새에 노란(?) 시트
바닥을 활보하는 벌레벌레
세수도 불편 했지만 나름 맛은 있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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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의 북동쪽, 대서양 연안의 부레그레그강(江) 하구 좌안에 있으며,
현재의 시가는 10∼11세기에 이슬람교도인 베르베르인이 이단자를 수용하기 위하여 건설한 것이 기원이다.
12세기 이래의 카스바데우다이아문(門)과 하산 사원의 첨탑 등이 남아 있다.
신시가에는 왕궁·정부청사·외국공관·유럽인 거리·라바트대학 등
모로코 독립운동 때에는 그 중심지였다.
17세기에는 해적의 근거지가 된 적도 있었으나,
그후 모로코 왕국으로서 독립했을 때에는 카사블랑카와 함께 자치도시가 되었다.
농업이 활발하여 채소와 과일을 수출하며, 근대적인 직물공업이 성하여 융단·모포 등이 생산된다.
그밖에 벽돌과 석면이 생산되고, 어류가공업도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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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헤르
유럽 스페인 타리파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40여분의 쾌속선으로 건너 아프리카 모로코 탕헤르에 왔다.
좋은 세상이라는 느낌과 함께 세상 참 불공평 하구나 하는 생각이 함께 들게 하는 아프리카.
동시대의 인류로서 삶의 질이 너무도 다르니...
하기에 지멋에 산다고 하니 그들이더 행복할 수도 있다.
호텔
라바트
하산탑
무함마드 5세묘
10달러 짜리 가죽 허리끈
눈도 주지 말라는 가이드의 주지도 있었지만
졸졸 따르며 조르는 사람의 물건을 슬쩍 보니 가죽 허리끈, 10달러 란다.
하여, 안되면 말고 라는 심전으로 2달러 했더니 7달러, 3달러 했더니 5달러..4달러로 낙찰
이제 각시 한테 돈을 타야 하는 데 안된단다.
여러 동행도 많은 데 어른의 말을 뭉개니 이거 참 무색도 하고 고약 하더라...
허나, 내가 누군다. 몇마디 내 지르니 돈은 나오고 물건을 고르고 골라 받았다.
가죽은 아프리카 맛이 나서 좋았지만 버클이 그랬고, 냄새 한번 좋더라.